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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Jun 25. 2018

박 여사의 핸드메이드 내공

손만듦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

어느 날 박 여사가 각성했다.


정체모를 슬픔이 싱크홀처럼 생겨나는 갱년기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내 나이 마흔여덟. 현대의 중년을 40세와 68세 사이라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그러니 옴짝달싹 못하는 중년 초입에다 갱년기도 막 시작되고 있다. 여성 질환을 가진 이유로 내 몸은 곧 완경을 맞이할 조짐을 보이는 중.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밤새 거실을 서성이거나, 추위와 더위가 온몸을 들락날락거리며, 왜 냉장고를 열었는지 전혀 모르고, 핸드폰은 시간 단위로 찾아다니는 중이다. 


감정의 낙차도 난데없이 크다. 무엇보다 사물이며 사람이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모호한 기억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마치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속 남자처럼 나는 안갯속에서 버르적거리고 있다. 이름 없는 작은 행성처럼 우주를 이리저리 부유하는 느낌. 조금은 두렵다. 나, 이렇게 늙는 걸까.


slice Image 앉아있는 남자/ 박찬걸. 이따금 언어로 나를 설명하기 어려울때 들여다보는 동생의 작품이다. 


물리적으로 내 몸은 젊지 않다. 기억은 닳고 아름답던 생리와 이별할 것이며 몸은 늘어져 주름질 테고 잦은 질병을 액세서리처럼 달고 살겠지. 스스로에게 처방이 필요했다.


중년의 뇌는 명백히 가공할 존재.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바버라 스트로치 /해나무


감사하게도 내 또래의 뇌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기억이나 속도는 떨어지지만 문제들을 헤치고 해답을 찾아내는 능력은 강해지며 심지어 더 침착하고, 더 행복하며, 온갖 것들을 그냥 안다고 한다. 인지능력이 이따금 발을 헛디뎌 "거 뭐냐 거시기 그게 뭐더라 아 미치겠다..." 버벅거린다 해도 우리는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지혜로운 무리, 중년이다. 


스탠퍼드 수명 연구소 소장 로라 카스텐슨은 "중년의 뇌는 명백히 가공할 존재"라고 했다. 내 안의 연료가 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

하나뿐인 아들 저 멀리 지방으로 공부하러 떠난 뒤 거실에 오도카니 검은 점처럼 붙박여있던 나 박 여사는 뛰어난 중년의 뇌에 대한 견해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중년 속 갱년기 극복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했다. 뭐,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은 아주 사소하며 보잘것없다. 


예외 없이 모두에게 찾아오는 이 시기, 누군가에게 지독히 슬픈 시간일 수 있는 너울 같은 이 시기를 내 방식대로 유연하게 타보려는 것일 뿐. 일종의 오메가 3나, 비타민, 홍삼을 먹듯 나의 정신과 몸을 돌보려는 것이다. 어떻게 무얼 할까...


손을 움직이기로 했다. 


오래전 놀랍도록 빠르고 정확하게 새끼줄을 꼬아내 가마니를 만들던 큰아버지, 밀집 한 줌으로 가우디 건축물을 닮은 여치집을 만들어주던 엄마, 가위 하나로 오징어를 마법처럼 오려내 이바지 음식에 장식할 봉황을 만들던 외할머니... 


 칠순의 엄마가 동화를 쓰는 딸 박여사를 위해 만들어준 커피잔 세트.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럽다. 초벌 도자기에 세라믹 안료로 채색. 


모두 돌아가셨지만 어린 나를 감동시켰던 그분들의 손끝은 기억에 남아 여전히 영감을 준다. 손으로 만든 모든 물건에는 그 사람의 결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재주도 없는 주제에 이것저것 만들어보거나 누군가가 만든 온갖 핸드메이드 물건들을 사랑하나 보다. 



갱년기가 친구처럼 웃어줄지도 모르니까.


손을 놀려 일상의 물건들을 만들며 행복해지기로 했다.

그동안 집구석에서 혼자 사부작대며 만들어 쟁여둔 잡동사니들을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다. 내 마음은 지금 어수선한 창고를 닮았다. 어설프더라도 손을 놀리며 창고를 정리하다 보면 마음에 낀 사념을 개운하게 닦아내지 않을까. 


눈동냥으로 배우거나 지인들에게 조금씩 익힌 참 보잘것없는 것들을 그냥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의외로 눈부실지도 모를 중년의 갱년기가 내게 친구처럼 웃어줄지도 모르니까. "박 여사 안녕?" 하면서.


* 박 여사의 책 레시피.*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 바버라 스트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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