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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작가 Aug 12. 2018

커피와 바느질 3. 박 여사의 핸드메이드 내공

커피가 익어간다!


커피가 익어간다!


키가 크고 잎이 작은 나무가 아라비카(왼쪽), 키가 작고 잎이 넓은 나무가 로부스타(오른쪽). 보통 로부스타 품종이 아라비카 품종보다 카페인 함량이 두 배 높다고 알려져있다.


커피는 내 개인의 역사에 무던하게 영향을 끼쳐왔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려마시기 시작한 게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 무렵부터 키우기 시작한 커피나무가 두 그루. 거기서 번식해 여기저기 분양한 나무들이 또 여러 그루다. 아침에 눈뜨면 맨 처음 달려가 어루만지는 아이들. 지금도 커피 열매가 오종종하게 매달려 익어가고 있다. 


작년엔 한 움큼의 열매를 수확하고 프라이팬에 로스팅해 딱 한잔의 커피를 내려마셨다. 서글플 정도로 맑고 그 맛이 깔끔했다. 내 인생의 한 잔!


사실, 나는 카페인에 민감한 편이라 하루 두 잔 이상 마시지 못한다. 더구나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호르몬이 줄어들었는지 잠을 설치는 날이 잦지만 한낮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를 도무지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콜라나 초콜릿 등의 카페인을 멀리하고, 커피 마시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오전 10시 30분 전후(보통 기상 시간 2시간 뒤)나 오후 3시 전에 마시려고 노력한다. 

 

카페인은 커피나무를 보호하는 천연 살충제. 보통 하루 최대 카페인 권장량은 400mg. 평균 한 잔 기준 카페인 함유량을 보면 드립 커피 200mg, 아메리카노 125mg, 에스프레소 75mg 정도. 드립 커피에 사용된 커피 양이 더 많기 때문에 카페인 함량도 높다고 한다. FDA 하루 카페인 권장량은 아메리카노(125mg) 기준 하루 세 잔이다. - 참고 (커피 과학/ 탄베 유키히로/ 황소자리)


역사학자 쥘 미슐레는 말했다. "강력하게 지적이고, 명석함을 높이며, 진리의 반짝임을 내뿜는 커피." 그런 속성을 가진 카페인은 사실,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조절한다면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누구나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커피라지만 녀석을 둘러싼 이야기는 셀 수 없다. 결국, 커피의 작용은 짐작할 수 없다는 미슐레의 표현에 그저 끄덕일 수밖에.  




핸드드립 포트 커버 만들기


우리 부부는 사소한 말다툼 후 멋쩍을 때 한 마디로 화해의 제스처를 한다. "커피 내려줄까?" 이 말은 커피 맛처럼 복합적이다. 미안하고 쑥스럽고 사랑하고... 갓 내린 커피가 앞에 놓이는 순간 향이 화를 넌지시 밀어내고 정체모를 너그러움이 턱밑까지 밀려온다. 일단, 말랑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오래도록 쓰고 있는 다카히로 드립포트. 도톰한 커버 덕분에 손가락이 무사하다.


손이 뭉툭한 남편이 뜨거워진 드립포트에 새끼손가락을 데곤 해서 궁리 끝에 커버를 만들어주었다. 만들어주고 나니 전보다 자주 커피를 내려주는 남편. 만드는 수고는 잠깐이다. 그 후 긴 세월 남편의 커피를 종종 얻어마시는 중이다. 


나만의 커버 만들기 요령을 나누어본다. 

                                 


종이로 포트를 감쌀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본다. 앞 편(커피와 바느질 1)에서 만든 컵 홀더를 거꾸로 한 모양이 나온다. 여미는 부분은 벨크로 테이프로 해주면 편하다. 벨크로 테이프가 달릴 부분을 고려해 4cm 정도 여유를 둔다. 


꽃 수를 거꾸로 놓았다. 나의 실수를 눈감아주기로 했다.


(아래에서 위로) 본이 되는 종이와 수가 놓인 앞면, 앞면 안쪽에 붙일 접착솜, 뒷면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앞면에 수를 놓을 때 위 사진처럼 수를 놓으면 꽃이 아래로 향하게 된다는 점. 


나는 역시나 어수룩한지라 수를 거꾸로 놓고 말았다. 가위로 신나게 자르고 나서 아차! 그러나 어쩌랴, 갈수록 손놀림은 굼뜨고 정신은 흐리멍덩한 것을. 거꾸로 수를 놓은 나를 보며 누군가 깨알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저 여자도 나 못잖게 헐렁이 꺼벙이구나.'하면서. 


일단, 너털너털 웃으며 꽃이 위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몸통을 완성하고 옆을 안정적으로 여미기 위해 벨크로 테이프 한 쌍을 붙여주었다. 산우엉 열매 가시에서 착안해 만든 벨크로 테이프는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자연 속에는 우리가 빌려다 쓰는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다소니 공방 도안으로 수를 놓아 완성했다. 만듦새는 어설프나 그것이 또 핸드메이드의 묘미!


바느질하는 친구(다소니 공방)에게 배운 국화 자수. 유치원생 아이 둘을 복닥복닥 키우며 손을 쉬지 않고 수를 놓는 그녀는 꽃만치 곱다. 가만 보니 누군가 위에서 분홍색 국화를 흩뿌려주고 있는듯하다. 실수로 놓은 수가 맘먹기에 따라 재미난 효과를 줄 수도 있는 셈. 틀렸다고 속상해말자! 어차피 누구나 불완전하니까. 


친구들을 불러모아 커피를 내려줄테다. 꽃 구경은 덤!


 




칠순이 넘은 엄마가 그려주신 원두 로스팅 8단계(생두 - 이탈리안 로스팅까지). 
떠나시기 한 해 전에 엄마가 그려주신 커피 열매. 능금처럼 빨갛다.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울 때 혼자서 커피를 마시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림들. 아픈 사위를 두고 살길을 찾아 종종거리며 커피를 배우던 막내딸에게 뭐라도 해줘야겠다며 그려주셨다. "이담에 커피집이라도 할라믄 걸어둬두 좋겄지."라시며. 


딸이 보는 커피 책 속을 뒤져 가며 구부정한 노인이 오래오래 그려내셨다. 애처로운 막내딸을 생각하며 애면글면 그리셨겠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이따금 커피에 눈물 방울이 떨어지는 이유다.


나는 분명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딸이다. 가슴이 뜨거워져 차마 바라보기 힘든 엄마의 커피 그림들... 엄마는 떠나셨지만 그림은 태처럼 나를 둘러싸고 자궁처럼 품어 오늘도 살아가게 한다. 열매처럼 붉게.  


커피는 이래저래 내 인생과 혈관처럼 엮여있다. 기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던 기억들을 고요하게 불러오고, 함께 마시고픈 사람을 떠올리게 하며, 첫 문장을 시작하듯 하루를 기대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성찰과 자기 돌봄의 시간을 불러다 주는 커피, 웅숭깊고 매혹적이며 매우 사적인 친구. 그 친구가 나의 거실에서 매초롬하게 익어간다! 커피가 있어 덜 외로웠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바느질을 하며 커피를 생각했고 고맙게도 시큼하고 달큰하고 쌉싸름했던 내 인생의 에움길을 찬찬히 걸어볼 수 있었다. 단언컨대, 다가올 날들도 느릿느릿 같이 걷고프다.
 

"내일도 만나, 커피!"



* 박 여사의 책 레시피 *

THE COFFEE DICTIONARY/ 맥스웰 콜로나 - 대시우드/ 북커스

커피가 돌고 세계사가 돌고/ 우스이 류이치로/ 북북서

커피 & 카페/ 가브리엘라 바이구에라/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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