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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키 Nov 02. 2023

혹시.. 남자 생겼어?

몰래 내 카톡을 보려던 영감탱


주말이 되면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자 오후 두세시까지도 늦잠을 자는 편이다. 남편이 심심하다고 아침에 깨울 때가 있는데 많이 피곤한 날은 절대 오후까지 깨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둔다. 오후 두 시 전에 나를 깨우면 극대노를 보게 될 것이라고…


그날도 오후까지 눈뜨지 않으려고 작정함 날이었다. 남편이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심심하다고 장난을 쳐 내 화를 돋우게 할 타이밍인데.. 낯설 정도로 조심스레 깨우는 남편의 말투가 심상치 않다? 잠결에도 무슨 일이 있구나 싶은 말투였다.


남편: 잠깐만 일어나면 안 돼..? 할 말이 있는데..


혹시 시댁에 무슨 일이 생겼나,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나: 어..? 왜 깨워..  왜..? 뭔데 뭔 일 있어?

남편: 뭐 하나만 물어볼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엉뚱한 소리 잘하는 남편의 성격을 고려할 때, 경험적으로 보아 헛소리가 나올 확률이 아주 높지만 이렇게 까지 진지한데 설마 헛소리일까 싶어 나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나: 알겠다 뭔데?

남편: 혹시.. 남자 생겼나.


…????????????

도대체 이건 또 어디서 나온 헛소리지…? 평소에 하는 엉뚱한 소리들은 유츄라도 가능한데 이건 정말 어디서 시작된 질문인지 가늠도 못했다. 뭐지..?


나: … 갑자기 그런 생각이 왜 들었는데?

남편: 아니 내가 부인 핸드폰을 보려고 했는데 비밀번호가 바뀐 거야.. 혹시 나한테 숨기는 거 있나..?


그렇다.

유튜브 프리미엄과 넷플릭스가 깔린 나의 폰을 쓰려고 했는데 하필 그 전날 내 폰 잠금 비밀번호를 바꿔둬서 쓰질 못한 것이다. 맨날 똑같은 비밀번호를 쓰던 내가 하필이면 그 전날 보이스피싱이니 사이버 해킹이니 하는 유튜브를 보다가 불안해져 모든 기기의 비밀번호를 바꾼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평소에 카톡을 들여다보든 내 블로그를 보든 신경을 안 썼는데 비번을 바꿔뒀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던 모양이다.

혼자 아는 비밀번호와 내 생일, 자기 생일 등 모든 가능성 있는 번호는 다 눌러봤는데도 안되니 멘붕에 빠진 것이다.

거기까지 이해하고 나니 이 엉뚱한 영감탱을 어찌하면 좋을꼬 싶다가.. 퍼뜩 깨달음을 얻었다.


나: 근데 내가 바람을 진짜 폈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침착하게 물어봐?

남편: 진짜 남자 생겼으면.. 조용히 짐 싸서 나갈라고 했지..

나: 오? 그럼 나중에 내가 바람피우면 조용히 나가주는 거야? 좋은데? 바람 펴도 후환 걱정은 없겠군.

남편: (생각 중… 로딩 중…) 안 되겠다 내가 왜 나가. 네가 나가!!!! 너 죽고 나 죽고!!!!


갑자기요..? ㅋㅋㅋㅋㅋㅋㅋ

뒤늦게 억울한 마음이 들었는지 잘 자고 있던 나한테 대뜸 나가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놀려줄걸 그랬다. 지금은 툭하면 나보고 ‘어떤 여자가 나보고 오빠 너무 좋아요~ 하면서 만나 달라고 하면 어떡하지?’하는 헛소리를 한다.

남편의 헛소리에도 대꾸해 주는 게 아내로서의 역할이겠지 싶어 진지하게 답해줬다.


나: 혹시 그런 여자가 있으면.. 나도 꼭 보여줘. 내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을 거 같아… 어지간해선 없을 거거든?

있으면 너보다 내가 먼저 만나고 싶다. 정신 차리라고 말해줘야지.. 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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