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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에드만 May 09. 2018

3. 글쓰기 일반론을 버리자, 실전이다

언론사 준비생을 위한 가이드 [3] 패턴을 내장하자

우리는 ‘합격하는 글쓰기’를 논하고 있다. 시험 글쓰기 말이다. 모범적이고 훌륭한 글쓰기를 위한 일반론이 아니다. 난 일반론에 대해 말할 능력이 없다. 글쓰기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가이드가 필요하면 시중에 좋은 책이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내로라하는 강사들의 온오프라인 글쓰기 강의도 진행 중이다. 그쪽을 참고하는 게 현명하다.

      

이를 바꿔 말하면 글쓰기 일반론에서 흔히 말하는 방식으로 현장에서 글을 쓰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신형철 평론가나 김혜리 기자가 아니다. 아름다우면서도 핵심으로 직행하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글을 쓰기 어렵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시험 현장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런 글은 아웃라이어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초점은 그저 필기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임계치를 살짝 넘는 수준의 글을 완성해내는 데 있다. 

ⓒ픽사베이

글쓰기 일반론에서 말하는 논리 글쓰기의 주된 미덕은 다음과 같다. 

‘글쓰기 전체 시간의 15%~20%를 개요짜는 데 투자하라. 탄탄한 설계도를 그리지 않으면 건축물이 무너지듯 글 역시 마찬가지다. 개요가 완벽에 가깝다면 문장을 쓰는 건 개요를 늘여 받아적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아마도 사설 언론사 입시 준비반에서도 위와 같은 주장을 하시는 강사 분들이 계실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난 이는 현실을 잘 모르는 엘리트 글쟁이의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차적으로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이 있을 것이다. 생각의 가지치기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풍부한 인문사회학 배경까지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시험 글쓰기' 뿐만 아니라 어떤 글을 써도 잘 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필부필부들은 제한 시간의 15%이상을 개요짜는 데 투자하다가는 글을 완성도 못하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건 치명적이다. 감점 요소가 아니라 채점 배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어떤 글이든 일정한 패턴을 내장한 채 현장에 들어가길 권한다.     


‘1문단(통념 비판)-2문단(역사적 맥락 검토)-3문단(당대 이슈 상술 및 비판)-4문단(제언)’

     

이 구조다. 이 안에서 약간의 조정은 가능하겠지만 일단 틀을 이렇게 가져가자고 처음부터 마음먹으면 다소 긴장이 누그러진다. 이 구조엔, 앞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합격글 검토記에서 언급한 전략이 모두 담겨있다. 당대 통념을 비판하면서 주어진 논제를 자기 것으로 새롭게 구성하기. 그러면서 이를 압축하는 호기로운 첫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기. 이어 내가 구성한 논제가 어떤 사적 맥락에 위치해 있는지 밝히기. 크게 2가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처럼 광범한 논제를 제시할 경우 이는 유효한 전략이다. 일단 개요짜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가 없다. 문장에 더 공을 들이면서 어떻게 되든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2014년에 2시간을 주고 논술 1000자, 작문 800자를 제시했다. 누군가에겐 상당히 촉박한 시간이다. 논제를 받아드는 순간 보통 머리는 빈 백지 상태가 되곤 하는데, 일정한 패턴을 들고 있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픽사베이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그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앞서 검토한 ‘인사’와는 다른 논제로 위 틀을 적용해보겠다. 2015년 <조선일보>는 ‘갑질’이란 논제를 제시했다. 현장이라고 생각해보자. 초침이 흐르고 있다. 나 역시 지금 머리를 굴려본다. 아마 당시 응시생들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주제였을 것이다. 

     

때문에 주변에선 펜 굴리는 소리가 일찍부터 정신없이 들릴 것이다. 당황하지 말고 각도를 틀어 논제를 새로 구성하자. 위에서 이야기 한대로 우선 통념을 비판해보자. ‘갑질이 요즘 유독 더 빈번해진건가? 실상은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 이렇게 문제를 설정한다고 해보자. 일단 글 전체의 방향성은 정해졌다. 

      

그럼 이 '갑질'이 일상에 짙게 밴 연원을 살핀다. 한국의 뿌리깊은 유교 문화+압축적 근대화+신자유주의의 전면화와 천민자본주의의 결합 등. 역사적 맥락에 근거한 구조적 원인이 떠오른다. 이를 2문단에 서술한다. 


여기서 한 가지 첨언. 그러니까 ‘뿌리깊은 유교 문화+압축적 근대화+신자유주의의 전면화와 천민자본주의의 결합’에 해당하는 역사적 연원은 미리 연습해 체화해두고 있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주제가 이 구조 안에 포섭되기 때문에 유연하게 맞춰 쓸 수 있다.(이 부분을 보강하는 방법에 대해선 새로운 글에서 논해보겠다) 나 역시 그랬다. 여긴 시험 현장이다. 글쓰기를 위한 정통법은 아니다. 붙는 게 최우선이다.


이후 3문단에서 여러분이 그토록 달달 스터디에서 외웠던 당대 현실 문제를 자세히 적는다. 이어 마지막 문단에서 이 문제는 구조적 문제이므로 단시간에 해결하긴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평소 잘 알고 있는 명망 있는 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픽사베이

물론 앞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논술 검토기에서 난 내 자신의 답안을 비평할 때, 4문단에서 독창적인 논리 전개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난 이러한 내 능력 부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통찰력을 갖춘 아웃라이어가 아닌 이상 1시간 내에 기발한 진전을 4문단에서 이룩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럼 마지막 문단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독창적이진 않더라도,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면 자신의 교양을 내비치면서 안정적인 착륙이 될 것이다. 우선은 글을 완성하고 퇴고할 시간을 벌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제 그럼 첫 문장이다. 예컨대 <갑질은 ‘갑툭튀’가 아니다>등으로 시작하면서 짧게 끊어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연습해보자. 패턴을 들고 있으면 긴장이 누그러질 것이다. 개요 짜는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논리 전개에도 무리가 없다. 필기 통과 정도는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누군가에겐 다소 무리하게 들릴 수 있고, 편법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난 이것이 '시험 글쓰기'라는 점에서 모두 수용가능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픽사베이

다음은 이 글의 주제와 다소 빗겨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충분히 가능한 문제제기라고 판단해,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은 마음에서 하나의 일화를 소개해보려 한다. 필기에서 '제한 시간'에 대한 논의다.

       

실제로 당신이 알고 있는 저명한 칼럼리스트도 위와 같은 제한 시간 안에 논지가 분명하면서도 감수성이 뛰어난 에세이를 써내긴 어렵다.(물론 신계에서 노니는 문장가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해서, 글 잘쓰기로 명성이 높으신 회사 선배에게 입사한 뒤 필기 시험 시간이 너무 타이트한 건 아닌지 여쭤본 적이 있다.

      

질문을 던진 곳은 팟캐스트 녹음 현장이었다. ‘글쓰기’를 주제로 그 선배와 대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엔 동기 한 명과 선배 3명이 더 배석했다. 선배 두 분은 예상대로 내 물음에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기자에겐 늘 마감이 있다. 늘 촉박한 상태로 글을 써야한다. 그 능력도 테스트하려면 제한시간을 늘리기 어렵다.”

     

현장 녹음에선 다음 논의로 넘어가기 위해 이같은 주장을 더 이상 반박하진 않았지만, 난 아직도 의문이 남아 있다. 선배들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는 점을 우선 인정한다. 하지만 기사는 숙련되면 기계처럼 쓰게 되지 않나? 기사엔 일정한 포맷이 있으니까. 훈련되면 단시간 내에 뚝딱 생산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즉, 그것은 회사에 들어와서 배우면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응시자의 독창성을 평가한다는 필기시험에서 충분히 사유할 시간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압박감 속에서 글을 쓰게 하는 건 응시자의 글쓰기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 오히려 해가 되는 건 아닐까?

      

물론 1시간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글을 완성할 수 있는 여지를 조금만 더 달라는 것이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고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은 1시간 내에 개요를 완벽하게 짜고 일사천리로 한 문장씩 써나가면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효과적인 평가 방법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질문을 던져놓고 이번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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