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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Aug 24. 2024

너와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네가 너를 위해 살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탔다. 나를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는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그를 놓아주어야 하는 걸까. 엄마의 빚을 갚으면서 살아야 하는 이 구렁텅이에서 그라도 구해줘야 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럼 나는 어떡하지. 나는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오늘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는데. 몇 시간 전에 그의 품에 안겨 일어났는데. 이젠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 때문에. 우리 가족 때문에. 우리 둘의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닌데. 


내내 흐릿한 시야로 이제는 환해진 길을 걸었다. 아까 정신없이 걸어온 그 깜깜했던 길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이었는데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까페에 출근했다 퇴근했을 뿐인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삶이 무너져 있었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남편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그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불안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그 순간, 그가 없는 텅 빈 집에 내가 홀로 남겨질 거라는 감각이 나를 덮쳤다. 지금 당장 그가 나를 버리고 사라졌을 리가 없는데도 그런 기분이었다. 그는 나를 떠나겠구나. 나는 여기에 혼자 남겨지겠구나.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 소파를 부여잡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리 내어 우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제 어떡해, 나는 이제 어떡하지, 만 반복하면서. 





한참을 울다가 노트를 펼쳤다. 이미 벌어진 일에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지금 확실하게 알고 있는 빚은 주택담보대출 6500만 원, 그리고 엄마의 빚을 갚다 늘어난 아빠의 카드빚 4000만 원이었다. 그것만 해도 1억이고, 얼마가 더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열두 살이 되던 해까지 우리 네 식구는 2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집에서 살다가 바로 옆집을 매입해서 조금 더 넓게 생활했다. 그 옆집이 엄마 명의의, 엄마가 담보로 설정한 집이었다. 수도권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동안에도 지방의 작은 아파트는 20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주택담보대출을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빠는 이미 그 집이 날아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대출은 집을 날리면서 해결이 될 테고, 남은 건 아빠의 카드빚과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엄마의 추가적인 빚이었다. 


대체 얼마 만에 손으로 숫자를 써서 곱셈과 나눗셈을 하는 건지. 이율과 금액을 적어가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남편이었다. 머리를 식히러 집 앞을 걸어 다니고 있다고, 나도 나오지 않겠냐고 물었다. 


집 앞 공원에서 서로를 발견한 우리는 무작정 끌어안았다. 그러다 어깨를 감싸 안고 걷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무서웠다. 우리가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가 두려웠다. 그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 아까 처음에는 우리가 다 정리하고 돌아가서 엄마를 도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내가 그렇게 모든 걸 버리고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박중독이 언제 해결될지도 모르고, 잘못하다가는 내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으니 엄마와 인연을 끊을 생각도 해야 한다고. 


“네가 모든 걸 책임질 의무는 없어. 한국에 가지 않는 게 좋겠어. 언니도 오지 않는데, 왜 너만 가야 해?”


엄마가 미웠다. 이 일 때문에 그와 헤어진다면 엄마를 평생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한국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금 엄마를 포기한다면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미련 없이 엄마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가야 할 것 같아... 그래야 내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오고 싶어.”





“우리는 부모와 우리의 삶을 분리해야 해.”


남편은 내가 오기 전, 시부모님과 통화를 했다고 했다. 갑자기 닥친 일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복잡해서 부모님과 상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에 갑자기 빚이 많아졌고, 그걸 내가 갚으면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남편이 이 일에 연관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부모님의 의견을 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 무서웠다. 시부모님이 남편에게 당장 돌아와서 이혼하라고 하셨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였지만 시부모님이 알게 된 이상,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시부모님은 ‘절대 이혼은 안 된다.’고 하셨다. 현명한 조언을 얻고 싶었던 남편은 자신의 마음이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식의 이혼을 절대 볼 수 없다.’는 태도로 말하는 부모님에게 상처를 받았다. 마치 우리의 이혼이 당신들에게 큰 흠이 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동안 종종 보내주셨던 돈 얘기도 꺼내셨는데, 그에게는 그 말이 깊게 박혔다. 마치 회사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처럼, 자신의 인생과 결정에 부모가 너무 깊게 관여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 통화 이후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극단적인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외동아들로서 언제나 교사인 부모의 평판을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고, 부모의 뜻에 따르려고 노력해왔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중요한 결정도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하는 방향이었다.


“너한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가 결혼할 때도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지 모르겠어. 아빠 정년퇴임 전에 무조건 해야 한다고 그래서 사실 우리는 준비도 안 됐는데 급하게 했지. 너도 그때 그럴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는 나와의 결혼생활에서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나와 둘이 함께일 때는 너무 좋았지만, 그 외에 다른 의무들이 자신을 짓눌렀다고 했다. 사위로서 해야 할 일,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 결혼한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 끝없는 해야 하는 일과 자신을 향한 기대와 요구가 자신을 잠식해왔다고. 그 무게가 자신을 작아지게 했다고 했다. 시부모님은 종종 우리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셨는데, 남편은 사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받으면 나를 편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받아왔다고 했다. 실은 내게도 시부모님이 주시는 돈이 무거웠다. 일찍이 엄마아빠에게 금전적으로 독립했던 나는 그 독립이 주는 자유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 시부모님이 주시는 돈을 받으면서, 그 돈이 내게 의무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더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내가 기꺼이 마음으로 우러나서 하는 일보다 받았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아들에게 주시는 돈이니 내가 받지 말자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남편도 그런 마음이었다니. 


엄마는 엄마가 생각하는 기준을 언제나 ‘당연히’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타인과 나를 비교했다. 누구네 집 아들은 엄마한테 아침마다 전화한다던데, 첫 월급을 받으면 당연히 엄마한테 갖다 줘야지. 그 기준은 사위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엄마는 드라마에서나 보는 싹싹하고 넉살 좋은 사위가 ‘사위로서 당연한’ 견본이었고, 남편은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의 생각 없는 말이 남편을 찌를 때 옆에서 막으려고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이 엄마의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주길 바랐다. 엄마의 그런 모습을 누구보다도 싫어하면서 그에게 똑같이 대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바꾸려는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남편을 통해 치유받았는데, 나는 타인의 시선에 맞춰 그가 변하길 바랐다.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내가 제일 잘 알면서. 


“나는... 너무 힘들어. 아들로, 남편으로, 사위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내가 되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지금 사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고 싶어. 내가 독일에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독일도 너가 오고 싶다고 하니까 와야 할 것 같아서 왔어. 그것도 내 선택이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 그냥 지금은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는 곳에 혼자 있고 싶어. 아무도 나한테 뭔가 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면 좋겠어.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좋겠어. 지금 마음으로는 나 혼자 고시원에 들어가서 알아서 나 혼자 먹고 살 정도만 벌고, 그렇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그는 울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서운하지 않았다. 내가 그와 똑같이 살았으니까. 너는, 나구나. 너와 나는 둘 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받은 사랑이 부족했던,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였고 채워지지 않은 마음 때문에 착한 아이로 자랐다. 부모의 뜻대로 하면 주어지는 미소와 사랑을 얻고 싶어서. 그건 우리를 옭아맸고 속마음을 억눌렀다. 언제나 해야 하는 일에 밀리는 하고 싶은 일. 그 마음은 우리를 병들게 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했지만 그 어린아이는 아직도 우리 안에 있었다.


내 마음은 너의 도움으로 풀리고 있었는데, 우리의 결혼은 나를 살게 하고 너를 더 죽이고 있었다. 나는 네가 있어 행복했는데, 너의 품에서 숨을 쉬는 것 같았는데, 너는 너의 숨을 나에게 나눠주고 있었구나. 


“그럼 한국에 같이 가자. 같이 가서 자기는 아무도 없이 혼자 지내봐. 내가 엄마아빠한테 가 있는 동안 나 없이, 내 생각 하지 말고 자기만 생각하면서 혼자 있어봐. 그러면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 봐.”

“내가 그러고 나서도 계속 혼자 있고 싶으면?”

“자기가 혼자 있는 게 정말로 행복하면 내가 보내줄게.”

“내가 혼자 살겠다는 결정을 해도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있어?”

“너무 슬프겠지. 너무 슬프고 힘들겠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어. 나는 그냥... 너무 미안해. 나는 자기랑 같이 사는 게 행복했는데, 나만 행복했던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나는...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면 좋겠어. 나를 위해서 살지 않으면 좋겠어.”

“내가 너랑 같이 한국에서 살고 싶으면?”

“그럼 같이 한국으로 갈 거야.”

“우리가 헤어지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혼자라도 여기에 있을 거야?”

“응. 만약에 그러면 나는 여기에 다시 올 거야.”


우는 그를 꼭 안아주었다.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헤어지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러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옆에 있길 바란다면, 그게 어디든 같이 가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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