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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Aug 21. 2024

내 존재가 너에게 짐이 되어서 미안해

나와 함께라면 행복할 수 없는 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상태로 까페에서 손님을 받고 커피를 만들었다. 핸드폰이 윙윙 울려댔다. 아마존에서 구매 내역 취소 안내가 쏟아지고 있었다. 남편이 며칠을 고민하다 바로 전날 구입한 조립용 데스크톱 부품들이 몽땅 취소 처리되고 있었다. 남편에게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컴퓨터 왜 취소했어? 취소하지 마.’

‘안하면 어쩌게.’

‘일단 한국에는 한 달 정도 다녀오고 그다음에 생각을 해보자.’

‘이따 다시 얘기해. 근데 나는 저걸로 뭘 하고 싶지가 않아져서 당장은 필요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해외 생활을 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는 버리지 못하는 내 꿈을 이뤄주고자 먼저 같이 독일에 오자고 했다. 같이 독일어를 공부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나를 뒷바라지하느라 8개월을 프랑크푸르트의 한식당에서 일했다. 나의 학업을 위해 베를린으로 이사한 이후로는 그나마 프랑크푸르트에서 사귀었던 친구들과도 모두 멀어지고, 학교와 아르바이트로 바쁜 나를 집에서 혼자 기다렸다.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내가 벗어둔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내가 어질러놓은 집을 치우고, 나에게 따뜻한 밥을 해서 먹이는 일이 그의 일이었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사는 동안, 그는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새해가 된 후, 그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그 무력감이 내게도 너무 무거웠다. 흐리고 깜깜한 겨울의 베를린, 독일어로만 진행되는 전공 수업에서 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절반 이상의 시간을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었고, 열아홉, 스물인 아이들과 말을 섞어보려 했지만 이미 또래그룹을 형성한 그들은 나와 대화를 시작하다가도 금세 그들의 무리로 돌아가곤 했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인 채로 혼자 있는 일은 편안하면서도 외로웠다. 꿈꾸던 유학생활은 매일 나의 한계를 마주하며 벽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일이었다. 나는 정말 아는 게 없구나. 나는 열아홉 아이들보다 훨씬 모자라는구나. 그들보다 더 가진 10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했는지, 발전하지 못하고 흘려버린 것 같은 시간을 후회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를 마주해야 했다. 어느 날은 나를 반겨주고, 어느 날은 돌아온 나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고 밥을 하고 있는 그를. 호들갑을 떨며 맛있게 먹는 나에게 희미한 미소를 짓는 그의 눈에는 빛이 사라져 있었다. 나도 오늘 힘들었는데, 너는 왜 힘이 없을까. 집에만 있었으면서. 왜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을까. 왜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낼까. 네가 힘을 내서 나에게 힘을 주면 좋겠는데. 난 그 힘이 필요한데.


버거운 일상에서 기운을 내지 못하는 일이 내 옆에 우울한 사람이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은 쉽게 나에게 옮겨오니까. 그의 무기력과 부정적인 말들이 나도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탓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복잡했다. 사실은 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감당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서 나도, 그도 이렇게 만든 나 자신을 회피하고 싶어서 계속 마음속으로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소중한 선생님과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받던 하루였다. 선생님은 남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나와 결이 비슷하고, 따듯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며 좋아하셨다. 그런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지 않는 그를 지켜보는 일이 답답하고 힘들다고. 한국에서도 하던 일에 대해 고민하며 힘들어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그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 의욕을 내지 않는다고.


나에게 공감하며 그를 탓할 줄 알았던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소야, 지금 너보다 그 애가 더 힘들 거야.’

‘열정 있는 똑똑한 아이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게, 네가 느끼는 힘듦과 실망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그 애는 무척 아픈 중이야.’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 생각만 하느라 그의 아픔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너는 나에게 모든 걸 줬는데. 내가 가장 힘들 때 날 일으켜 세운 건 너였는데. 지금도 너는 나를 위해 살고 있는데. 나는 또 나만 위해서 살았구나. 너를 보지 못하고. 바로 옆에 있는 너를 보지 못하고.


‘돌아보면 네가 준 사랑보다 그 애한테 받은 게 더 많을 거야. 그 많이 받은 사랑, 조금만 줘라. 그래도 너한테 더 많이 남아 있을 거야.’


학생 식당에 앉아 그가 싸준 도시락을 앞에 두고 쏟아지는 눈물을 무방비하게 떨어뜨렸다. 학생 식당 밥이 맛이 없다고 불평하는 나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해 준 그 도시락을 앞에 두고 못난 내 앞에 고개를 숙여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아껴 그를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수업 한 과목을 더 이수하는 것보다 그를 돌보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가 길을 찾을 수 있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게 도우며 옆에 있는 것. 그게 내가 지금 당장 할 일이었다.


심리상담을 거부하는 그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나 책을 찾아보고, 작게나마 흥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라고 격려했지만 그건 그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뿐이었다. 그는 하나에 빠지면 깊게 몰두하는 성향이 있었는데 그 점을 이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연결하면 좋을 것 같았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잡학다식한 사람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게임에 관한 건 차원이 달랐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출시된 게임은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총망라한 지식이 있었고 분석하며 플레이하는 걸 좋아했다. 다른 일은 쉽게 흥미를 잃었지만 게임만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유일한 취미였다.


“내 생각에 자기는 게임이랑 관련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게임만큼 파고들고 좋아하는 게 없잖아? 게임 관련해서 글을 쓰거나 유튜브를 해보는 건 어때?”


영화를 전공해 영상제작에 친숙했던 우리는 그동안 둘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유튜브 컨셉들을 얘기하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남편이 본인이 직접 출연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했고 당장 돌아오는 수입 없이 몰두할 만큼의 열정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 말에 그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어차피 하루 종일 게임하는데... 방송이라도 켜서 해보는 게 나으려나?”

“그래, 그렇게 하고 나서 하이라이트 영상 클립 편집도 직접 해서 업로드하면 되잖아. 편집자도 따로 필요 없고.”

“근데 그럼 데스크톱이 필요한데... 맥북은 게임하면서 방송하기에 사양이 딸려서 못할 텐데...”

“그럼 데스크톱 하나 사. 자기 계속 데스크톱 사고 싶어 했잖아. 우리 맥북 밖에 없으니까 윈도우 컴퓨터 하나 생기고 좋지 뭐. 나도 학교에서 쓰는 프로그램 맥북에서 잘 안 돼서 불편했는데.”


정기적인 수입이 없어진 이후로 소비를 극도로 제한하려하던 남편은 고민했지만 적극적인 나의 설득에 검색을 시작했다. 충분히 레드오션인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우리 둘 모두에게 있었지만 몇 달 만에 보는 의욕적인 모습이 반갑고 고마웠다.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없더라도 데스크톱을 처분한 이후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게임을 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그가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삶에 의지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방송을 할 경우의 하루 일과 스케줄링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을 고려하면서. 어떤 플랫폼에서 할지, 어떤 게임으로 시작할지, 카메라를 어떻게 세팅할지 등등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며 한껏 신난 얼굴로 나에게 모든 걸 설명했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해 최적의 금액으로 필요한 그래픽카드, CPU, 모니터, 키보드 등 최적의 데스크톱 구성품을 아마존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의 표정은 밝았고, 눈은 조금씩 다시 빛나고 있었다.




카드 캐시백을 받을 수 있는 날짜를 기다려 모든 주문을 마친 다음 날 새벽, 언니에게 전화가 왔고, 엄마의 빚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주문을 모두 취소했다.



척박한 마음에서 어렵게 그러모은 그 작은 의지를 또 내가 빼앗았다. 너는 또 나 때문에 이렇게 되는구나. 나는 너에게 항상 짐이 되는구나. 너에게 힘이 되고 싶었는데.





퇴근 직후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컴퓨터 취소했어, 그냥 두지. 언니도 우리가 아예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 것 같대. 일단 내가 한국에 한 달 정도 가서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아보고 해결책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언니랑 매달 50만 원이나 30만 원씩이라도 모아보자고 얘기했는데, 그건 내가 알바를 늘려서 어떻게 해볼게. 자기한테 피해 안 가게 해볼게.


“그럼 한 달 동안 나 혼자 여기서 있으라고?”

“....... 같이 갈래? 근데 같이 가면 비행기 값이 드니까...”

“그리고 넌 계속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데, 너가 알바를 늘리고 진짜 혼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가 더 바빠지면 집안일은 또 나 혼자서 다 하고? 그럼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할 말을 잃었다. 그러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까. 나는 이미 공부도 벅차고, 알바도 벅차고 내 인생이 벅찬데. 네가 여기서 일자리를 구하면 삶이 조금 나아지겠지만 나는 평생 너에게 짐이 되겠지. 얼마 벌지도 못 하는 돈은 엄마 빚을 갚는데 쓰고, 나는 너에게 빌붙어서 살겠지. 너는 나 때문에 또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겠지. 그리고 또 네가 번 돈은 다 나를 위해서 쓰겠지.


그렇다고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가 각자 부모님 댁에 얹혀살면서 너는 서울에서, 나는 지방에서, 알아서 돈을 벌고 나는 엄마 빚을 갚고 너는 그냥 너대로 살고 잠깐 만나면, 또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 무엇도 너에게 행복한 일이 아니다. 나와 함께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행복할 수가 없다. 너는 그냥 나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얽매여서 살아야 할 텐데. 괜한 부채의식을 느끼면서. 내 일을 도와야 할 것 같다는 마음 때문에 이 일을 아주 무시하고 살 수도 없겠지. 너는 왜 그래야 하는 걸까.


“너는 이런 상황에서 나랑 계속 같이 살고 싶어? 

"......"

"......내가 너한테 그럴 가치가 있어......?”


전화를 붙들고 엉엉 우는 나를 말없이 한참을 두다 그는 말했다.



“내가 너를 원망하지 않으면서 살 자신이 없어......”




오랜만에 맑게 갠 한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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