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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Aug 14. 2024

사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해봤는데

닫힌 까페의 문을 두드리자 매니저이자 친구인 M이 열쇠를 찰칵, 돌리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M은 내가 늦을 것을 대비해 이미 오픈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이곳의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이게 내 일상인데. 이 모든 게 과거가 된 것 같은 기분. 


평소처럼 밝은 M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갑자기 한국에 가야 할 것 같고, 어쩌면 완전히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다정한 그는 나를 걱정하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엄마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좀 심각한 거 같아.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나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아침에 언니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투자를 하다가 빚이 많이 생겼대. 너무너무 많은 금액이래. 아빠와 엄마 둘이서는 해결을 못 할 것 같아. 내가 가야 할 것 같아. 


내 말을 가만히 듣던 M이 말했다. 


“너는 그렇게 하고 싶어?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가서 가족을 돕는 게 네가 원하는 일이야?”

“잘 모르겠어... 나는 가능하면 여기에 있고 싶어.”

“그럼 너는 너의 삶을 지켜야 해. 너의 인생이 지금 여기에 있잖아.”


M은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브라질에 있는 가족 중 주기적으로 돈을 달라고 하는 사촌이 있다고. 몇 번 보내주다가 이제는 주지 않는다고. 또 자신의 남편은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사실 브라질에 돌아가야 할지 오랜 시간 고민했고 여전히 고민 중이라고. 결국 한 달 정도 다녀오기로 했지만 자신은 함께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내 삶이 여기 있잖아. 어떤 사람이든 가족 사이에 문제가 있어.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해. 그게 우리가 원하는 거라면 더더욱.”


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아직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가고 싶지 않아. 아직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이 삶을 지금 포기하고 싶지 않아. 


“나쁜 일이 생겨도 항상 괜찮아져. 이 일도 그럴 거야.”

나를 안아주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오늘 처음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손님을 상대하며 아무렇지 않게 웃을 자신이 없어서 주방 일을 자원했다. 식빵 수십 개를 조리대에 깔아 두고 각각 치즈 두 장과 슬라이스 햄 하나를 올려 토스트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손으로는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같이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 언니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고, 1시간이 넘게 연락이 없었다. 심장이 쿵쿵. 다음 토스트를 만들려다가, 냉장고 앞에서 멈춰 섰다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그렇게 앞선 마음을 내보낼 길이 없어 주방의 벽에 가로막힌 채 한참을 서성거렸다. 


얼마 후 언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가 와서 울다가 아빠와 다시 통화를 했다고 했다. 

아빠가 처음으로 엄마의 돈 문제를 알게 된 건 작년 5월이었다. 엄마의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엄마가 오전에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오후에 바로 송금해주겠다고 해서 돈을 빌려줬는데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아빠에게 전했다. 알고 봤더니 3천만 원을 당장 대출받기 위해서는 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속은 엄마가 급하게 막내 이모와 친구에게 500만 원씩 빌려서 보이스피싱 사기단에게 넘겼고, 당연하게도 그들이 잠적하는 바람에 돈을 갚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친구와 막내 이모에게 엄마가 빌린 돈을 곧장 송금했고, 같이 경찰서에 가서 보이스피싱 사기를 신고했다. 그러다 엄마의 투자와 손실, 그리고 빚에 대해 알게 되어서 한바탕 난리가 난 후, 또다시 투자를 한다면 이혼하겠다는 각서까지 받아냈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 빚이 1억이 된 거지? 몰래 계속했다는 건가?”

“그런가 봐. 근데 아빠도 엄마 빚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던데? 1억이 넘는다고만 알고 있고 자세한 건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하던데.”

“그럼 빚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 정말 그러면 어떡하지?”

“언니는 매월 보낼 수 있는 돈이 얼마야?”

“나 진짜 돈 없는데... 나도 얼마 전에 차 샀잖아... 요즘 여윳돈이 하나도 없고 저축도 못해서 친구랑 우버이츠 할까 생각하고 있었거든...”


언니가 엄마 아빠의 빚, 이 상황을 알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어쩌다 아빠가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놨을까. 언니는 캐나다에서 새로 산 자차에 부과된, 남은 세금과 보험료를 납부할 금액이 수중에 없었고, 그래서 아빠에게 돈을 빌리려고 했다. 언니는 언제나 그랬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였고, 감당할 수 없을 때마다 아빠를 찾았다. 그리고 아빠는 그걸 언제나 감당했다. 그걸 감당하느라 내 몫은 없었다. 그 없음을 나는 언제나 감당해야 했고. 


그런데 이번엔 엄마를 감당하느라 언니의 몫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우버이츠 하면 매달 50만 원 정도는 보낼 수 있나?”

“힘들겠지만... 해봐야지.”

“나는 지금 계속 마이너스라... 알바를 더 늘려야 할 것 같은데... 50만 원까지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30만 원 정도라도 보내볼게.”

“우리가 한 달에 100만 원씩 갚는다고 해도 1억이면... 1년에 1200만 원밖에 안 되네...”

“그런데 1억이 한참 넘을 수도 있는 거잖아, 지금...”


우선 엄마의 빚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엄마는 언니가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언니가 알게 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죽어버리겠다는 말까지 하면서. 그런데 나에겐 일부를 스스로 털어놨다. 엄마에게 사실을 캐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엄마를 잘 달래서 사실을 알아낼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화내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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