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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Aug 10. 2024

서로를 위하는 마음의 독성

침묵으로 엄마의 투자를 부추긴 우리

겨우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섰다. 추웠겠지, 2월이었으니. 그날의 온도는 기억나지 않고 열차를 타러 가던 깜깜한 길만 머릿속에 있다. 가로등 불빛이 있었지만 그냥 지하실 같았던 어둠. 매일 지나던 곳인데 낯선 마음과 익숙한 기분이 공존하던. 남편이 옆에 있었고,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언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진짜 큰일 난 거 같다.”

“왜?”

“빚이 1억이 넘는다는데?”

“뭐, 1억???????????????????????????”


모두가 잠든 새벽, 해가 뜰 기미도 보이지 않던 겨울의 독일 그 길 위에서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1억이라고? 많아도 몇 천만 원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단위 앞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은 황당함이었다. 대체 내가 독일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1억은 어떤 돈일까. 이미 너도 나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 1억. 요즘에는 재산 축에도 못 끼는 1억. 그럼에도 나는 가져본 적 없는 1억. 버티고 버티며 다니던 회사에서 벌었던 3년 치 연봉을 합치면 그 정도 되려나. 한 푼도 쓰지 않았을 때 이야기지. 한 달에 100만 원씩 저축해도 1년에 천이백만 원인데. 9년 가까이 모아도 1억이 생기는 게 아니고 그저 빚이 없어지는 거구나. 그런데, 난 지금 저축은커녕 저축한 돈을 한 달에 100만 원씩 까먹고 있는데. 


텅 빈 열차에 올라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이렇게까지 빚이 늘어나기 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우리가 독일에 있어서 어머니한테 너무 신경을 못 썼나 봐.”


애써 무시하고 싶던 생각이었다. 엄마에게 빚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투자를 하다 생긴 빚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부터 떠오른 생각. 내가 엄마에게 너무 관심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엄마를 자주 만났다면, 전화를 자주 했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 그걸 남편이 말해버렸다. 


“언니도 캐나다에 있는데,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우리가 몇 달에 한 번씩이라도 찾아갔으면 분명히 미리 알았을 텐데.”

“그렇다고 해도 엄마가 말 안 했으면 알 방법이 없잖아.”

“적어도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는 금방 눈치챘겠지.”

“......”

“짐 싸들고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한국에 가면 뭐가 달라져...?”

“빚을 갚아야지. 돈을 벌어도 한국에서 버는 게 낫잖아.”

“돈은 여기서도 벌 수 있잖아.”

“어떻게 벌 건데? 너는 여기서 까페 알바하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자기한테 엄마 빚 갚으라고 할 생각 없어. 내가 어떻게 그래.”

“너는 일이 이렇게 됐는데도 계속 여기 있고 싶어? 나는 이런 상황에서 계속 독일에 있고 싶지 않아. 네가 하고 싶던 경험 충분히 했잖아. 그냥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열차가 갑자기 멈췄다. 종점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여기가 어디지? 왜 여기로 왔지? 타야 했던 열차가 아닌 다른 열차를 탄 거였다. 6시 30분까지 까페에 도착해야 하는데 이미 6시 20분이었다. 다른 연결 편을 찾아봤지만 열차 파업과 공사로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웠다. 같은 오픈조였던 매니저에게 늦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이 옆에서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봤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 오래 걷는 길을 택했다. 





유리로 지어진 크고 둥근 베를린의 한 역사를 옆에 두고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밝은 목소리였다. 가끔 전화를 할 때마다 들었던 아빠의 밝은 목소리를 믿었었는데,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아빠는 언제부터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왔을까. 


빚이 얼마나 되냐고 묻는 내게 아빠는 알면 놀랄 거라며 주저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해결을 하지, 같이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지, 하는 말에 결국 빚이 1억이 넘는다고 털어놓았다. 엄마가 스스로 아빠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리가 없는데. 아빠는 어느 날 핸드폰을 켜둔 채로 잠든 엄마를 발견하고 이불을 정리해 주다가 우연히 핸드폰 화면에 떠 있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모에게 엄마가 보내려고 써둔 메시지는 ‘빚이 1억이 넘게 있는데 돈을 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빠는 노발대발하며 엄마를 깨워 캐물었고, 엄마가 빚을 져서 투자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걸 언제 알았는데?”

“작년 7월인가...”


엄마가 내게 아빠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며 돈을 빌리던 그때, 아빠는 이미 엄마의 빚이 1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빠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엄마의 빚에 대해 말하지 않았을 때, 이미 우리 둘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때 우리한테 바로 말 안 했어?”

“너희한테 어떻게 말하노. 걱정하는데. 너희가 무슨 돈이 있다고...”


엄마는 아빠가 언니한테 말하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가 정말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매월 돌아오는 엄마의 카드 값을 몇 백만 원씩 대신 내주고, 결국 감당이 되지 않아서 아빠 명의의 빚까지 몇 천만 원을 만들었다. 내가 엄마에게 돈을 보내주던 그때, 엄마의 빚이 고작 500만 원이라고 믿었던 그때, 아빠는 이미 엄마에게 그보다 더한 돈을 뜯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일을 하고, 딸들이 걱정할까 봐 전화할 때마다 밝은 표정과 밝은 목소리를 억지로 내고 있었다. 혼자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아빠는 울먹였다.


“너희한테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놓인다... 아무한테도 얘기 못 하고 혼자서 진짜 힘들었는데... 우리 딸이 다 컸네... 니가 같이 해결하면 된다고 하는 말이 아빠한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고맙다...”


결국 아빠를 걱정하던 나와, 나를 걱정하던 아빠는 침묵으로 엄마의 투자 중독을 부추기고 있었다. 문제를 공유하지 않고, 진짜 문제를 회피하고, 어쩌다 해결되길 바라면서. 나는 엄마의 문제를 내 문제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아빠는 그걸 자기의 문제로 만들었다. 나는 엄마가 그만하리라 믿었고, 아빠는 엄마를 막으려 했지만 혼자서 올바른 판단을 하기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옆에서 통화를 모두 들은 남편은 이미 한국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근해서 매니저에게 한국에 갈 수도 있다고, 아주 돌아갈 수도 있다고 얘기를 하라고 했다. 아빠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후에도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독일에 왔는데, 독일에 오기 위해 3년을 버티고, 독일에 와서 1년 반 동안 독일어만 공부하고, 이제 막 첫 학기를 마무리하려고 하고 있었다.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라고 수십 번 생각했지만 이렇게 무언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것도 엄마 때문에. 내가 어떻게 겨우 엄마를 벗어나서 여기에 왔는데, 다시 엄마에게 발목 잡혀 한국에 가야 한다니. ‘좋은 경험이었다.’ 하면서 돌아가면, 앞으로의 나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어딘가에 취직해서, 엄마의 빚을 갚으며 살면 되는 건가. 그게 옳은 일인가. 


몇 달 동안 혼자 고통받은 아빠를 생각하면서도 나는 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당연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 힘주어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적인 나에게 실망할까 봐. 


까페 앞에 도착해 남편을 돌려보내고 나니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잠에서 깬 지 두 시간, 내 앞에 있는 모든 세상이 변했다. 어제 나는 학교에 다녀왔고, 오늘은 그저 까페에서 일한 뒤 도서관에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을 저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아직 햇빛이 고개를 들기도 전인, 깜깜한 겨울의 아침 일곱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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