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만 싶었던 시간들
어제와 같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비슷한 시각, 새벽 네 시. 남편은 옆에서 자고 있었다. 분명히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여야 하는데. 겨우 24시간이 지난 지금, 너무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그런 현실 자각이 몽롱한 잠의 기운을 몰아냈다. 더 이상 잘 수 없어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언니와 긴 통화를 했다. 캐나다는 저녁이었다. 언니는 내가 비행기 값을 주더라도 한국에 오지 못한다고 했다. 회계 법인에서 일하는 언니는 상사에게 휴가에 대해 문의했지만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라 상사가 난색을 표했다고 했다. 재택근무 또한 서류 보안의 이슈로 불가능했다. 정식 회계사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최종 시험을 앞두고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오지 않는 선택을 했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임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도 없었다. 언니는 언제나 본인을 위한 선택을 했다. 나는 고작 2주 남은 첫 학기를 마무리할 수가 없는데. 남은 2주 때문에 절반의 수업을 다시 들어야 하는 선택을 하고, 내 결혼 생활은 이렇게 끝나버릴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내 선택이었다. 집중할 수가 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과제를 하고 남은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다. 한국에 가지 않고 내 일상을 살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엄마 아빠와의 일에서 책임감은 내 몫이었다.
언니는 적극적으로 자료를 찾았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져서 엄마의 상황과 비슷해 보이는 사례를 왕창 찾아냈다. 개인 파산이나 개인 회생과 같은, 빚을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이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찾아 나에게 보냈다. 하루 종일 언니와 전화를 걸었다 끊었다를 반복했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은 너무 제각각이었다. 어떤 영상에서는 요즘 코인이나 주식 투자로 인해 생긴 채무에 대한 면책이 인정되는 분위기라고 하고, 어떤 블로그 글에서는 개인의 사행성 투자는 절대 면책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엄마의 빚을 감면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또 다른 글을 보고 희망이 사라졌다가, 그렇게 널뛰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머릿속의 모든 기운을 뺏기고 가루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였다. 정신을 환기시킬 시간이 필요했고 그냥 걷고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입맛이 없었지만 그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우리에게 그런 시간을 주고 싶었다. 열차를 타고 시내로 나와 둘이서 한참을 걸었다. 손을 꼭 잡고, 꼭 붙어서 걸었다.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처럼, 한시도 손을 놓지 않았다.
둘 다 입맛이 없었던 탓에 어느 한 식당을 골라 들어가지 못하고 몇 시간을 걷기만 했다. 그러다 한 유명한 양조장에서 운영하는 식당을 발견했다. 뮌헨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독일에 오고 처음으로 둘이 갔던 뮌헨 여행에서 아쉽게 맛보지 못했던 맥주를 파는 곳이었다. 운명처럼 느껴졌다. 독일을 영영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타난 맥주. 우리가 그래도 이 맥주는 먹어보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
줄을 서서 입장한 그곳은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에너지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깐 시간여행을 하는 듯, 뮌헨의 브로이하우스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독일 전통의상을 입은 점원들이 양손 가득 생맥주와 슈니첼, 소시지 등을 바쁘게 나르고 여기저기서 프로스트! (Prost, 독일의 건배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점원이 길게 쭉 뻗은 수십 개의 테이블 중 가게 한가운데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의 바로 앞이었다. 이미 사람들로 빽빽하게 차 있는 장테이블의 중간에 몸을 구겨 넣어 앉았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까 고민했지만 기름진 음식을 받아들일 몸 상태가 아니었고, 무언가를 몸에 집어넣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맥주 두 잔과 브레첼, 그리고 뮌헨에서는 낮 12시 이전까지만 판매해서 번번이 놓치고 말았던, 뮌헨의 명물, 흰 소시지 바이스부어스트(Weißwurst)가 우리 앞에 놓였다.
그와 눈을 마주 보며 커다란 맥주잔을 부딪쳤다. 시원한 맥주 한 모음이 온몸에 퍼지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함께한 수많은 시간들이 스쳤다. 너를 처음 사랑하게 되었을 때도 우리 앞에 맥주가 있었는데. 맥주의 쓴맛과 단맛이 나를 우리를 조금 더 솔직하게 해줬었는데.
“나는 너랑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어. 너는 내가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사람이었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준 사람이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었어. 너는 나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 행복했어. 나는 너 때문에 여기에 올 수 있었고, 내가 바라는 일을 할 수 있었어. 그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그게 너를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서 정말로 미안해.”
“내가 너와의 결혼생활 전부를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힘든 점이 있었지만 나도 너와 같이 사는 게 정말 좋았어. 행복한 순간도 많았어.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 나는 사실 너와 함께 정말 오래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너와 헤어지는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다시는 너 같은 사람을 못 만날 거야.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 너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야.”
우리는 오래 서로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눈가를 흐리게 만드는 눈물을 닦았다. 그가 우는 나를 불쌍히 여겨서 나를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 불쑥불쑥 들었고, 그건 내가 눌러야만 하는 마음이었다.
“우리 이제 정말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자. 난 지금 오히려 어머니한테 감사할 지경이야. 우리가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잖아. 앞으로는 정말 우리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자.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괜한 의무감에 발목 잡혀서 살아가지 말자. 너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한국 가서도 마음 약해지지 말고, 너의 인생을 절대 포기하지 마.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고 정확하게 선을 그어야 해.”
“응. 그러자. 우리 앞으로 우리를 위해서 살자.”
밴드가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와 춤을 췄다. 그의 손을 잡고 이끌어 사람들 틈에 섞였다.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몸을 흔들었다. 이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만을 바랐다. 술기운으로 흐려질 이 기억이 너무 아쉬워서, 너와 내가 함께 있는 이 순간을 계속 붙잡고만 싶어서 오래 춤을 췄다.
한국에 가기 전, 이미 짜여 있는 까페 아르바이트 스케줄을 최대한 소화하고, 강의 출석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은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우선 한 달 전 연장을 신청해둔 비자를 수령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비자 재발급이 되지 않은 상태로 출국하면 재입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혹시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서 비행기 티켓 사는 일을 미루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3년짜리 비자를 신청했지만 학생비자는 보통 1년마다 갱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베를린 이민청을 방문했다. 수령 창구에 가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기다렸다. 담당 직원이 커다란 파일을 뒤적거리며 나와 남편의 이름을 찾았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비자 신청이었다. 워낙 외국인이 많아 업무가 마비된 베를린 이민청에서 몇 달을 기다려 겨우 예약일을 받은 게 한 달 전이었다. 가지고 있던 비자가 만료되고 새 비자를 받기 전까지 독일 밖으로 출국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비자를 받자마자 가는 곳이 한국이라니. 짧은 여행으로 영국이나 이탈리아 정도만 생각했는데.
카드로 된 비자를 받고 바로 유효기간을 확인했다. 마지막 숫자가 28이었다. 응? 뭐지? 분명히 독일에서는 연도를 맨 마지막에 쓰는데... 28이라고?
독일을 완전히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때, 우리는 4년 동안 문제없이 독일에 거주할 수 있는 허가를 받게 된 것이었다.
“우리 지금 뭔가 거대한 시뮬레이션 속에서 조종당하고 있는 건가...?”
이제는 정말로 비행기 티켓을 사야 했다. 가격과 일정을 고려했을 때 가장 빠른 날짜의 티켓을 구해야 했다. 여러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고, 티켓을 구매하려던 그 순간, 갑자기 너무 큰 두려움이 닥쳤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애틋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서로의 옆에 있던 시간이었다.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보고, 손을 잡고, 꼭 붙어 있던 시간이었다. 이제 이 비행기 티켓을 산다면 그 시간이 시한부가 된다는 거였다. 알 수 없는 미래 속에 몸을 던져야 하는 시간.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제를 앞두고 몸이 굳어버린 나를 보며 왜 그러냐고 묻는 그에게 말했다.
“그냥 자기 옆에 더 있고 싶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참으려 소파에서 일어났다. 황급히 눈물을 닦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진정하려고 했다. 내가 울면 마음이 약해질 그를 위해 울지 않아야 했다.
남편이 갑자기 화장실로 갔다. 물을 틀고 얼굴을 닦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돌아온 남편의 눈이 빨갰다. 나를 보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왜 울어.....”
그를 꼭 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 내어 우는 그를 안고 할 수 있는 것은 같이 울음을 쏟아내는 일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렇게 그칠 수 없는 눈물 앞에서 서로를 달래주는 일뿐이었다.
비행기는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와 나란히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내일이면 우리는 한국에 있을 것이었다.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기 전, 메신저를 확인하다 며칠 전 언니가 보낸 영상과 메시지에서 손을 멈췄다.
제목 : 3개월 만에 사라진 1억. 주식 해외선물리딩방 사기 그날의 생생한 이야기.
“혹시 엄마가 했다는 게... 이런 거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정상적인 거래소에서 선물 거래를 했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엄마가 투자라고 생각했던 모든 게 다 사기였던 거 아닐까?”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커졌고, 활주로를 달리던 바퀴가 땅에서 서서히 떨어졌다. 나는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