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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Sep 05. 2024

사기당한 사실을 믿지 않는 엄마와 아빠의 눈물

엄마는 계속 돈을 벌 수 있다고만 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의 대합실은 어디론가 떠나는 이들 없이 적막했다. 30인치 캐리어에 지친 몸을 기대 아빠를 기다렸다. 베를린을 떠나 온 지 꼬박 24시간이 걸려 도착한 이곳, 내가 태어난 도시. 


아빠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터미널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걸어오라는데 도대체 어딜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터미널이 있는 곳은 10대였던 내가 놀던 동네가 아니었다. 괜히 짜증이 났다. 아빠는 그냥 여기 앞으로 오면 될 걸 어디로 계속 오라고 하는 거야. 난 여기 잘 모른다고. 20년을 살았어도 나는 이 도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네. 20년을 같이 산 엄마에 대해서도 모르고, 낳고 기른 엄마도, 아빠도 날 모르는데 내가 이 도시에 대해선 뭘 알까.


멀리서 걸어오는 아빠가 보였다. 백발에 가깝게 머리가 센 아빠가. 6년 전, 내 결혼식을 계기로 꾸준히 머리를 염색하던 아빠였다. 손질하지 못한 아빠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타버린 아빠의 마음 같았다. 엄마를 혼자 견디다 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아빠의 머리카락. 솟구치던 짜증이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아이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우리는 꼭 끌어안고 아빠의 차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듯 아빠가 내 캐리어를 건네받았다. 서울에서 오던 내 캐리어를 번쩍 들던 그날들처럼. 


엄마는 자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한국에 왔다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내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매일같이 걷던 길을 지나쳐 집 앞에 도착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바로 그 집 앞에 도착했다. 


열쇠를 쓰다 바꿨던, 15년도 더 된 것 같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불 꺼진 집은 깜깜했다. 이제는 엄마가 쓰고 있는 내 방으로 갔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인기척에 슬며시 떠진 눈이 나를 향했다. 잠이 그렁그렁한 눈이 점점 커졌다. 


“엄마야, 지소가?”


얼굴이 축 늘어진 엄마가 내 앞에서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 원래도 눈에 띄던 미간의 주름이 더 깊게 패여 있었다. 엄마가 삶을 걱정하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시간은 대체 합쳐서 몇 시간일까. 엄마의 얼굴에 그 시간이 있었다. 


반쯤 누워서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쁜 엄마를 안았다. 어떻게 왔냐는 엄마의 말에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걱정돼서 왔다고 대답했다. 보고 싶은 건 거짓말이었고, 걱정된 건 사실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엄마에게 거짓말과 진실을 반씩 섞어서 말했다.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았으면 했고, 또 영원히 몰랐으면 했다.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엄마는 눈을 계속 동그랗게 뜨고 아빠와 나를 번갈아가며 살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나도 몰랐다. 그냥 엄마를 바라봤다. 


“이서방은?”

“독일에 있지.”

“그럼 혼자 왔나?”

“응.”

“시부모님은 니 온지 아시나?”

“아니.”


이 와중에도 남편과 시부모님에 대해 묻는 게 정말이지 엄마답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본인이 어떻게 보일지가 가장 중요한 엄마다웠다. 


“엄마. 내가 다 알고 왔다.”

“뭘?”

“엄마 아직도 계속 투자한다며.”

“무슨 투자?”


엄마는 아빠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무슨 투자...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아니다. 그런 거 아니다.”

“엄마, 내가 분명히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얘기했잖아. 그렇게 쉽게 돈 버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고.”

“아이... 그런 거 아니다... 이거는 진짜 돈 벌 수 있는 거다...”

“그게 뭔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지소야, 니가 이걸 한번 보고 판단을 해봐봐. 엄마가 원래 니랑 이서방한테도 해보라고 할라고 했거든? 이 리딩방이라는 게 있는데, 여기서 전문가가 리딩을 해준단 말이야. 그러면 사람들이 다 돈을 벌어.”


리딩방. 엄마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왔다. 





한국에 오기 전, 언니가 해외 선물 투자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한 영상을 발견하고는 링크를 보냈다.


https://youtu.be/G73W91WXILc?si=ByCYGSr6-_lcZ3lG


한 투자사기 피해자가 자신이 어떤 과정으로 사기를 당하게 되었는지, 피해 사실을 상세하게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영상 속 피해자는 주식 열풍이 불던 코로나 시대에 주식을 시작했고, 큰 손실을 본 후 주식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상품의 미래 가치의 상승여부에 배팅하는 해외 선물 투자에 대해 알게 되었고, 평소 무시하던 투자 관련 광고 문자에서 ‘1,000만 원으로 100억 만들기’라는 문구에 꽂혀 링크를 눌렀다. 그렇게 그는 투자 자문 오픈채팅방, 소위 ‘해외 선물 리딩방’에 입장하게 되었다. 채팅방에서는 ‘대표님’이라고 불리는 자칭 전문가가 실시간으로 매도와 매수 시점을 알려주는 ‘리딩’을 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리딩을 따라한 후 수익 인증을 캡처해서 올리고 있었다. 그걸 본 피해자는 300만 원으로 리딩방에 ‘탑승’을 시작했고 대표라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고작 몇 분, 몇 시간 만에 20만 원, 30만 원씩 돈을 벌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문제없이 수익이 출금되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이 ‘리딩방’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똑같이 대표의 리딩을 따라 했는데 원금 300만 원이 20만 원을 남기고 ‘로스컷’이 된 것이다. ‘로스컷’은 손실이 일정 금액 이상일 때 거래소에서 거래를 자동으로 청산하는 것을 의미했다. 다급해진 피해자가 1:1 문의를 통해 얻은 답변은 ‘다른 사람들은 투자금이 커서 손실을 버티고 버티다가 치고 올라가서 돈을 벌었는데, 당신은 원금의 금액이 크지 않아서 그걸 못 버틴 거다.’였다. 특별히 1:1 리딩을 해주겠다는 말에 그는 항암치료 중인 엄마에게 4천만 원을 빌리고, 남편의 돈까지 끌어 모아 투자했지만 결과는 또 ‘로스컷’.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계정으로 개인 메시지가 왔다. 그 사람은 이 모든 게 사기라고, 검색창에 ‘해외 선물 사기’라고 검색해보고, 그가 지금까지 했던 리딩방을 통한 투자가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그 피해자는 이 모든 게 사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투자를 진행한 줄 알았던 거래소는 일반 거래소와 비슷하게 만든 가짜 거래소였고, 거래 체결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제 시장에서 거래한 내역이 없었던 것이다. 



이 영상을 보고, 언니와 나는 엄마가 정상적인 거래소에서 해외 선물 거래를 했을지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왠지 영상 속 피해자와 엄마가 비슷한 사기에 걸려들었을 거라는 모종의 확신이 들었다. ‘돈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데, 돈이 없어서 돈을 못 번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만약 엄마가 정상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사기를 당한 거라면, 오히려 상황이 나을 것이었다. 엄마는 병원에 데려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투자 중독, 일종의 도박 중독 상태가 분명했다. 엄마는 천 원 한 장도 아까워하던 사람이었다. 돈에 전전긍긍하느라 어릴 때 외식을 한 횟수도 손에 꼽았다. 그런 엄마가 1억이 넘는 빚을 만들었다는 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직접 투자를 하다가 빚이 생긴 게 아니라 사기였다면, 엄마를 설득하기가 쉬울 것 같았다. 엄마가 벌인 이 모든 일이 엄마가 직접 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엄마를 용서하기도 더 쉬울 것 같았다. 사기당한 사실을 알려준다면, 충격을 받을지언정 더 이상 돈을 잃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입에서 ‘리딩방’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속에서 튀어나온 말은 ‘아, 다행이다.’였다. 엄마가 보여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 대화방을 보니, 영상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게 ‘대표’, ‘팀장’ 등의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리딩을 주도하고, 바람잡이들이 수익 인증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들어가 있는 방은 한 곳이 아니었다. 3-4개 정도의 방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매일같이 리딩이 진행되고 있었다. 


엄마에게 ‘리딩방 사기 피해자’의 영상을 보여줬다. 엄마가 영상을 보며 충격을 받고, 어떡하냐고 눈물을 흘리길 기다렸다. 



“아이고, 이 사람은 사기당했네.”


어안이 벙벙했다. ‘이 사람은’이라고...? 


“엄마, 엄마가 지금 하고 있는 거랑 똑같잖아, 이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하는 건 사기 아니다. 저런 말 안 한다. 돈 더 넣어야 한다고, 그런 말 하면 당연히 사기지. 엄마가 하는 데는 그런 말 하나도 안 하고 그냥 리딩만 해준다. 근데 다 돈을 벌어.”


엄마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엄마, 시키는 대로 따라 해서 돈을 다 벌면 엄마는 왜 못 벌었는데? 엄마는 왜 지금 빚이 1억이 넘는데?”

“나는 시키는 대로 안 했다. 마음이 급해서, 내가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내 마음대로 했다. 이제 진짜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감을 잡았는데.”


엄마가 뭔가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더 확실한 물증을 보여줘야 했다. 금융계좌통합조회 사이트에 접속했다. 엄마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핸드폰으로 본인인증을 한 후에 증권사 계좌를 조회했다. 엄마 명의로 개설된 계좌는 단 하나였고, 마지막 거래일은 2022년이었다. 선물 거래를 진행한 내역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알겠지. 엄마 명의의 증권계좌가 없고 거래 내역이 없는데. 어제도 오늘도 거래를 했다는데 그런 기록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 봐봐. 엄마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없잖아. 엄마가 하던 건 가짜 거래소라니까. 진짜 투자를 한 게 아니라고.”

“가짜 거래소는 아니지. 진짜 거래가 되는 게 실시간으로 보이는데 무슨 소리고.”

“엄마, 그 프로그램은 그냥 아무나 만들 수 있다고. 금융 거래라는 게 본인 명의 계좌로 해야 성립이 되는 건데, 엄마는 엄마 명의 계좌가 없다니까? 본인 명의 계좌가 없으면 엄마가 수익이 나도 돈을 어떻게 출금하는데? 안 주면 그만이잖아.”

“준다. 이건 다 수익 나면 돈을 준다. 사람들도 다 돈을 벌었다는 걸 보여주잖아. 엄마도 수익 났을 때는 다 빼서 받았다.”

“그게 다 믿게 하려고 주는 거라니까? 몇 십만 원 주고 몇 천만 원 빼가는 거라고. 지금 엄마 상황을 봐봐. 엄마가 돈을 벌었으면 빚이 왜 생겼는데? 그럼 빚을 다 청산하고 남았어야지.”

“그런 거 아니다. 사기 아니다. 돈 다 준다. 받을 수 있다.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잘못해서 그런 거다.”

“시키는 대로 안 했으면 더 문제네. 엄마는 투자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시키는 대로 하면 돈을 버는데 왜 마음대로 하는데? 전문 투자자들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고 원칙을 세워서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하는데. 엄마는 엄마가 마음대로 하다가 감당도 못할 빚이 생겼잖아. 그러면 엄마는 투자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이제 진짜 시키는 대로 할 거다. 그러면 돈을 벌 수 있다.”

“본인 명의로 하지 않는 투자는 성립이 안 된다고. 세상에 그런 투자는 없다고. 그런 건 다 사기라고.”

“사기가 아니고....... 변칙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엄마가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엄마는 사기당했다는 사실도 믿지 않고,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처럼 맹목적으로 리딩방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무리 비슷한 사례를 보여주고 증거를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여기에 와서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지금도 계속해서 투자할 생각만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엄마는 왜 이러는 걸까. 엄마는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걸까.


“엄마, 내가 엄마한테 지금 무슨 마음으로 왔는지 아나...?”


뭐라고 말해야 엄마가 내 말을 믿을까.


“엄마... 나 진짜 엄마 때문에 이혼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


“이서방한테 얘기했나?”

“그럼 어떡하는데, 와야 하는데.”

“하... 니는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데. 이서방이 이제 내를 어떻게 생각하겠노.”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엄마는 또 자기 체면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 때문에 망가질지도 모르는 내 삶은, 지금 엄마 앞에서 울고 있는 나는 보지 않고.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떤 사람인 줄 아나. 그 사람이 지금까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아나. 내가 힘들 때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아냐고. 엄마 때문에 지금 내가 그 사람을 혼자 두고 여기에 왔다고. 엄마를 도와주려고. 내가 그 사람이랑 헤어질지도 모르는데, 엄마한테 왔다고. 근데 왜 그러는데. 왜 사기라고 해도 안 믿는데. 왜 계속 돈을 벌 수 있다고 그러는데...”

“이혼은 무슨. 참내... 그런 얘기는 왜 하는데?”

“제발 생각을 좀 해봐...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제발 생각을 좀 해봐...”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어떡하는데. 방법이 없다. 이거 아니면 내가 돈을 벌 방법이 없다...”

“방법을 찾아야지. 그러려고 내가 왔잖아. 엄마가 말하는 방법으로는 절대 돈을 못 번다. 계속 더 빚이 늘어나기만 할 거다.”

“방법이 어딨는데... 방법이 없다...”





엄마를 방에 두고 아빠와 옆방으로 갔다. 아빠는 계속 내가 와서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했다. 혼자 너무 힘들었다고. 내가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 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고. 


아빠의 오른발은 퉁퉁 부은 채로 검지 발가락이 바닥에 닿지 않고 한껏 들려있었다. 엄지와 연결된 뼈는 혹이 난 것처럼 크게 툭 튀어나와 있었다. 


“발이 너무 아픈데... 돈이 없어서 수술도 못하고... 이번 겨울에 보일러도 한 번도 못 틀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아빠는 이제 진짜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너희도 다 키우고, 이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진짜 편하게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진짜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별일 없냐고 묻던 내 말에 아무 일 없다고 밝게 대답하던 아빠의 목소리가 겹쳤다. 내가 엄마의 문제를 내 문제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땅에서 고작 몇 주에 한번 전화로 피상적인 안부만 물었을 때, 아빠는 아픈 발을 이끌고 12시간씩 서서 일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아무 내색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일상을 보냈다. 밤이면 냉기로만 가득 찬 집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자 떨었을 아빠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어두운 밤, 아빠가 몇 번이나 울었을지 헤아려볼 수도 없었다. 그냥 내 앞에서 지금 울고 있는 아빠를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수술비 300만 원을 당장 줄 수 없는 내가 미웠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서, 아빠에게 선뜻 주겠다고 말하지 않는 내가 미웠다. 아빠를 혼자 사지에 몰아넣고 내 삶을 지키겠다고 아빠의 아픈 발을 눈앞에서 외면하는 나를 견딜 수 없어서,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아빠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서, 말없이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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