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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Sep 11. 2024

의사 앞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엄마

도박 중독 치료를 위한 병원행


한국에 오기 전부터 생각한, 내가 한국에서 해야 하는 일 중 1순위는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게 내가 한국에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엄마의 투자를 막지 못하는 아빠가 엄마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을 리 만무했고, 엄마가 아빠의 말을 듣거나 자진해서 스스로 병원에 찾아갈 리도 없었다. 


집에 도착한 날, 엄마에게 ‘당신은 지금 중독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하자 엄마는 코웃음을 쳤다.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병원은 무슨 병원이냐고. 그런 엄마에게 엄마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나는 엄마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다시는 보지 않고 살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그 와중에도 병원비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병원비는 전적으로 내가 부담할 거라고,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건 치료를 받는 일이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엄마는 정말 조금 이상했다. 내가 엄마의 빚을 다 찾아낼 때도 자포자기한 채로 있다가, 또 한 번씩 다가와서 신경질을 내다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빠와 함께 집을 팔기로 결정하고 대출금 상환 계획을 세울 때는 옆에서 조금이라도 이자를 줄이기 위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리딩방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으면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고 했다가, 2년이었다고 하다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다. 그 얘기만 시작하면 엄마의 눈빛이 변했다. 확신에 차서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가, 또 멍해지다가,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본인이 보이스피싱을 당한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도 황당하다는 듯이 깔깔 웃기도 했다. 아빠가 처음 엄마의 돈 문제를 알게 된 보이스피싱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엄마는 그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다가 어떤 업체와 연락이 닿았다. 그쪽에서는 낮은 이율로 신규 대출을 받으려면 지금 갖고 있는 1100만원의 카드론을 먼저 상환해야 한다고 했고, 직접 만나서 그 돈을 현금으로 건네주면 자신들이 카드론 상환을 처리하고 신규 대출을 처리해주겠다고 했다. 상대측에서 말하는 장소에 엄마가 갈 시간이 없다고 하자 ‘노약자를 위한 방문 출장 서비스가 있는데 특별히 해주겠다’며 우리 동네까지 찾아왔다.


엄마도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당시에는 뭐에 씐 것처럼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장 그 돈을 마련해 이자를 줄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친구와 이모에게 연락해 몇 시간 후에 바로 돌려줄 수 있다며 각각 400만원과 700만원을 빌렸다. 그리고는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나도 수천 번을 지나다녔던 편의점 앞에서 현금 1100만원을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건넸다. 심지어 그 일은 다른 일당과 통화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졌는데, 차에서 내리는 일당을 보고 ‘내렸습니다.’, 돈을 주면서 ‘돈 건넸습니다.’하고 시키는 대로 아주 착실히 보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분 후, 엄마의 핸드폰으로 ‘카드론 상환 영수증’ 이미지가 도착했지만, 당연하게도 그건 가짜였고, 엄마의 카드론은 그대로 있었으며, 1100만원만 추가로 잃어버리고 그들은 잠적했다. 어이없는 에피소드를 말하며 웃는 엄마 앞에서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움도, 질책도, 다 소용없어진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냥 황당하고 바보 같은, 사기꾼들의 말을 너무 잘 들은 엄마를 떠올리며 잠시 소리 내어 크게 웃는 것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를 바탕으로 엄마에게 다시 일상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특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엄마는 허리디스크 수술 후 약 10년 동안 꾸준히 하던 운동을 투자 중독과 빚에 허덕이게 된 이후 6개월 넘게 하지 않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가던 모임도 가지 않고, 아빠의 원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관계를 중단한 상태였다. 나와의 대화 이후, 엄마는 아주 조금씩 이전의 삶을 다시 생각하는 듯했다. 엄마는 혼자 생각에 빠져 중얼거리곤 했다. “운동을... 다시 간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나타난 엄마가 지인의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자주 방문하던 친한 지인의 집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숨을 돌리고 있던 것도 잠시, 약 30분 후에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다시 돌아왔다. 울면서.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 집 앞에서 주차까지 다 했는데, 들어가지를 못하겠어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일상의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지도, 쉽게 문턱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울고 있었다.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꿈에서 깨버리는 것이 무서운 아이처럼. 이 모든 게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여러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중 평이 좋은 두 곳은 가장 빠른 초진 예약이 5-6주 후였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엄마의 직장과 가까운 한 병원은 오후에 예약 없이 방문 접수가 가능했다. 엄마의 퇴근은 오후 두 시였다. 엄마에게 전화해 퇴근하고 바로 내가 보내준 주소로 오라고 했다. 엄마는 투덜거리면서 알겠다고 했다. 


병원이 있는 건물 앞에서 엄마를 만났다. 내키지 않는다는 듯 엄마는 뚱한 표정으로 아주 느리게 걸었다. 드문드문 화가 치밀었지만 ‘엄마는 환자다.’라고 마음속으로 계속 생각하며 주문을 걸었다. ‘화내지 말자. 엄마는 환자다.’ 


화사하고 밝은 조명과 인테리어로 꾸며진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들어섰다. 평일 오후임에도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가득했다. 성별도 연령도 어느 하나 치우치지 않고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 있었다. 엄마는 조금 놀랐다. 정신과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편견이 조금은 남아 있던 엄마는 막상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사람들이 진짜 많다. 그렇제?”


접수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 엄마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엄마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젊은 선생님이 마스크를 쓰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떤 일 때문에 왔냐는 말에 엄마를 대신해 지금까지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엄마가 투자를 하다 빚이 2억 가까이 생겼고, 사실 투자가 아니라 해외 선물 리딩방을 통한 사기였지만 믿지 않는다고, 도박 중독 증상이 있는 것 같아서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어머님은 투자를 그만하기가 어려우세요?”

“아니요. 그만하려면 지금도 당장 그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계속 하려고 하세요?”

“계속 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로 돈을 벌 수 있어요.”

“지금까지 돈을 버셨어요?”

“아니요, 저는 못 벌었는데... 제가 잘못해서 그런 거지, 그대로 하면 진짜로 돈을 벌 수 있어요.”


엄마는 의사 앞에서도 계속 리딩방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엄마의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데도 계속 나에게 했던 것처럼,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 분노와 창피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와 조금 대화를 해보더니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은 도박 중독에 관해서는 임상 경험이 많이 없고, 대학병원의 교수님들이 경험한 케이스가 많아서 도움이 될 거라고, 소견서를 써줄 테니 상급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이곳에서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급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에 가슴이 답답했다. 어느 병원을 추천해 달라고 했지만 콕 집어서 추천하기는 어렵고 주변의 상급병원 어디든 가라는 답변만 받았다. 진료비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의 좋지 않은 표정을 본 엄마가 차로 10분 거리에 몇 년 전 새로 생긴 대학병원이 있다고, 거기에 가보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했다. 병원에 오기 싫어하던 엄마가 먼저 다른 병원에 가보겠다고 하는 모습이 놀랍고 반가웠다. 엄마의 차를 타고 곧장 그 병원으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 녹지 사이에 크게 우뚝 솟아 있는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1층 접수창구로 왔다. 키오스크로 접수 신청을 하고,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 잠시 후, 전광판에 번호가 떴고 엄마와 함께 창구 직원에게 가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컴퓨터로 진료 예약 상황을 확인하던 직원은 가장 빠른 예약이 4월이라고 했다. 당시는 2월 중순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접수를 요청했다. 혹시 다른 예약이 취소되면 연락을 받을 수 있냐고 물으니, 따로 안내를 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수시로 전화해서 문의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가 원래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언제든 찾아가기만 하면 바로 엄마의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없으면 아무리 예약을 해놨다고 해도 엄마가 스스로 병원에 갈 리가 없었다. 최소 두 번은 내가 동행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야 엄마도 혼자 갈 마음을 먹을 것 같았는데. 진료를 시작하는 일조차 버거운 상황에 힘이 빠졌다. 


남은 건 엄마의 직장과 집에서 가장 먼, 오래된 병원 한 곳이었다. 대학병원 진료만을 기다리고 있기가 어려웠다.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접수가 끝나서 어렵지만, 언제든 진료 시간에 예약 없이 방문해서 접수가 가능하다고 했다.  


“혹시 도박 중독 관련해서 치료도 하시나요?”

“네, 그런 것도 합니다.”


한줄기 희망의 끈이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의 주차타워에 들어가지 않는 차 때문에 주위를 빙빙 돌았다. 한참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다 결국 요금이 비싼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왔다. 엄마는 심기가 불편했다. 삐걱거리는, 금방이라도 불이 꺼질 것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이 있는 3층에 도착했다. 작고 낡은 병원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가득했다. 내가 접수를 하는 동안 엄마는 팔짱을 끼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입을 삐죽거리며 서 있다가,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내 손에 이끌려 억지로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30분이 넘게 기다리다 엄마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까무잡잡하고 작은, 나이 든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어제처럼 엄마를 대신해 상황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나의 얘기를 듣더니 엄마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엄마는 대화를 주고받다가, 아니나 다를까 어제와 다름없이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럼 빚이 왜 생겼어요? 돈을 벌 수 있는데?”

“제가 시키는 대로 안 했어요. 계속 마음이 급해져서...”

“왜 시키는 대로 안 했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하하... 이제 시키는 대로 할 거예요. 진짜 할 수 있어요.”

“이렇게까지 빚이 늘었는데 또 할 거예요? 계속 투자 생각이 나나요?”

“네.....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옆에서 엄마의 얘기를 듣다 답답한 나는 선생님에게 한탄했다. 엄마가 하던 리딩방과 비슷한 사례가 많아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주고 사기라는 것을 알려줬는데도 믿지 않는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선생님은 우선 몇 가지 검사를 해보겠다며 신경검사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엄마의 몸에 전극이 몇 개 붙었다 떨어졌고, 다시 대기실, 그리고 진료실로 돌아갔다. 


검사 결과지를 본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엄마의 신경이 심하게 약해져 있다고 했다. 0부터 100까지의 척도에서 50 이상이 나와야 정상인데 엄마는 10-20 정도의 반응 밖에 없다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극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어서 자율신경계가 반응하지 않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지금 어머님께 중요한 건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에요. 백번 보여줘 봤자 소용이 없어요. 어머님은 지금 불이 난 건물 안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밖에서 금방 구해주겠다고, 거기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건물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유, 가만히 있으면 살 수 있을 텐데, 왜 저럴까.’라고 해도 불난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은 이성적인 사고가 안 돼요. 계속 뛰쳐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안 들려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불을 꺼야죠. 신경을 안정시켜야 해요. 일단 약을 드릴 테니 일주일 동안 먹어보시고 다시 오세요.”

“네...”

“그리고 도박 중독자의 빚은 절대로 갚아주시면 안 됩니다. 그건 계속 불을 붙이는 일이에요.”

“네...? 그럼 방법이 없는데... 엄마는 혼자 갚을 수가 없는데 어떡해요...?”

“돈을 주면 또 해요. 절대 돈을 주시면 안 됩니다. 신용불량자를 만들고, 감옥에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돈을 주시면 안 돼요. 그리고 주변인들한테 모두 다 알려서 절대로 돈 나올 구멍이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인이 책임지게 해야 해요.”


혼란스러웠다. 엄마의 상담치료를 요청했지만 순서가 아니라며, 일단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며 진료를 끝내는 의사에게 떠밀려 진료실을 나왔다. 수납을 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의 빚을 절대 갚아주면 안 된다니. 이미 엄마의 카드값을 아빠의 돈으로 갚았고, 아빠 명의의 집까지 팔아 엄마의 빚을 해결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 빚을 처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방법이 없는데. 엄마를 감옥에 보내라고...? 


엄마는 돈을 갚아주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이 마음에 안 드는지, 자신은 언제든 그만할 수 있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다며 툴툴거렸고,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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