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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Sep 18. 2024

엄마 말고, 내 옆에 있는 내 사람들

숨 쉴 수 있었던 시간

엄마가 출근하고, 조금 자다가 일어나 부엌으로 나왔다. 냉장고를 열어 아침거리를 찾았다. 인덕션 위에 있는 냄비를 열어봐도 밍밍한 국뿐이었다. 집에 오면 언제나 엄마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가득 차려줬었는데. 그게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는데. 집에 온 지 일주일째 내가 먹고 있는 건 엄마가 일터에서 요리하고 남은 음식들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엄마가 나를 위해 요리해주길 바라는 게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쓸쓸해졌다. 


전화가 왔다.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고 엄마 일만 빨리 처리한 뒤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결국 견디지 못하고 어젯밤 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생각해주는 누군가를 당장 만나고 싶었다. 아침에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정은 놀랐을 것이었다. 얘는 분명 독일에 있을 텐데, 한국 번호로 발신된 전화가 찍혀 있었으니. 설명을 해야 했다. 전화를 받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뭔데, 니 한국이가?”

“어... 흐흐. 그렇게 됐네.”

“왜, 방학이라서 왔나?”

“아니 그건 아니고...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무슨 일? 부모님 아프시나?”

“음... 아픈 게 맞긴 한데... 이야기가 길다...”

“밥은 먹었나?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역시였다. 정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항상 무언가를 먹이려고 하는 사람. 내가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 장난기 많았던 열네 살의 정은 나를 놀려서 화가 나게 만든 다음 닭꼬치를 사주며 다시 나를 달래는 그런 애였다. 그럼 열네 살의 나는 단순하게도 다시 슬며시 웃곤 했다. 닭꼬치도 좋았지만, 나를 달래려는 그 마음이 나를 다시 녹게 했다는 걸 너는 알까. 그 마음이 지금의 나를 조금 일으킨다는 것도.



한 시간이 지나고, 정이 집 앞으로 왔다. 정의 차 문을 열고 옆자리에 탔다. 반가운 마음에 꼭 끌어안았다. 2년 만에 보는 친구의 얼굴은 똑같았다. 


“먹고 싶은 거 있나? 독일에서 못 먹었던 거. 브런치는 거기서 맨날 빵 먹어서 질릴 거고.”

“아니, 브런치 먹으러 가자. 빵 먹고 싶다.”





아기자기한 까페에서 정을 마주보고 앉았다. 예쁘게 플레이팅 된 프렌치토스트와 그릴 샌드위치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그냥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순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아무 걱정 없이 그냥 근황을 나누는, 그런 소소한 일상이라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구체적으로 지금의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 그리고 남편과의 상황까지도. 엄마의 체면을 지켜줘야 할까라는 고민도 했지만, 그것보다 지금은 내가 더 중요했다. 내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어서.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평소 같으면 접시를 싹싹 비웠을 내가 잘 먹지도 못하고 말하는 동안, 정은 묵묵히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독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거기서 그냥 살아라.”


“그리고 남편도...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고 하지만, 진짜로 혼자 살게 되면 좋을 게 없을 것 같은데. 나는 니가 그 사람을 보내주지 말고 잡았으면 좋겠다.”


눈물을 떨어뜨리는 내 앞에서, 정은 얼른 더 먹으라고 접시를 밀어줬다. 





주말이 되었고, 할머니를 뵈러 갔다. 2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계신 할머니를 위해 엄마아빠는 매주 주말, 아니면 격주에 한 번은 꼭 할머니를 방문했다. 사실 그전에 할아버지가 편찮으실 때도, 아니 사실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우리의 주말은 언제나 할머니 댁, 아니면 외할머니 댁에서였으니까. 아빠와 엄마는 성실한 효자, 효녀였다. 조그만 아이였을 때는 그게 참 싫었는데. 할머니 댁에 가기 싫다고, 우리 집에 있고 싶다고 떼를 쓰면 아빠는 버럭 화를 내며 ‘니가 나중에 애 낳아서 할머니 집 가기 싫다고 하면 안 올 거냐’고 소리쳤는데. 나에게 아직 그런 일은 없고 그냥 내가 할머니가 보고 싶네. 


나름의 서프라이즈 방문이라 괜히 두근거렸다. 할머니는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머나먼 땅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의 막내 손녀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오랜 기억과 똑같은 대문과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마루로 들어섰다. 할머니는 안방에서 누워 계신 듯했다. 방문을 열고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누고? ........... 아이고, 지소가! 우째 왔노???”


할머니를 안았다. 더 작아진 것 같은 할머니. 주름이 가득해도 고운 우리 할머니. 


아빠의 상황을 할머니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칠순이 다 되어가는 아들이 며느리 때문에 빚더미에 앉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무리 그동안 잘하는 며느리였다고 해도, 할머니는 엄마를 용서할까. 


할머니의 시골집 구석구석이 다르게 보였다. 엄마아빠가 우리 집을 팔고 이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되면, 나도 이 집에서 오래 머무르게 될 터였다. 안채와 별채, 화장실이 따로 있는 집. 집 밖에 자리하고 있는 화장실은 온수와 냉수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따로이고, 온수를 별도로 받아 찬물과 섞어야 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바가지로 물을 끼얹어 샤워를 해야 하는 불편한 곳. 엄마아빠는 매일이 더 불편해질 것이고, 나도 불편하겠지만 오히려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시골집 정취도 느껴지니 나쁘지만은 않겠다 싶었다. 


할머니의 파김치와 함께 따끈하게 지은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 앞에 있으니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졌다. 그냥 할머니 옆에서, 뜨끈하게 열이 올라오는 방바닥에 누워서 티비를 보다가 스르륵 잠들어 한참을 잤다. 작은 방으로 오지 않냐는 엄마의 말을 거부하고 할머니 옆에 있었다. 한 세대를 건너뛰어 사랑만으로 가득한 관계 속에 지금은 숨고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왔나?”

“아니... 그냥 방학이라서 왔지.”

“그 먼데까지 가서. 힘들낀데. 말라꼬 공부를 하노.”

“그래도... 회사 다니고 할 때보다 마음이 편해요.”

“그렇나... 마음이 편해야 한다.”


한국에 온 뒤로 내내 엄마와 아빠의 삶을 걱정하다가, 나만을 걱정해주는 할머니의 따뜻한 목소리를 덮으니 가만가만 잠이 쏟아졌다. 엄마가 없는 그 따뜻한 방에서 밀린 단잠을 잤다. 






다음 날, 내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던 유일한 친구, 독일에서도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는 수와 둘이 만날 예정이었다. 결혼을 하고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수가 내 쪽으로 오기 위해 처음으로 시외 운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친구 연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 우리 할머니 댁과 가까웠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연은 사장님이 되었다. 아직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던 연의 가게와 연을 모두 보고 싶었다. 수의 운전 거리도 짧게 할 겸, 우리는 연의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다. 


연의 가게에는 연의 이모도 일하고 계셨다. 연의 이모는 아빠의 학교 후배였고, 엄마와는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데려다 줄 겸 엄마와 아빠도 가게에 들러 인사를 하기로 했다. 엄마가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해서 먼저 근처 슈퍼에 들렀다. 품목이 몇 개 없는 와중에 엄마는 가격을 물어보고 고민에 빠졌다. 


“엄마, 내가 계산할 거니까 그냥 좋은 거 사자.”

“휴지가 엄청 비싸졌네...”


가장 비싼 휴지와 키친타월을 골라 계산을 마치고 다시 아빠의 차에 올랐다. 가게 앞에 도착해서 아빠가 주차할 곳을 찾는 동안 혼자 내려 이미 도착했다는 수를 찾았다. 멀리서 수를 발견했다. 내 친구. 오랜만에 보는 내 친구. 


키가 큰 수에게 안겼다. 수는 눈빛으로 말했다. 고생했다고. 너의 마음을 다 안다고. 눈물을 간신히 참고 웃었다. 엄마아빠가 왔고, 착한 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밝게 인사했다. 


다 같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회색 후드티를 입은 조그만 애가 손님상에 낼 반찬을 담고 있었다. 웃음이 났다. 저 애가 여기 사장님이라니. 분명히 다들 알바생이라고 생각할 텐데. 우리를 발견한 연이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아픈 허리로 할머니가 밭에서 뽑아준 파 한 단을 건넸다. 쪼글쪼글하지만 단단한 손으로 꽉꽉 눌러 담아준, 거대한 한 단이었다. 


“야, 이거 최고의 선물이다. 요새 파가 얼마나 비싼 줄 아나.”


연의 이모와 엄마아빠의 요란스러운 인사가 한참 이어지다가 엄마아빠는 식사를 거절하고 돌아갔다. 야들야들한 보쌈과 통통한 낙지볶음, 갖가지 반찬들이 한상 차려졌다. 입맛이 돌았다. 연은 바쁜 와중에도 계속 필요한 거 없냐며 우리 테이블로 왔다. 같이 앉아서 얘기하고 싶은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손님이 계속 들이닥쳤다. 저 조그만 애가 어엿한 사장님이 되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고작 한 자릿수의 나이에 만났던 우리가 삼십 대가 되어 각자의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게 새삼스러워서 계속 웃음이 났다. 


수와 함께 근처 까페로 이동했다. 그 지역에서 나름 핫하다는 그곳은 천장이 높고 화이트톤의, 2층 건물이었다.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디저트도 가득했다. 디카페인 커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콘과 쑥으로 만든 케이크를 주문해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 이제야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벌써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 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우울한 내 이야기는 뒤로 밀어 두고 싶어 수의 일상을 물었다.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일상 속 드문드문 이어지는 연락은 표면적이었기에 서로를 속속들이 알 수 없었다. 마주보고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결혼 후 연고도 없는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된 수. 수의 결혼식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이미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우리가 더 멀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인생을 살 것 같은 예감. 그래서 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나를 위해서 두 달에 한번, 꾸준히 서울에서 수의 집으로 갔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는. 


그 비어있던 시간 동안 나를 생각하느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수에게 미안했다. 엄마로서 힘들었을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냥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상한 학부모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좋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계속 수와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다. 멀어져도 멀어지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그게 고마웠다. 


점심과 저녁 사이, 브레이크 타임에 짬을 내어 연이 우리에게 왔다. 몰아치는 점심 장사를 끝내고 지친 얼굴이었다. 고생한 연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물했다. 카페인을 급하게 수혈하곤 이제 살았다는 듯이 의자에 기대 연은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갑자기 어떻게 왔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연에게 전했다. 연은 심란해했다. 


“안 그래도 우리 엄마도 니 독일에서 왔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랬었는데. 이모도 너희 엄마 얼굴이 안 좋다고 하고.”


일단 연의 가족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더 숨길 게 뭐가 있냐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엄마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엄마를 조금은 지켜주고 싶었다. 






연이 다시 떠나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와 엄마가 할머니 댁에 들어가서 살기 위해서는 할머니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빠는 약한 할머니가 충격을 받아 쓰러질 것을 걱정했다. 할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저녁, 큰고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아빠가 와서 나를 태우고 큰고모 댁에 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아빠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큰고모 댁에 간다고 하니, 엄마가 울고불고 난리라는 것이다. 이 일이 알려지면 고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겠냐며, 얼마 후에 있을 가족모임 전까지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아빠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고. 그래서 아빠가 갈 수가 없으니 일단 집에 오라는 것이었다. 


다시 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왜 또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걸까. 엄마가 그러든지 말든지 아빠가 뿌리치고 오면 될 텐데. 왜 아빠는 또 엄마를 이기지 못하고 엄마의 뜻대로 되게 하는 건지. 그래서 나를 독일에서 여기에 오게 해놓고, 왜 또. 도대체 왜. 왜 내가 엄마랑 싸우러 또 가야 하는 걸까. 


버스를 타고 가려는 나를 수가 차로 데려다줬다. 


“내일 올 수 있으면 또 올게.”

“진짜 집에 올라가기 싫다.”


다시 나를 안아주고 떠나는 수를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와 싸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 엄마는 집에 없고 아빠만 있었다. 엄마는 얼마 전에 갔다가 돌아온 지인의 집에 할머니의 파를 전해주러 나갔다고 했다. 


“울고불고 난리였다며. 근데 갑자기 거길 갔다고?”

“아까 니 데려다주고 차 타고 오는데도 난리였다. 할머니 집에서 못 산다고. 할머니가 자기를 미워할 텐데 어떻게 같이 사냐고.”

“그럼 어떡하는데. 방법이 없는데.”

“집에 와서도 또 그 리딩방만 따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는 거라. 이제 진짜 거기서 시키는 대로 할 거라고. 그럼 돈 벌 수 있다고. 아빠가 진짜 너무너무 화가 나서 몇 대 때렸다. 근데도 무릎 꿇고 고모 집 가지 말라고 울고불고...”


내가 없는 사이 벌어진 일.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모습. 내가 본 적 없는 모습. 아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를 때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면서도 무서웠다. 그 단단한 손바닥으로 맞으면서도 고모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울면서 비는 엄마가 눈앞에 아른거려서 아득해졌다. 그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밖으로 나간 엄마가 무서웠다. 엄마는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기회는 지금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막을 수 없는 지금. 


“지금 가자, 고모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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