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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Sep 25. 2024

해외선물 리딩방 고발을 위해 찾아간 경찰서

리딩방의 사기 수법

아직도 리딩방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엄마의 생각을 고쳐놓기 위해서라도 경찰서에 가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엄마를 빚더미에 앉게 한 사기꾼들은 응당 벌을 받아야 했다. 피해자는 분명 엄마만이 아니었을 거였다. 어디서 또, 어떤 순진한 사람들이 어렵게 번 돈을 빼앗기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경찰서에 가기 전, 엄마의 피해 금액이 대략 얼마 정도인지 정리해야 했다. 엄마는 단 하나의 리딩방을 통해서만 사기를 당한 게 아니었다. 엄마의 카톡방을 확인했을 때만 리딩방이 3개였고, 가짜 코인 거래소까지 이용했다. 신고를 하기 전에 최대한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의 공동인증서를 이용해 주로 거래하는 은행 두 곳의 홈페이지에서 거래내역을 엑셀 파일로 다운받았다. 가짜 거래소로 입금한 돈을 입금계좌명으로 빠르게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건 오산이었다. 사기꾼들은 대포통장을 쉴 새 없이 변경했다. 약 한 달 간격으로 입금계좌가 변경되었고, 엄마는 돈이 생기는 족족 입금을 진행했기 때문에 입금 건만 해도 수백 건이었다. 만 원을 입금하기도 하고, 30만원을 입금하기도 하고, 300만원을 입금하기도 하는 식이었다. 


결국 캐나다에 있는 언니와 영상통화를 하며 파일 정리를 했다. 회계 업무를 하는 언니가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엑셀의 필터 기능을 이용해 이상한 입금계좌명을 모두 체크하여 한눈에 들어오게 했다. 각각의 입금계좌가 어느 사기 거래소에 해당하는지 도저히 혼자서 찾아낼 수 없어서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꽤 순순히 사실을 털어놨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은 하나의 주거래소였고, 한 달 전에 시작한 거래소가 하나, 그리고 개중에서 그나마 소액을 입금한 가짜 코인 거래소가 하나였다. 나머지는 리딩방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돈을 입금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 김지민 본부장’이 운영하는 리딩방. 엄마의 말과 계좌거래내역을 대조해 알아낸 바, 사칭임이 분명한 그 리딩방을 통해 엄마는 2022년 7월부터 당시 현재였던 2024년 2월까지 총 1억 5천만원을 잃었다. 그리고 ‘GOLDMOON 골드문 성공의 희망’ 리딩방에서는 800만원을, ‘쿠코인’ 사칭 가짜 코인 거래소에 입금한 금액은 추가로 100만원이었다. 


거래내역을 보며, 또 엄마의 말에 의해 추가로 알게 된 엄마의 투자 타임라인은 이러했다. 엄마는 2020년 8월, 코로나로 주식 열풍이 불던 그때, 갖고 있던 600만원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모두 잃은 다음 2021년 2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졌던 집을 판 돈 2천만원을 빼서 또 시드머니로 사용했다. 1년 후 2022년 2월, 또다시 돈을 모두 잃은 후 처음으로 카드론 대출 천오백만원을 받았고, 그해 3월, 만기 된 적금 2천만원을 또 태웠다. 엄마는 그 사이에 돈을 많이 잃은 다음 500만원을 주고 AI를 이용한 주식 매매 컨설팅까지 받았는데, 그것 또한 일종의 사기였던지 컨설팅의 도움으로도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 했다.


주식으로 4-5천만원을 잃고 절망 속에서 헤엄치던 엄마에게 ‘고수익’을 보장해준다는 광고 문자가 도착했다. 해외선물투자로 손실을 모두 만회할 수 있다, 그걸 전문가가 도와준다. 전문가를 믿고 따라 하기만 하면 잃었던 원금을 모두 회복할 수 있다. 너무 큰돈을 잃어버린 엄마는 그 돈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을 거다. 그런데 너무 쉬운 방법이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돈을 벌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2022년 8월, ‘이베스트투자증권’을 사칭한 리딩방에 발을 들인 것이다. 


엄마의 투자중독은 올바른 지식이나 원칙 없이 주식을 시작해 돈을 잃은 엄마의 다급함과 욕심, 그리고 무지한 사람들의 돈에 대한 마음을 노린 수많은 사기꾼들의 합작품이었다. 


엄마는 내가 독일에 오기 한참 전부터 이미 수렁에 빠져 있었다. 엄마의 도박중독은 이미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시작되었었다. 내가 독일에 왔기 때문에, 내가 엄마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엄마의 도박중독은 내 탓이 아니었다.





이틀에 걸친 자료 정리를 마치고, 나는 경찰서 앞에 서 있었다. 엄마는 이미 두 번 경찰서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보이스피싱 때, 그리고 한 번은 천만원을 입금한 가짜 코인거래소 건 때문이었다. 두 번 모두 엄마는 핸드폰만 들고 경찰서에 갔고, 경찰이 핸드폰을 가져가 대화 내용을 바로 복사하고 접수가 가능했다고 했다. 그래도 입금내역을 정리해가면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엑셀로 정리했고, 엄마의 핸드폰을 비롯해 가짜 HTS가 설치되어 있는 엄마의 노트북까지 챙겨갔다. 


직접 경찰서를 방문한 건 처음이었다. 동네 파출소 안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경찰서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대체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엄마는 이미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출입문에 다다르자, 경비원이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주식 리딩방 사기 때문에 신고하려고 왔는데요.”
 

내 말을 들은 경비원은 옆에 서 있는 엄마를 뚫어져라 봤다.


“그, 얼마 전에도 오시지 않았어요?”


엄마는 멋쩍어하며 맞다고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거 다 사긴데 왜 계속 하세요, 거참...”


얼마나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렸으면 경찰서 경비원이 엄마를 알아보는지, 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자기도 이 상황이 웃긴지 옆에서 머쓱해하면서 웃었다.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사이버수사대의 담당 형사가 우리를 데리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미디어에서 보던 탁 트인 공간에 여러 명의 경찰이 근무하고 있는 장소를 목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분리되어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연륜과 노고가 묻어나는 까무잡잡한 얼굴의 남형사와 30대 정도로 보이는, 강인한 얼굴의 여형사가 우리가 있는 방으로 함께 들어왔다. 형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 앞에 있으니 왠지 모르게 조금 긴장되었다. 자리에 앉아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말을 시작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남형사가 내 말을 자르고 말을 시작했다. 


“요즘 비슷한 사건으로 하루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경찰서에 오십니다. 어쨌든 경찰서에 오셨으니까, 저희가 경험적으로 말씀을 드릴게요. 이런 건 전형적인 사기 수법입니다. 정상적인 거래는 개인 계좌를 열어서 하는 거지, 그게 아니면 전부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오시는 분들 중에 두 분 중에 한 분은 이게 사기라는 사실을 안 믿습니다. 어머님이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받아들이셔야 하고요. 돈을 못 받기 때문에 포기를 해야지, 포기를 안 하면 피해액이 4억이 되고 5억이 됩니다. 따님 말 들으시고, 그만하셔야 합니다.”


형사가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라고 말하는데도, 형사 앞에서도 엄마의 주장은 그대로였다.


“아니, 근데, 이거는 돈을 다 받아요. 몇 번 출금도 했어요.”

“어머님, 저를 설득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힘들어도 믿으셔야 합니다.”


이어서 남형사는 책상 위, 유리 사이에 끼워진 작은 종이를 가리켰다. ‘물품사기(아이템거래) 제출 서류’라고 적힌 종이였다.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진정서(사이버팀에서 작성 후 접수) / 필수

계좌이체결과확인서 -> 해당은행 발행, 거래상대방 이름과 은행명, 계좌번호 명시 / 필수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대화내용 출력 / 필수

중고나라 등 거래사이트 판매물건 게시글(사진 등 포함) / 존재 시

신분증, 도장(없으면 지장 가능)



“사건을 접수하려면 여기 나와 있는 서류들이 필요합니다. 사건 접수하고 싶으시면 일단 집에 가셔서, 관련 서류 준비해서 다시 오세요.”

“제가 여기 계좌 내역 다 정리해서 왔는데요... 그리고 여기 노트북에 보시면 프로그램도...”

“이런 건이 하루에도 몇 건씩 들어오기 때문에, 저희가 일일이 이렇게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리딩방 카카오톡 캡처해서 A4 15장 정도 가져오시고, 은행에서 입금계좌명, 은행명, 계좌번호 명시된 서류로 가져오셔야 합니다.”


단호한 형사의 태도에 더 이상 내가 가져온 자료들을 봐달라고, 당장 사건을 접수해 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경찰서에 들어온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떠밀리듯 밖으로 내보내졌다.


경찰서에 오기만 하면 바로 사건 접수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힘이 빠졌다. 미리 전화를 해서 물어봤어야 하나, 하는 후회도 되었다.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엄마와 있는 시간이 쌓일수록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나를 짓눌렀다.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빠르게 마친 후 떠나고 싶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엇 하나 한번에 되는 일이 없었다. 계속해서 벽에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틀이 걸려서 이체내역을 정리했는데,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분명 내가 정리하는 것보다 형사들이 노트북과 핸드폰을 가져가서 복사하는 게 빠를 것 같은데. 그냥 캡처본 15장으로는 단서를 잡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더 자세히 대화방을 보든, 함정 수사를 하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들은 이 사기꾼을 잡을 의지가 있는 걸까. 


보이스피싱에 범죄의 검거율이 높아지면서 관련 일당들이 주식/해외선물 리딩방 사기로 수법을 바꿔서 활동하고 있다는 글을 봤었다. 빠른 수사가 가능한 보이스피싱과는 달리, 일종의 신종 범죄인 리딩방 사기는 관련 법안이 미비한 점이 이유였다.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으로 사건이 접수되면 실시간으로 해당 계좌 지급정지를 할 수 있지만, 리딩방 범죄와 관련해서는 해당법령이 존재하지 않아 불가능했다. 관련 범죄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피해자와 피해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빠른 대처를 할 수 있는 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인력이 부족해 피해자들은 계속 고통받고 있었다. 내가 직접 마주한 현실도 그러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신고를 위해서라도 가져오라는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경찰서에서 나온 게 오후 세 시였고, 여섯 시에 문을 닫기 전에 다시 서류를 가져가서 접수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근처에 있는 도서관으로 이동해 다시 은행 홈페이지에서 입금 계좌번호가 표기되어 있는 서류를 출력할 수 있는지 확인했지만, 불가능했다. 은행 영업점에 방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다시 엄마의 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은행 영업점으로 향했다. 창구 마감 5분 전에 도착해 번호표를 뽑았다. 셔터 문이 닫히고, 마지막 고객이 되어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어 담당직원에게 가서 입금계좌명과 계좌번호가 모두 표기된 이체 내역서 발급을 요청했다. 그런데 해당 은행에서 간단하게 출력할 수 있는 거래내역서에는 계좌번호가 표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신입직원은 상사를 불러 문의했고, 고민하던 둘은 이체 영수증을 모두 개별적으로 출력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내가 엑셀로 정리한 개별 건이 대략 260건이라는 거였다. 금요일 오후, 마감 시간이었기 때문에 당장 260건을 찾아 출력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해당 직원이 다음 주에 작업을 완료해 연락을 주기로 했다. 따로 시간을 비워 처리할 수 없고, 창구 업무를 진행하면서 틈틈이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추가로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직원 앞에 앉아 있는 고객 없이 비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업무를 오래 하면 고객들이 항의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신입 직원은 고객을 받는 사이사이에 우리에게 전달할 영수증을 조금씩 출력해야 했다. 


결국 며칠을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고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주에 경찰서에 다시 방문해야 했다. 





기운이 빠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찰서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리딩방 대화내용을 캡처하고, 자료를 만들었다. 이미 확인한 내용들이었지만, 차근차근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리딩방의 사기 수법에 대해 더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우선 엄마가 최근에 들어간 ‘골드문’ 방은 다음과 같이 운영되었다.


해당 리딩방에서는 몇 명의 ‘멘토’들이 돌아가면서 단체 리딩을 주도한다. 이 ‘멘토’들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면 투자 전문가로 보이는, 믿을만하게 생긴 인물 사진과 이력이 적혀 있다.(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어떤 변호사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도용한 것이었다.) 리딩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시간을 정해 진행되는데, 예를 들어 오전에는 홍콩의 증권거래소의 상태를 나타내는 ‘항셍지수’로, 밤에는 미국의 ‘나스닥 지수’로 선물 거래를 진행한다. 리딩을 진행하는 동안은 멘토를 제외한 회원들의 채팅이 금지된다. 


'골드문' 리딩방 대화 중 일부


멘토는 매도, 매수 시점, 거래량 등을 실시간으로 제시한다. 약 20분 동안의 리딩이 끝난 다음 멘토는 총수익을 인증한다. 그 직후 채팅방의 바람잡이들이 다들 수익이 났다고 하며 ‘멘토님 감사합니다~’ 등의 글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에 ‘매니저’라는 사람은 정회원 가입, 무료 상담을 위한 1:1 채팅을 유도한다.


채팅방에서 다른 이들이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고 혹해서 1:1 상담을 시작하면 자신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거래를 해야만 리딩에 참여할 수 있다며 가짜 거래소 프로그램인 자체 HTS의 링크를 전달하고, 전용 계정을 생성해 준다. 그리고 마치 거래자 본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주는 것처럼 입금계좌명에 실제 이름을 넣어 대포통장을 만들어 입금을 유도한다. (엄마 계정의 계좌주명은 ‘Early_OOO’이었다.) 그리고 입금을 하기 전에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입금신청’을 해야 한다. 일반적인 증권사 HTS에서는 실제 개인이 개설한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되면 실시간으로 잔액이 변경되는 것과 달리, 계좌와 프로그램이 연동이 되어 있지 않은 가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실제 계좌에 돈을 입금한 후 ‘입금신청’을 하면 사기꾼 일당들이 입금 내용을 확인하고 프로그램에서 실제 입금이 된 것처럼 숫자를 바꿔주는 것이었다.


'골드문 리딩방'과 연계된 '링크옵션 HTS' 프로그램 화면
주문내역 상세페이지. 실제 금융거래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 매우 조악하다.
'입금신청' 메뉴. 돈을 입금 후 사기꾼들이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입금 신청'을 해야 한다.



매니저와 1:1 대화를 하게 되면 ‘솔루션’이라는 1:1 리딩을 제안받는데, ‘솔루션’은 최소 500만원 이상 입금 시에 입금한 금액의 100%를 지원금으로 제공한다는 미끼 서비스였다. 위기 상황에서도 ‘로스컷’이 되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회원의 투자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행하는 서비스인 것처럼 속여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면서 사람들에게 더 큰 금액을 빼앗는 것이었다. 게다가 친구 추천 시 30만원을 지급한다는 정책도 있었다. 30만원은 당연히 현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 계좌의 시드머니를 추가해 주는 것이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30만원의 돈에 혹한 사람들은 지인을 이 사기의 소굴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엄마와 '골드문' 매니저의 대화 내용 중 일부


엄마는 1월 한 달 동안 800만원을 입금했고, 혼자서, 또 단체 리딩에 참여하면서 가짜 HTS로 열심히 매도와 매수를 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찍혀 있는 엄마의 잔액은 5,153원이었다.



이 ‘골드문’ 리딩방은 사실 언뜻 보기에도 허술한 점이 많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던 사기 리딩방의 행태와 같이, ‘오픈 채팅방’ 규제를 운운하며 방이 자주 폭파되었고 며칠 간격으로 기존의 방을 삭제한 후 다시 새로 만든 방에 기존 회원들을 초대했다. 또한 바람잡이들은 모두 오픈채팅방의 익명 프로필이었다. 수익 인증 또한 이미지를 이용하지 않고 그저 수익을 냈다는 말뿐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2년 가까이 속아 넘어간 주 거래소는 더욱 치밀했다. ‘E.Best Pro 김지민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리딩을 주도하는 비밀 오픈채팅방의 이름은 ‘필승 전략 마스터 히어로’였는데, 오픈채팅방의 개설일이 2022년 11월이었다. 무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방이 폭파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김지민 본부장’의 사진을 검색해 봐도 동일한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의 핸드폰에 남아있는 채팅방의 기록은 2023년 8월부터였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김지민 본부장은 매일 아침 경제 관련 뉴스를 정리하고 시장의 동향에 대해 장문의 브리핑을 남겼다. 가짜 HTS의 아이콘도 실제 존재하는 증권사인 ‘이베스트투자증권’의 아이콘을 사용했다. 바람잡이들 또한 실제 이름처럼 보이는 닉네임과 실제 사람의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었다. 수익인증 또한 실제 프로그램을 캡처한 것처럼, 얼마의 수익을 봤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매일 아침 '김지민 본부장'은 경제 동향 브리핑을 남긴다.
리딩 진행과 바람잡이들의 수익 인증



이 방이 이렇게 오래 운영되고 있다는 건, 신뢰할 만한 정보방이라는 방증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사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는 단서들이 있었다. 우선 실제 이베스트투자증권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HTS 프로그램과 엄마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아이콘은 로고는 같았지만 디자인이 달랐고, 프로그램 구성도 너무 단순하고 조악했다. 또한 엄마와의 1:1 대화에서 ‘김지민 본부장’은 프로그램을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를 따로 전달했다. 한 번은 프로그램 로그인이 안 된다는 엄마의 말에 엄마가 사용 중인 비밀번호를 물어서 재설정을 해주기도 했다. 일반적인 금융프로그램 이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매달 엄마의 시드머니를 입금할 입금 계좌가 변경되었다. 대포 통장을 이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해당 HTS 프로그램에서 확인해 보니, 입금 시에 항상 프로그램 내의 1:1 문의를 통해 입금 계좌를 확인받아야 했다. 입금계좌명도 엄마의 이름이 들어가긴 하지만 ‘페이먼츠_OOO’, ‘안강홀딩스_OOO’, ‘(유)태성세이프’ 등 제각각이었다. 이름을 검색해 보니 폐업한 회사의 이름을 쓰기도 하고, 현재 존재하는 회사의 이름을 도용하기도 한 것 같았다. 


'이베스트 프로' 사칭 HTS. 역시나 조악하다.
거래 체결 내역
입금 때마다 계좌 문의를 하라는 공지. 대포통장을 자주 변경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그램에 있는 ‘거래내역’은 최근 한 달분만 조회할 수 있고, 이전 자료는 모두 자동으로 삭제되었다. 공지사항이나 매니저의 1:1 대화에서 타 HTS 사용을 강력하게 금지했고, 엄마가 리딩을 따라 했음에도 손실이 난 것에 대해 문의하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엄마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엄마가 같은 사기꾼들에게 1억 5천을 뜯겼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들이 같은 또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또 폭파되지도 않는 하나의 채팅방을 그 긴 시간 동안 운영할 수 있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이 활개를 칠 수가 있는지, 어떻게 잡히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든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경찰서에 다녀와서도 엄마는 ‘김지민 본부장’을 믿고 있었다. 형사가 이 모든 게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라고 해도 그랬다. ‘골드문’은 방도 자주 폭파되고 좀 이상하긴 했는데, ‘이베스트’는 진짜라고. 실제 증권사랑 다르긴 하지만 편법으로 돈을 버는 곳이라고. ‘김지민 본부장’이 정말 잘 맞추는 사람이라서 이제 자기 마음대로 안 하고 따라 하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엄마는 계속 자기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모든 증거가 있어도 아니라고 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무너져버릴지 알고 있는 것 같은 엄마는, 계속 현실을 보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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