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 Sep 21. 2024

나라가 엄마를 구제할 수 있을까

개인 파산과 개인 회생 제도

고모 댁은 하얗게 빛이 났다. 예전에는 검은 계통의 장과 나무 느낌이 나는 진한 색으로 가득했었는데, 얼마 전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마쳤다는 집은 무언가 모두 반짝거렸고, 사방의 화이트 톤에 눈이 부셨다. 고모는 딸, 그러니까 사촌 언니의 결혼을 앞두고 조금 들떠 있었다. 언니가 예비 형부와 가구를 보러 갔다고, 내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거라며 깜짝 영상통화를 걸기도 했다. 고모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나와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맞장구를 치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꺼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마가 떴을 때, 아빠가 결국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사실은 상의할 일이 있어서 왔다는 아빠의 말에 고모는 어리둥절해했다. 


이야기를 들은 고모는 다른 고모들과 작은 아빠에게 전화를 해 형제자매 모두를 소집했다.


“오빠한테 일이 생겨서 상의를 해야 하니까,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우리 집에 지금 온나.”


엄마가 나간 지 꽤 지난 시간이었고, 집에 왔으면 아빠나 내가 없다는 걸 발견하고 연락이 올 법도 한데 엄마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소식도 나를 불안하게 했다. 우리가 고모 집에 왔다는 걸 알고 절망해서 무슨 일을 벌인 건 아니겠지. 왜 연락이 없을까. 그래도 계속 연락이 안 오면 좋겠다. 그냥 엄마가 가만히만 있어주면 좋겠다. 


큰고모의 전화 이후 당장 올 수 없는 둘째 고모를 제외한 4남매와 고모부들, 작은 엄마까지 1시간 사이에 모두 모였다. 일요일 저녁, 전화 한통에 달려오는 형제자매가 있는 아빠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걱정을 한가득 품고 있는 얼굴로 우리 앞에 앉았다. 작은 엄마가 말했다. 


“도대체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형님한테 전화했는데, 형님도 우리가 고모 집에 오는 거 모르고 있고 아무 말도 안 해주던데?”

“하이고... 니는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노?”

“아니, 아주버님한테 일이 있다 길래 형님한테 물어봤지!”


작은 엄마의 전화로 엄마는 아빠와 내가 큰고모 집에 있고, 다른 가족들이 모두 알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말하지 않고 엄마가 알게 되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불안한 생각이 계속 덮쳤지만 그럴 리 없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계속 말했다. 엄마는 작은 엄마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힘없는 목소리로 ‘그런 일이 좀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최대한 차분하게, 어른들에게 현재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아이고... 지소야... 느그 엄마는 왜 그래 어리석노.”

“옛날에 느그 어릴 때도 그 뭐 있었다아이가. 그때도 오빠가 돈 다 갚아주고.”

“오빠 팔자도 진짜 얄궂다.” 


그랬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 일종의 다단계 회사에서 일하다 고객들의 피해를 변제하느라 고생한 적이 있었다. 각종 영양제와 식품이 우리 집에 한가득 있었고, 엄마는 아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제품을 판매하려고 열성이었다. 나에게도 많이 먹였다. 엄마는 그 제품들의 효능을 정말로 믿었고, 아마도 그때도 그걸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공부하던 애가 독일에서 여까지 오고... 엄마 잘못 만나서 무슨 고생이고.”

“엄마를 잘못 만난 게 아니지. 엄마를 잘 만났는데 지금 아파서 그렇지.”


아빠는 이 와중에도 엄마를 감쌌다. 고모들이 엄마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도 엄마의 중독이 병이라는 이야기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전했다. 엄마는 지금 불이 난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엄마의 신경이 약해져 있다고. 치료가 필요하고 병원에 다닐 거라고. 


작은 엄마는 울었다. 


“안 그래도 요새 형님이 얼굴이 너무 안 좋아서 내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아니라고 하셨단 말이야. 근데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속이 다 문드러졌을 텐데...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고...”


막내 고모도 말했다.


“가면 우울증인갑다. 겉으로는 하나도 티 안 내고 하는데 속은 엄청 우울하고, 죽을 것 같고, 느그 엄마가 딱 그랬는 갑다.”


아빠는 그래서 우리가 집을 팔고 할머니 댁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할머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 모두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건 반대했다. 할머니가 분명 쓰러질 테고, 엄마를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할 거라는 이유였다. 작은 아빠가 묘안을 떠올렸다. 


“아파트 새로 하나 분양받았는데, 거기 돈 들어가야 해서 집 팔고, 완공될 때까지 몇 년 동안 엄마 집에서 산다고 해라. 그러면 그러려니 안 하겠나.”


그러면 할머니에게 아빠의 재정적 문제를 알리지 않고, 아빠 엄마가 할머니 댁에서 지내는 명분도 생길 터였다.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했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막내 고모부가 말했다.


“근데, 개인 회생이나 개인 파산은 안 됩니까? 내 친구도 보니까 빚이 많아서 개인 회생을 해가지고 빚 변제받고 하던데.”


작은 엄마가 거들었다.


“아니, 내 친구도 아들이 주식하다가 집안이 풍비박산 났잖아요. 아들 때문에 내 친구까지 신용불량자 되고, 그래서 개인 회생인지 그런 거 한 것 같더라고.”

“안 그래도 내일 엄마랑 같이 법무사 상담받으러 가보려고요.”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큰고모가 손안에 숨겨 놓은 지폐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어서 막내 고모, 또 작은 엄마까지 그랬다. 받지 않으려고 손사래를 쳤지만 계속 다시 쥐어주며,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고, 꼭 나를 위해서 쓰라고 했다. 눈물이 터져서 그 자리에 앉아서 엉엉 울어버렸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임에도 독일에서 날아온 다 큰 조카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그 마음이, 우리를 안타까워하고 나를 위로하는 그 마음 때문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을 해결하려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어른인 척하던 나는 나를 토닥여주는 고모들 앞에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었다. 


“다 괜찮아질 거다... 괜찮다...”





다음 날, 친구 연과 수가 우리 집에 와주었고, 짧은 오전 시간을 함께 보낸 뒤 연의 차를 타고 법무사 사무실이 모여 있는 법원 앞으로 갔다. 아빠가 지인을 통해 알아본 법무사였다. 퇴근하고 온 엄마를 만나 사무실로 들어갔다. 


법무사는 다른 의뢰인과의 상담에 한창이었다. 우리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렸다. 그 의뢰인 또한 개인 파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뭔가 해결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얕은 기대를 품었다. 


엄마의 도박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언니와 함께 인터넷으로 엄마의 구제 방법을 찾아봤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채무를 진 개인을 나라에서 구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그게 바로 ‘개인 파산’과 ‘개인 회생’이었다. 


대한민국법원 전자민원센터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개인 파산’은 봉급생활자, 주부, 학생 등 비영업자가 소비활동의 일환으로 물품을 구입하거나 돈을 차용한 결과 자신의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경우에 그 채무의 정리를 위하여 스스로 파산신청을 하는 경우를 뜻하며 ‘성실하나 불운한’ 채무자에게 경제적으로 재기, 갱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개인 파산 선고가 내려질 경우, 파산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고, 누군가의 후견인이 될 수 없는 등 공법 상의 제한이 생기고, 재직 중인 회사에서 퇴사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개인 파산을 신청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잔여 채무 면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파산자가 면책을 받는 건 아니었다. 파산자가 면책 신청을 하면 법원의 심문과 절차를 통해 최종적으로 면책을 판단하게 되는데, 여기서 ‘면책불허가사유’가 밝혀질 경우에는 면책을 받을 수 없다. 대표적인 불허가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채무자가 과다한 낭비 또는 도박 등을 하여 현저히 재산을 감소시키거나 과대한 채무를 부담하는 행위’였다.


‘개인 회생’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하고 있는, 총채무액이 무담보대출 기준 10억원, 담보부채무 기준 15억원 이하인 개인채무자가 앞으로 계속해서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3년간 일정한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의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채무의 종류나 원인에 의해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하는 경우는 없지만 일정한 금액 이상의 소득이 있는 ‘급여소득자’와 ‘영업소득자’만이 신청할 수 있었다. 


엄마는 ‘급여소득자’이지만 소득이 현저히 적었다. 그리고 도박을 통해 재산을 감소시키고, 과다한 채무를 얻게 되었기에 ‘개인 파산’과 ‘개인 회생’ 중 어떤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법무사의 상담을 받아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법무사가 이전 상담을 끝내고 우리에게 왔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준비한 질문들을 했다. 법무사의 말에 따르면, 우선 개인 회생은 2024년 2월 기준으로, 한 달 소득이 132만원 이상이어야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약 100만원 가량이었던 엄마의 소득으로는 신청이 불가능했다. 개인 파산은 걱정했던 대로 투기성이 있는 도박 행위가 면책불허사유가 되기 때문에 판사의 ‘재량면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의 경우에는 형사 고소 접수장 등을 통해서 투자 사기로 인해 빚이 늘어났다는 것을 강조하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법무사의 의견으로는 빚의 전액이 투자 행위로 이루어졌고, 보이스피싱 등의 사기 행위가 아니라 투기성으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판사가 좋지 않게 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최근에 주식투자나 도박으로 인해 과다한 채무를 지게 된 사람들이 많은데, 현재 우리 지역에서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관련 상황에서 면책을 불허하는 경향이 많다는 얘기도 전했다.


개인 파산과 면책, 채무 상환을 위해 아빠와 이혼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이혼을 할 경우 증여 등으로 이루어진 아빠의 고유재산은 지킬 수도 있지만 이혼 절차에서 공동재산에 대한 분할이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이혼 후 2년 이내의 경우에는 전 배우자 조사를 통해 위장 이혼을 검사하거나 전 배우자의 재산이 면책불허가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면책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파산자가 되는 것은 큰 이익이 없었고, 파산 선고 절차도 10개월에서 1년이 소요된다고 했다. 파산 선고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채권자가 추심 독촉을 덜 할 수도 있지만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채무 독촉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채업자와 관련해서도 문의를 했다. 우리의 걱정은 사채업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고, 돈을 갚더라도 등기 서류 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냐에 대한 것이었다. 법무사는 우리 쪽에서 법무사나 변호사를 대동해서 서울까지 간 다음 확실하게 등기 서류까지 정리하는 것을 추천했다. 


흐릿하던 정보들이 상담 이후에 선명해졌다. 그러나 그 선명한 결과는 엄마의 빚을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라도 엄마를 구제할 수 없었다. 빚을 면제받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 수 있는 미래는 우리에게 없었다. 남은 빚을 갚으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바로 부동산에 찾아갔다. 아빠가 이미 동네의 부동산에 집을 내놨지만 소식이 없었고, 그냥 작은 동네의 부동산을 믿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하루하루 이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일단 무서운 사채업자의 빚을 하루빨리 갚아야 했다. 옆 동네에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매물을 올려주는 부동산을 찾아 방문했다. 시세는 생각했던 것보다 낮았고, 한 집이 8,000만원, 한 집은 8,500만원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부동산 금액에 한숨이 나왔다. 채권의 금액이 높은 것도 문제였다. 그래도 집이 팔리면 다행이지만, 수요가 없는 작은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가 언제 팔릴지 알 수가 없었다. 중개사의 연락처를 받아, 직접 집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엄마의 차에 타서 다른 부동산도 가보자고 하자, 엄마가 신경질을 냈다. 집을 팔아서 어떡할 거냐며. 할머니 집에 들어가서 어떻게 사냐며. 집을 내놔도 팔리지도 않는데, 부동산을 한 군데만 가면 됐지 이렇게 된 걸 광고할 일 있냐며 불평을 했다. 이제 엄마의 말에 큰 타격도 없었다. 그냥 엄마를 환자라고 생각하고, 내가 할 일을 했다. 엄마는 내 성화에 결국 차를 돌렸고, 내가 내려서 부동산을 찾아갈 동안 차에 가만히 있었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이전 14화 엄마 말고, 내 옆에 있는 내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