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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Sep 28. 2024

떠나기 전에 해야 하는 일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엄마는 계속 현실과 허상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엄마를 가장 짓누르고 있는 것은 빚의 무게였다. 그건 아빠와 나에게도 그랬다. 상환 계획을 세우며 희망을 보다가도, 집이 팔리지 않으면 몇 달을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빚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히면 엄마는 내가 안보는 사이 다시 리딩방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수익을 인증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희망을 품었다. 자기도 저 사람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런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하루하루 나는 썩어가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환자라고, 엄마가 하는 말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병원에 다녀와도,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나서도, 법무사 사무소에 다녀와도, 심지어 경찰서에 다녀와도 리딩방의 실체를 믿지 않는 엄마를 보면 내가 여기 와서 하고 있는 일이 아무 소용없는 일로 느껴졌다. 나는 대체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학교를 내팽개치고, 심지어 남편까지 혼자 두고. 그러면 나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엄마면서 왜 우리가 이 일을 해결하려고 나서야 하냐고. 내 인생을 어디까지 망치게 할 셈이냐고. 이 지경이 됐으면 믿기지 않아도 믿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루빨리 이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더 오래 있다가는 내 삶의 끈을 내가 놓아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이대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가버리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것 같았다.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까지는 마무리하고 싶었다.


남편도 내가 빨리 서울에 올라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우린 아직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는 아직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 이야기는 내가 서울에 가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혼자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고 했다. 그에게 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고작 이틀의 시간이었다.





떠나기 전 남은 일은 우선 엄마의 눈앞에서 리딩방과 관련된 모든 것을 치우는 일이었다. 엄마의 핸드폰 번호는 이미 리딩방 사기 일당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들의 번호를 차단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20년 넘게 같은 번호를 썼고, 그 말은 즉 그 번호가 온갖 스팸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지금 엄마를 홀리는 리딩방을 없애더라도 비슷한 수법의 사기꾼들에게 다시 먹잇감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국에 와서 곧장 리딩방에서 나가지 못한 건, 경찰서에 갈 때 중요한 증거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핸드폰을 경찰에게 전달하면 경찰이 리딩방의 정보를 이용해 몰래 리딩방에 잠입하는 등 함정 수사를 바로 펼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헛된 상상이었다. 경찰이 우리에게 요구한 증거물은 그저 캡처화면뿐이었다. 고작 캡처화면 몇 개로 그 사기 일당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인력은 부족하고 관련 사건은 쏟아지는 경찰의 노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경찰서에 한번 다녀온 후, 그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맥이 빠졌다. 언젠가 경찰에게 필요할지도 몰라서 리딩방을 엄마의 핸드폰에 그대로 두는 것은, 오히려 엄마의 중독 증상을 부추기는 꼴이었다.


핸드폰 번호는 다행히 직접 엄마와 동행해 대리점에 가지 않아도 통신사 홈페이지에서 몇 가지 인증 후에 간단하게 변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 묘한 확신이 들었다. 리딩방 관련 범죄자들은 PC용 가짜 HTS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사용 가능한 앱인 MTS(Mobile Trading System)까지 개발해서 배포하고 있었다. 당연히 해당 앱은 정식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에 등록이 되어있지 않고 그들이 전달하는 별도 링크를 통해 다운받을 수 있었다.


엄마는 많은 어른들이 그렇듯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폰의 경우, 외부 링크를 통한 앱 설치가 쉬웠다. 그러나 아이폰의 경우, 애플의 강력한 보안정책으로 외부 앱의 설치가 제한적이었다. 또한 엄마는 새로운 기기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가 통화와 문자만 되는 피쳐폰을 사용해야 할 것 같았지만 모두들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대화를 하는 시대에 엄마를 주변인에게서 고립시킬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일을 할 때도 엄마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폰을 쥐어주면 기존의 스마트폰보다 범죄에 노출되는 확률을 줄이고, 엄마가 아주 간단한 기능만 쓰면서 생활할 수 있게 할 것 같았다.


중고거래 앱을 열어 당장 살 수 있는 아이폰을 검색했다. 몇 가지 상품 중 상태가 꽤 좋아 보이는 물건이 20만원에 올라와 있었다. 5년 전 출시된 모델이었지만 스크래치도 많지 않고 배터리 용량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엄마가 지금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도 좋은 게 아니었다. 20만원이면 고모들이 준 용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바로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날 오후 1시, 나는 또다시 내가 태어난 도시의, 난생처음 보는 한 상가 앞에 서 있었다. 난 이 도시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은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앳되어 보이는 한 청년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당근... 이세요?”

“네, 안녕하세요.”


우리는 근처의 벤치로 이동했다. 청년이 조심스레 아이폰 박스를 꺼내 건넸고, 열어서 상품을 확인했다. 생활 스크래치가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상태가 좋았다. 내 스마트폰에서 유심을 꺼내 끼워보고,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새, 아니 중고 아이폰에서도 문제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페이스 아이디도 설정해 보고, 카메라도 테스트했는데 모두 잘 작동하고 있었다.


“잘 되네요. 거래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더 좋은 폰 갖고 계신 것 같은데 왜 이걸 사시는지...”

“아, 엄마한테 드리려고요. 엄마가 사고를 좀 쳐서, 하하.”

“아... 저 이거 새 충전 케이블인데 사놓고 안 써서... 저는 필요 없어서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아, 좋네요!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청년에게까지 엄마가 사고를 쳤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나 정말, 그냥 누구에게든 이야기하고 싶구나. 나 사실 지금 너무 힘들다고. 내 속에 있는 걸 툭, 아무렇지 않게라도 뱉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한 청년이 나를 아주 조금이라도 안타깝게 여기는 것, 그게 나 지금 필요하구나.


고모들이 나를 위해 쓰라고 준 돈을 청년에게 건네면서, 그 돈으로 그가 나 대신 스스로에게 좋은 일을 하길, 속으로 빌었다.


난생처음 타보는 번호의 버스를 타고, 익숙한 동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엄마의 새 아이폰을 위해 액정필름을 붙이고, 카드를 넣을 수 있는 귀여운 핸드폰 케이스도 구입했다. 매장 점포정리를 하는지 모든 상품이 50% 할인 중이었다. 엄마의 또래로 보이는 여사장님은 딸과 함께 운영하던 가게를 혼자 운영 중이라고, 이제 힘들어서 쉬고 싶어서 가게를 정리한다고 했다.


“어? 아가씨 케이스도 이거랑 세트네? 이거 카드도 들어가고 편하고 좋죠? 나도 이거 쓰는데, 이게 단가가 비싸서 어디서 이 가격에 절대 못 사. 지금 원가로 주는 거야. 내가 빨리 팔아버리고 쉬고 싶어서.”

“아, 그러시구나~ 저도 이 케이스 좋아해요.”

“근데 폰이 왜 두 개야?”

“아, 이건 중고폰인데 엄마 드리려고요.”

“엄마가 아이폰을 써? 아유~ 엄마는 좋으시겠네~”


엄마는 과연 내가 사 온 이 새것도 아닌 스마트폰을 좋아할까. 난리나 안 치면 다행일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었다. 엄마 또래의 사장님, 이제 쉬고 싶어서 가지고 있던 매장을 정리한다는 그 사장님을 보며 우리 엄마는 지금 빚이 2억 가까이 돼서요, 저는 이제 경찰서에 제출할 거래내역서를 받으러 은행에 가야 하고요, 이건 엄마가 더 이상 사기꾼들에게 돈을 주지 못하게 하려고 산 핸드폰이에요, 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냥 엄마와 사이좋은 따뜻한 딸인 척 웃으며 가게를 나왔다.





주말 전 방문했던 은행에서 요청한 이체 영수증 출력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자료를 받으러 다시 방문했다. 꼬박 하루가 더 걸린 작업이었다. 신입 행원이 건넨 종이는 두툼했다. 창구에서 기다리는 고객들의 눈치를 보며 틈틈이 이 많은 영수증을 출력했을 그의 노고가 눈에 선했다. 수수료도 책정되지 않는 이 문서를 모으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이것 때문에 어제 야근을 한 건 아닐까, 미안하기만 했다. 고맙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서, 간식이라도 하나 챙겨 올 생각을 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서 몇 번을 고맙다고 말한 후 급히 자리를 떴다.


퇴근한 엄마와 만나서 먼저 가야 할 곳은 또 다른 은행이었다. 엄마가 가짜 거래소에 돈을 입금한 계좌는 두 개였고, 그중 하나는 농협은행 계좌였다. 우리는 추가로 그 계좌의 이체내역서가 필요했기에 NH농협은행으로 향했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렸다. 전광판에 번호가 뜨고, 창구로 향했다. 엄마는 뒤에 멀찍이 앉아 있었다. 엄마의 신분증을 내면서 입금계좌명과 계좌번호가 표기된 이체내역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원은 키보드를 톡톡톡톡 두드렸다. 그러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객님, 고객님 어머님 명의로는 저희 은행에서 계좌 조회가 안 되는데요. 저희 은행에 계좌가 개설되어 있는 게 맞을까요?”

“어? 엄마가 은행 앱으로 계속 이체하셨어요. 잠시만요.”


엄마에게 핸드폰을 받아와서 앱과 계좌번호를 직원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고객님, 이건 지역농협 계좌고요. 저희 NH농협은행이랑 지역농협은 시스템이 아예 달라서 저희가 이건 뽑아드릴 수가 없어요. ‘OO농협’이라고 지역 이름 붙어 있는 농협 지점에 가셔야 해요.”

“아....???????”


농협이 다 같은 농협이 아니었다니. 터덜터덜 은행을 나오자 농협에서 취급하는 국내산 식재료와 먹거리를 판매하는 작은 매장이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놓은 매장이었다. 엄마는 소녀처럼 좋아하며 그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유~ 너무 깔끔하고 예쁘게 잘해놨네~ 지소야, 저기 커피숍도 있다~”

“커피 마실래? 먹고 싶나?”

“아니~ 됐다, 비싸다.”


엄마는 언제나 밖에서 마시는 커피를 아까워했다.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작은 인스턴트 블랙커피 한 봉지를 두세 번에 나눠 타 마셨다. 자기는 이렇게 연한 커피가 좋다면서.


“왜, 그냥 마시자. 나도 먹고 싶은데.”

“아니다, 됐다. 엄마 아까 커피 마셨다.”

“아니면 빵 먹을래? 빵 맛있어 보이는데. 배 안 고프나?”

“와~ 진짜 맛있어 보이네... 그럼 하나만 사서 나눠 먹을까?”

“엄청 쪼끄만데? 두 개 사서 먹어보자.”

“됐다, 하나만 사라.”


엄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로케 두 개를 주문했다. 하나에 고작 2천원도 채 하지 않은 그 고로케를.


차에 올라 지역농협 지점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다시 우리는 출발했다. 운전하고 있는 엄마의 입에 고로케를 넣어줬다.


“아이고~ 맛있네. 니도 먹어라. 니 많이 먹어라. 엄마는 별로 배 안 고프다.”

“왜, 먹고 싶다며.”
 “아니, 그냥 맛만 보고 싶었던 거지 별로 배 안 고프다. 니 더 먹어라.”


삼천원짜리 커피 한잔도, 이천원짜리 빵 한 조각도 흔쾌히 사지 못하는 사람,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을까. 그 큰돈을 잃고, 닥치는 대로 돈을 빌렸던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천원 한 장 앞에서 쩔쩔매는 엄마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엄마의 입에 남은 고로케를 넣어주는 거였다.




다행히 이전 은행보다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던 지역농협에서의 서류 출력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다시 급히 차를 돌렸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 남아 있었다. 서류출력 수수료로 2만원을 넘게 쓴 엄마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괜히 우리의 목적지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중독은 무슨 중독... 진짜 웃기지도 않는다.”

“엄마, 내가 계속 말하잖아. 엄마가 병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지. 엄마가 제정신이었으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인 거냐고.”

“내가 그냥 마음을 안 먹어서 계속 한 거지. 그냥 마음만 먹으면 안 할 수 있다고.”

“그런 게 아니라니까????? 엄마가 이런 식으로 계속 비협조적이면 나 진짜 다시는 엄마 안 볼 거다. 제발 내가 나 좋자고 이러는 거가?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듣는 척이라도 좀 하라고!!!!!”


엄마를 애틋하게 보던 것도 잠시, 나를 화나게 하는 엄마의 말에 못 참고 또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냉랭한 분위기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도박중독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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