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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Oct 06. 2024

나는 엄마를 잃어버렸다

도망칠 수밖에 없다는 거짓말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아빠도, 엄마도 집에 없었다. 혼자 남은 나는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남은 짐을 정리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엄마의 노트북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출근한 사이 캐리어에 넣어서 숨겨버릴 생각이었는데 사라져 버렸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 노트북 어디 있어?”

“왜.”

“나 필요해서.”

“왜. 엄마 필요해서 들고 왔다.”

“집에 올 때 까먹지 말고 다시 가져와.”


엄마는 이전에도 노트북을 직장에 가져가서 오전 리딩에 참여했다가 나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불안감이 차올랐다. 계속 이런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도 노트북을 엄마에게서 빼앗아야 했다.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의 행방을 물었다. 엄마는 머뭇거리더니 계속되는 채근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노트북을 줬다. 


“니 그거 가져가면 안 된다. 그거 빌린 거라서 돌려줘야 한다.”

“노트북을 대체 누구한테 빌렸는데? 누가 노트북을 빌려주는데?”

“지원(가명) 씨가 빌려준 거다. 돌려줘야 한다.”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이전에도 같이 운동을 하는 지원 씨가 투자를 권유했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와 언니는 그 지원이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를 꼬드겨 무언가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평소에도 엄마에게 이런저런 선물을 하곤 했다. 이 모든 게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모조리 확인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엄마는 주변 사람의 권유로 투자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엄마는 투자 사실(정확하게는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며 사기를 당하고 있던 일)을 주변에 철저하게 숨겼고, 오히려 그분은 무언가 달라진 엄마를 걱정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엄마를 말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정상적인 투자 방법이 아니라고, 그만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분이 엄마에게 노트북을 빌려줘서 쓰고 있다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노트북 전원을 켜면 첫 화면으로 뜨는 마이크로소프트 계정의 이름이 ‘바른이S’였다. 처음엔 별생각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다. 왜 이름이 엄마 이름이 아닐까. ‘바른이S’는 대체 뭐지? 검색창을 열어 ‘바른이S’를 입력하자, ‘바른경제TV의 AI 주식매매 바른이S 국제인공지능대전 스폰서 성공적...’이라는 기사 제목이 상단에 떴다. 2021년의 기사였다. ‘바른이S’란 ‘바른경제TV’라는 유사투자자문 업체에서 개발한, AI를 이용한 자동 주식매매 프로그램의 이름이었다. ‘바른경제TV’의 연관 검색어로는 ‘바른경제TV 환불’, ‘바른경제TV 사기’ 등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말에 몇백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자문을 받았지만 큰 손실을 봤고, 환불을 신청했지만 차일피일 미룬다,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등의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노트북과 ‘바른이S’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300만원에 판매하던 인터넷 쇼핑몰의 링크를 발견했다. 엄마가 주식을 하다 손실을 보고, 유료 투자자문을 받았지만 돈을 잃었다는 사건이 이 ‘바른경제TV’와 관련되었고, 노트북 또한 어디서 빌린 게 아니라 이러한 경로로 구매한 게 분명해 보였다. 


‘바른경제TV’는 이런저런 마케팅으로 2021년경에 활발히 활동하며 ‘AI 자동매매 프로그램’이나 투자 자문 상품을 몇백만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판매하는, 사기라고 볼 수밖에 없는 행위로 거액을 끌어 모은 것으로 보였다. 약속한 만큼의 수익은커녕 큰 손실이 난 고객들은 환불을 요구했고, 그들이 환불을 차일피일 미루다 연락이 되지 않아 소송을 했다는 글도 여럿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사업체는 존재하지만 유튜브나 블로그 등의 활동이 1년 전에 끊긴 걸 보면 유령회사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설사 엄마가 그 회사에서 노트북을 대여했다고 하더라도, 엄마에게 노트북을 돌려받기 위해서 연락이 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엄마가 점심을 차리는 사이, 엄마의 노트북을 캐리어에 넣었다. 그런데 엄마가 노트북으로 할 일이 있다며 당장 노트북을 내놓으라고 했다. 내가 계속 정신을 다른 데 돌리려고 화제를 바꿔도 소용없었다. 집에서 나가기 직전에 다시 캐리어에 넣어버려야 했다고 생각하며 결국 다시 엄마에게 노트북을 줬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원래 노트북이 놓여 있던 자리에서 노트북이 사라졌다. 


“엄마, 노트북 어딨어?”

“왜, 니 그거 가져가면 안 된다. 엄마 써야 한다. 그거 돌려줘야 한다.”

“누구한테 돌려줘야 하는데. 내가 찾아봤는데 엄마가 그거 빌렸는지 샀는지 한 곳 망해서 없어졌다. 거기도 사기 치다가 사람들이 소송하고 난린데, 노트북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주지도 못한다.”

“아니다... 돌려줘야 한다. 엄마 필요하다, 그거.”


엄마는 내가 노트북을 가져가려는 걸 눈치채고 어딘가에 숨겨버린 것이었다. 엄마의 가방과 옷장 등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속이 타들어갔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 서울로 올라가기로 이미 남편에게 얘기를 해둔 상태였고, 고속버스를 타기 전에 엄마와 병원에 갔다가 경찰서에서 사건 접수를 마무리해야 했다. 엄마의 노트북에는 엄마의 이전 스마트폰에 있던 자료가 모두 백업되어 있었고, 엄마가 계속 사용하던, 리딩방과 연계된 가짜 거래 프로그램인 HTS도 그대로 있었다. 그것들을 포맷도 하지 않은 채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포맷을 한다고 해도, 그 노트북이 엄마에게 있는 한 엄마는 어떻게든 리딩방 매니저에게 연락해 다시 프로그램을 설치할 게 분명했다. 


일단 식탁에 앉았다. 전략을 바꿔서 엄마를 설득하기로 했다. 전날 도박중독센터에서 들은 대로, 엄마를 믿고 내가 엄마를 도울 거라는 걸, 엄마가 믿을 수 있도록. 그래서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엄마. 노트북이 왜 필요한 지 말해봐. 나는 엄마가 이제 투자를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믿는데, 노트북을 가지고 있으면 엄마가 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이 날 것 같아서, 내가 그걸 가져가야 할 것 같거든. 알코올중독자도 술을 안 먹어야지 하다가 술이 앞에 있으면 참지 못하고 먹게 되잖아. 그런 것처럼 나는 엄마 앞에서 투자를 하게 하는 것들을 없애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엄마가 엄마 손으로 나한테 그걸 줬으면 좋겠어. 엄마가 나한테 이제 정말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노트북을 나한테 엄마 손으로 주면 좋겠다.”

“안 한다... 노트북은 일단 두고 가라. 엄마가 진짜 그게 필요하다...”

“왜 필요한데? 엄마가 노트북 쓸 일이 뭐가 있는데.”

“일할 때도 필요하고... 아니 진짜 그거 빌린 거라서 돌려줘야 한다... 니가 가져가면 안 된다...”

“나중에 진짜로 돌려줘야 하면 내가 택배로 보내줄게.”

“안 된다.... 그거 있어야 한다...”

“나는 사실 엄마를 아직 완전히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엄마가 그동안 나한테 거짓말한 것도 너무 많고, 방금도 노트북 지원 이모한테 빌렸다고 거짓말하고. 그래서 나는 노트북을 두고 가면 너무 불안해서 생활을 못 할 것 같다. 계속 엄마가 또 그거 하고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엄마, 나를 위해서라도 엄마가 직접 나한테 노트북을 줘. 엄마가 그걸 주면 나는 정말로 엄마가 의지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을 좀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나한테 줘.”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겨우 입을 뗐다.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하고 그래도 돈을 못 따면, 그러면 진짜 그만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이 꽉 막혀왔다. 엄마는 내가 떠나자마자, 다시 리딩에 동참해 가짜 HTS로 하는 숫자 놀이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내가 떠나기만 하면, 바로 다시, 지금까지 엄마의 삶을 무너뜨리고 우리 가족을 깜깜한 어둠 속에 빠뜨린 그 행위를,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마자 다시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엄마와 마주 앉아 있던 나는, 의자를 들고 엄마의 옆으로 갔다. 엄마는 나를 보지 않고 계속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엄마. 우리가 계속 얘기하잖아. 그건 사기라고. 근데 왜 안 믿고 계속하려고 하는데?”

“안다... 그래서 딱 한 번만 더 해본다고... 딱 한 번만 더 했는데도 안 되면 진짜 그만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딱 한 번 했는데 그때 수익이 나면? 계속하려고?”

“......”

“엄마, 병원에서도 선생님이 그랬잖아. 엄마가 신경이 약해져서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고 있다고. 그리고 중독이라는 게, 그렇게 딱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다가 멈추지 못하고 계속하는 거라고. 그 한 번을 하지 않는 게, 우리가 전부 살 수 있는 길이다, 엄마. 생각이 날 수 있지. 엄마가 계속 그걸 오래 해왔으니까 생각이 나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노트북을 가져가려고 하는 거다. 노트북이 옆에 있으면 하고 싶어지니까. 그러니까 엄마, 제발 이번 한 번만 그 생각을 참아줘. 한 번만 더 하고 그만하겠다는 거, 그 한 번을 하지 말아 줘. 그러면 내가 정말로 엄마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제발 그 한 번을 하지 말아 줘.”

“딱 한 번만...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할게.”

“엄마, 나를 봐봐. 나를 봐봐. 엄마가 하고 싶어 하는 그 한 번, 그걸 이번에 하지 말아 보자. 응? 나를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참아줘. 내가 엄마를 믿을 수 있게 해 줘. 어제 선생님한테 얘기 듣고 와서 아빠도 나도, 또 언니도 이제 엄마한테 지금까지 이렇게 된 일에 대해서 엄마 탓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단 말이야. 우리는 이제 미래를 봐야 하니까. 근데 그러면 엄마가 협조를 해줘야지. 엄마가 이전처럼 계속 하겠다고 하면 우리가 같이 미래를 볼 수 없잖아. 그러니까 우리를 봐서라도 엄마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 줘.”

“....... 니가 엄마를 좀 봐줘라...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하게 해 줘라... 엄마도 이제 안다...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아서 가슴이 떨리고... 지난번에도 손이 떨려서 못 하겠더라. 근데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 딱 한 번만 더 하고 이제 진짜 안 할게. 진짜 마지막이다...”


엄마는 계속 내 눈을 보지 않았다. 내가 나를 봐달라고 애원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잠깐 보는 척만 하다가 다시 눈을 내렸다. 힘이 빠졌다.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스치듯 켜켜이 쌓인 기억이 떠올랐다. 나를 알아달라고, 나를 이해해 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엄마의 눈동자가. 그때의 엄마의 눈동자는 또렷했고, 지금은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도 못한 채 흐릿했지만, 처절한 내 외침이 전혀 엄마에게 닿지 못하고 튕겨나가고 있다는 것은 같았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엄마를 바꿀 수 없었다. 내 존재가 무력해졌다. 나는 내 삶을 걸고 엄마를 위해서 여기에 왔는데, 내가 오기 전과 지금, 엄마는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난 무엇을 위해서 이곳에 왔을까. 


엄마에게서 멀어져서 다시 식탁의 맞은편으로 돌아왔다. 앞에 놓인 수저를 들었고 밥알 몇 톨을 겨우 입에 넣고 씹었다. 차가웠다. 내가 한국에 오고, 이제 떠나려는 오늘까지, 엄마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따뜻한 새 밥을 지어준 적이 없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언제나 맛있는 밥을 먹이던 엄마였다. 항상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묻고, 그에 맞춰 음식을 해주던 엄마였다. 엄마의 밥은 내가 유일하게 느끼던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는 내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도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엄마의 사랑이 사라졌다. 



“나는..... 지금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아...”


엄마의 손을 놓친 어린아이처럼, 그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나를 엄마는 그저 인상을 쓴 채 멀뚱멀뚱 바라봤다. 저 애는 왜 울고 있을까, 하고 바라보는 또 다른,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병원 갔나?”

“아니...”

“왜, 무슨 일 있나?”

“엄마가... 노트북을 안 준다...”

“왜?”

“딱 한 번만 다시 해보고 싶대. 내가 그 한 번을 안 해야 하는 거라고 계속 얘기하고, 한 시간 넘게 얘기했는데 말이 안 통한다. 나 진짜 너무 힘들다, 아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노!!! 엄마 바꿔 봐라.”


전화기를 엄마에게 건넸다. 화가 난 아빠가 내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엄마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다시 나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니한테 노트북 안 주면 빚 내가 절대 안 갚아줄 거니까 알아서 하라 했다.”


상담사 선생님이 엄마한테 협박하지 말라고 했는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나는 그 어떠한 의욕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빠의 말을 듣기만 했다. 아빠는 엄마가 그래도 노트북을 주지 않으면 다시 연락하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갑자기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어디론가 갔다. 오분 정도 지났을까, 엄마가 무언가를 거실 테이블 위에 신경질적으로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엄마가 말했다. 


“노트북 저기 갔다 놨으니까 들고 가든지 말든지 니 알아서 해라.”


거실로 가보니 정말로 노트북이 있었다. 엄마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캐리어 가장 깊숙한 곳에 노트북을 집어넣었다. 엄마는 화가 잔뜩 난 채로 밥상을 치우고 있었다. 화가 묻은 손으로 내려놓는 식기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엄마에게 노트북을 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식탁을 정리하는 동안, 남은 짐을 모두 정리해서 캐리어를 닫았다. 이미 시간은 오후 세 시가 넘었고, 신경정신과의 접수 마감 시간은 네 시였기 서둘러야 했다. 


책과 CD, 옷가지로 가득 찬 30인치 캐리어는 내가 혼자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4층이었던 우리 집에서 나는 그 캐리어를 제대로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질질 끌며, 바퀴가 깨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엄마는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본체만체하며 먼저 1층으로 내려갔다. 


엄마의 작은 차 조수석을 뒤로 한껏 젖히고 조수석에서 발을 두는 공간에 캐리어를 실었다. 뒷좌석에 실으려고 했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좌석 위로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좁아진 뒷좌석에 다른 짐 가방과 몸을 구겨 넣었다. 엄마는 내가 낑낑대는 모습에 눈길도 주지 않고 가만히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얼른 출발해야 한다고 하자, 엄마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계속 불만을 중얼거렸다. 계속되는 재촉에 신경질적으로 시동을 걸고 액셀을 세게 밟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공포였다. 분노로 가득 찬 엄마는 액셀과 브레이크를 넘나들며 난폭하게 운전했다. 무서웠던 나는 안전벨트를 급하게 당겨 채우려 했지만 시트 깊숙이 묻혀 있는 고정 장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고정 장치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 나는 안전벨트를 몸의 대각선 아래로 당긴 채로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벨트와 함께 시트 안쪽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죽음을 생각했다. 지금 사고가 나서 죽는 게 나을까. 엄마가 죽지 않고 다치면 어떻게 할까. 지금 사고가 난다면 엄마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아빠는 더 불행해질까. 


엄마의 분노의 질주 때문인지 병원에는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엄마에게 약은 잘 먹고 있는지, 투자 생각은 계속 나는지를 물었다. 


“약 먹으면 좀 멍해져서 안 먹고 싶은데...”

“신경이 지금 계속 자극이 되어 있는 상태라, 약을 먹으면 차분해지면서 좀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아주 나쁘지 않으면 꾸준히 먹어 봅시다.”


짧게 진료를 마무리하려는 의사에게 황급히 말을 걸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진료 계획을 물었다.


“제가 이제 오늘 서울로 올라가서 독일로 돌아가는데,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하실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상담 치료 같은 건 안 하시는 지도 궁금하고요. 약만 먹는다고 괜찮아지는 건지 걱정 돼서요.”

“치료에도 단계가 있어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어머님은 불이 난 건물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일단 불을 먼저 꺼야지,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불이 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예방 교육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약을 먹는 게 지금 불을 끄는 과정이고요. 약을 먹고 신경이 어느 정도 괜찮아지면 그때 도박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는 상담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네...”

“그런데 따님이 가시면 아마 어머님이 혼자 잘 안 오실 텐데. 아버님은 같이 못 오시나요?”

“아.. 아빠는 병원 진료 시간에 일을 하셔서요...”

“주말은요?”

“토요일에도 일을 하세요.”

“흠... 어머님, 혼자 오실 거예요? 지금 신경이 많이 약해져 있으니까, 그거 꼭 치료하셔야 합니다. 잘 오실 수 있겠어요?”

“..... 혼자 오면 되죠 뭐.”


엄마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연신 의사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병원에 다녀와서 엄마는 아까보다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이제는 경찰서에 가야 했다. 


“내가 그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사기 아니라고 하더라. 경찰서는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엄마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리딩방 일당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엄마의 이전 전화번호부를 옮겨놓는 과정에서 관련된 연락처를 삭제는 것을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내가 그 사람들이 엄마한테 연락 못 하게 하려고 전화번호를 바꾼 건데... 엄마가 스스로 먼저 연락을 해서 번호를 알려주면 어떡하는데...”

“아니... 사기 아니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내 주민등록번호랑 주소랑 직장이랑 다 알고 있는데, 신고했다고 찾아오면 어떡하노...”

“걔네가 사기 친 사람이 엄마 혼자도 아니고 엄마가 신고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데. 그럴 일 없다.”

“사기 아니고... 내가 한 건데... 경찰서 안 가도 될 거 같은데...”

“엄마, 사기꾼들은 벌을 받아야지. 지금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신고해야 한다.”


나의 계속되는 성화에 못 이겨 엄마는 결국 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다시 경찰서로 들어갔다. 얼마 전 방문했을 때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대기실에서 형사들을 기다렸다. 


우리를 데리러 온 형사들은 이전에 만났던 이들과 달랐다. 40-50대로 보이는 여형사와 그보다 젊은 또 다른 여형사가 우리와 함께 진술실로 들어왔다. 이전과 동일하게 형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전 방문 시에 요청받은 자료를 가져왔다고 말하니, 진정서를 양식을 주며 작성하라고 했다. 사건을 육하원칙에 따라 서술하면 된다고 했다. 게다가 각각 리딩방 별로 진정서를 따로 접수해야 한다고 했다. 종이가 앞에 놓이자,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1회성으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고 엄마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형사의 도움으로 일단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베스트투자증권’ 사칭 리딩방에 대한 진정서 작성을 마쳤다.


서류를 쓰는 동안 잠깐 자리를 비웠던 형사들이 돌아왔다. 진정서와 함께 준비한 서류를 건넸다. 두툼한 영수증 뭉치를 본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이렇게 많나요?”

“네. 엄마가 2022년부터 여기에 돈을 넣으셔서요...”

“아니... 이걸 이렇게 주시면 저희가 일일이 확인을 할 수가 없어요. 엑셀 파일로 정리를 해오시든지 해야 하는데...”

“제가 이전에 왔을 때 엑셀 파일로 정리를 해 왔었는데, 그때 다른 형사님이 은행에서 계좌번호 있는 서류로 떼 오라고 하셨고요. 은행에서는 계좌번호 나오는 서류가 이거밖에 없다고 해서 이렇게 받아왔는데요...”

“근데 이건 건수가 너무 많아서... 이렇게 하면 접수를 해드릴 수가 없어요...”


화가 나는 동시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지금 처음 오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 왔을 때는 내가 자료를 보여주려고 해도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가져오라고 하더니, 시키는 대로 준비를 해왔더니 또 이전에 준비한 게 필요하다니. 내가 언니와 정리했던 엑셀 파일은 나의 다른 노트북에 있었고, 그건 차에 있었다. 


“제가 여기에 사는 게 아니고 독일에 살아서 오늘 가야 하거든요. 제가 오늘 처음 온 게 아니고 분명히 지난번에 왔을 때 다른 형사님이 이렇게 가져오라고 하셔서 준비해서 온 건데, 또다시 가지고 오라고 하시면 저는 할 수가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접수를 할 수 있는 건가요...”


울먹이며 말하는 나를 보고, 형사들은 난처해하며 다시 자료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A4용지와 풀을 가져와 조그만 영수증들을 시간 순서대로 A4용지 한 장에 영수증 4개씩 붙여서 정리해 달라고 했다. 열심히 붙이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경찰서가 문을 닫는 오후 6시가 코앞에 있었다. 


더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형사가 영수증을 열심히 붙이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서류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여기, 골드문은 내역이 적네요?”

“네. 골드문은 엄마가 한 달만 하신 거고 이베스트는 2년 가까이하셔서요. 그리고 그건 다른 은행에서 이렇게 표로 정리된 문서로 주셨어요.”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이거는 지금 당장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우선 오늘은 골드문 건만 접수를 하시고요. 이베스트 건은 제가 설명해 드린 대로 영수증 정리해 오셔서 접수합시다. 어머님도 지금 설명 같이 들으셨고, 어렵지 않으니까 다음에는 혼자 오셔서 접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이렇게 사건 접수를 해서 범인이 잡히면 사기당한 돈을 받을 수 있나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신고된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를 해서 범인을 특정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고요. 범인이 잡힌다고 돈을 바로 돌려받으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범인이 검거되면 신원을 알게 되니 다시 민사소송을 하셔야 해요. 민사소송에서 승소를 하시면 돈의 일부를 돌려받으실 수도 있지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골드문 리딩방에 대한 진정서 접수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왔다. 가장 큰돈을 빼앗긴 리딩방에 대해서는 아직 접수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접수를 하더라도, 범인이 검거되더라도 돈을 돌려받으려면 또다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맥 빠지게 했다. 뭐가 이렇게 힘든 걸까. 뭐가 이렇게 쉽지 않은 걸까. 왜 피해자가 이 무거운 일들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걸까. 피해자는 이미 지쳐있는데, 왜 피해를 입은 우리가 이 모든 걸 증명하고 다시 떠올려야 하며, 왜 지치고 지치는 이 과정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우린 이미 너무 지쳤는데. 


차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엄마와 나는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말을 꺼냈다. 


“꼭 오늘 가야 하나...? 시간도 늦었는데 내일 가라 그냥...”

“내일 오전에 할 일도 있고... 친구한테 오늘 간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서 가야 한다.”

“그냥 내일 간다고 하면 안 되나...”


엄마의 말을 들어주기에 나는 너무 지쳤다. 아빠도, 엄마도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하는 이 상황에서 계속 가야 한다고 거절하는 내 마음에는 돌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그에게 가야 했다. 


“엄마, 그거 알려준 대로 혼자 가서 접수할 수 있제? 내가 다시 알려줄 테니까 꼭 다시 경찰서 가서 접수해라.”

“....... 안 할란다. 신고해봤자 돈도 못 받는다며... 괜히 내가 신고한 거 알아서 찾아오면 어떡하는데... 그냥 안 할란다...”

“그래도 해야지...”

“찾아올까 봐 무섭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엄마한테 엄청 친절하게 잘했다. 엄마 말도 잘 들어주고, 좋은 사람들이다. 신고 안 할란다.”


엄마의 그 말이 너무 슬펐다. 그들은 엄마의 돈에 대한 갈망뿐만 아니라, 마음을 이용했다.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으면, 사기꾼들의 별 것 아닌 친절에 마음을 줬을까. 그들이 사기를 쳤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산 걸까. 열심히 키운 자식이 모두 해외에 가버리고, 혹시 메시지가 오지 않았을까 들여다보는 핸드폰에 그들이 스며들었을 거다. 내가 엄마가 미워서 엄마에게 자주 연락하지 않고 홀로 두는 동안, 엄마의 구멍은 얼마나 넓어졌을까.


엄마는 운전을 하며 훌쩍였다. 


“신고해도 돈도 못 받는데.... 신고해서 무슨 소용이고...”


엄마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사기꾼들이 참을 수 없이 미웠다. 그리고 그런 사기꾼들을 신고하는 과정조차 이렇게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현실이 싫었다. 어쩜 그렇게 나쁠까. 어떻게 약하고 힘없는 사람을 이용해서 그런 이득을 챙길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을까. 외로운 엄마의 마음을 파고 들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나를 보지 못하는 엄마의 뒤에서 애꿎은 창밖만 바라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엄마는 나와 함께 내 짐을 들었다. 버스는 30분 후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나의 끼니를 걱정했다. 터미널 대합실에 있는 매점에서 어묵을 팔고 있었다. 입맛이 없었지만 뭐라도 먹으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어묵을 집어 들었다. 엄마는 옆에서 국물을 떠줬다. 따뜻하고 짭조름한 국물이었다. 


엄마에게 먼저 집에 가라고 했지만 엄마는 내가 탈 버스가 올 때까지 같이 기다리겠다고 했다. 냉기가 도는 대합실에서 엄마와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시간이 가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빨리 가는 것 같기도 했다.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해 승객들을 기다렸다. 탑승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엄마가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짐을 버스 아래쪽 짐칸에 실었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가방 한쪽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폐 몇 장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잠깐 고민하다 오만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고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이거 그냥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아니, 아니다! 니 써라. 니가 무슨 돈이 있노...”

“내가 더 많이 주고 싶은데... 미안...”


더 많은 현금은 엄마의 중독을 부추길 것 같다는 마음으로 나를 속이며 내가 건넨 건 고작 오만원이었다.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으려고 했다. 꼬깃한 지폐를 엄마의 옷 주머니에 집어넣고 엄마를 안았다. 


“엄마... 아프지 말고... 진짜 이제 아프면 안 된다...”

“고맙다 우리 딸... 고맙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 잘 될 거니까...”


우는 엄마를 두고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엄마는 계속 눈으로 나를 찾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도 손을 흔들다 뒤돌아 갔다. 


버스가 출발했다. 움직이는 버스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도망친다. 나는 아픈 엄마를 버리고 도망친다. 나는 아픈 엄마를 아빠에게 버려두고 도망친다. 더 있다 가면 안 되냐고 말하는 아빠와 엄마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나를 붙잡는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고, 아직 시간이 더 있음에도 시간이 없다고 속이고,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것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도 거짓말을 하면서. 울고 있는 내 모습도 거짓말로 여기면서. 가증스러운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창문에 비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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