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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Sep 07. 2024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듣도 보도 못한 대출

쉬운 돈의 유혹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내가 들이닥치고 한바탕 바람이 휩쓸고 간 후였다.  엄마와 아빠, 나, 우리 모두 한숨도 못 잤다. 아빠는 토요일임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 엄마와 둘이 남겨졌다. 엄마는 다시 자는 것 같았다. 엄마를 이제는 엄마의 방이 되어버린 내 방에 두고 아빠의 방 침대에 지친 몸을 뉘었다. 아빠 냄새가 났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 지쳤다. 긴 비행에 이어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리고, 집에 도착한 지도 대여섯 시간이 지났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아무런 힘이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눈을 뜨니 겨우 두세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조각난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9시가 되었을 즈음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나왔다. 엄마의 대출 내역 통합 조회가 가능한 시간이었다.


전산망에 등록되어 있는 대출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사이트는 여러 곳이었다. 대표적인 사이트는 정부 24의 ‘개인채무정보 조회 서비스’, 크레딧포유 ‘본인신용정보 열람 서비스’, 계좌정보통합관리서비스의 ‘대출정보조회 서비스’였다.


정부24 개인채무정보 조회 서비스

https://www.gov.kr/portal/service/serviceInfo/B01000300015


크레딧포유 본인신용정보 열람 서비스 > 일반신용정보 > 채권자변동정보

https://www.credit4u.or.kr/


계좌정보통합관리 대출정보조회 서비스

https://www.payinfo.or.kr/extl/qryExtlLoan.do?menu=3


은행에서 발급받은 공동인증서(구 공인인증서)나 카카오톡, 네이버 등에서 간단하게 발급받을 수 있는 금융인증서를 이용하여 간단하게 대출 통합 조회가 가능한 사이트들이었다. 엄마의 핸드폰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가서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엄마는 뭐 하려고 그러냐며 경계했지만 완강한 나의 태도에 생각보다 쉽게 핸드폰을 내어주었다. 


해당 사이트에서 조회한 대출은 총 6건이었다. 가장 오래된 대출은 최초 대출일이 2022년 11월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얼마 전 고백했던 ‘햇살론’이었다. ‘햇살론’이란 연소득 3500만원 이하 이거나 개인신용점수가 낮은 이들이 고금리로 받을 수 있는 서민금융대출이었다. 엄마는 두 개의 은행에서 햇살론을 이용했는데 처음에 700만원, 그리고 3개월 후에 1500만원을 추가로 대출했다. 각각 금리 약 연 8%, 15%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역시나 고금리의 카드론이었다. 두 개의 카드사에서 700만원, 550만원, 600만원, 그리고 1400만원을 대출받았다. 금리는 연 17% 또는 18.4%였다. 


금융전산망에 등록되어 있는 엄마의 대출은 총 5500만원 정도였다. 엄마가 말한 1억에서 한참 모자랐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은 조회도 되지 않았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주택담보대출에 제2금융권이 끼어 있다고 했다. 해당사이트에서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조회가 가능했는데, 조회가 되지 않는 걸 보니 불안감이 차올랐다. 


엄마의 카카오톡 메신저를 뒤졌다. ‘이OO 아카데미대부(주)’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가 개인대부업체를 통해 돈을 빌린 것이다. 아빠가 이전에 떼 놓은 등기부등본과 비교해보니, 엄마는 2023년 3월에 4000만원을, 9월에 추가로 2000만원을 더 빌렸다. 등기부등본에 근저당권으로 잡혀있는 채권 최고액은 9500만원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고작 3개월 전에 엄마가 사정사정하며 돈을 더 빌릴 수 있는지 문의했고, 총 대출액은 6800만원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자는 연 18%. 엄마는 해당 대출의 이자만 매달 102만원을 내고 있었다. 


아빠가 10월에 발급받은 등기부등본에는 2023년 12월의 변경사항이 없었다. 아빠에게 전화해 퇴근길에 등기부등본을 다시 떼 오라고 했다. 다시 확인한 서류의 채권최고액은 1억 700만원이었다. 대출금액보다 근저당권이 높게 설정되는 이유를 검색해보니 이자 연체의 상황을 고려해 은행에서는 보통 20% 정도 증액해서 설정하고, 제2,3 금융권에서는 그보다 높게 설정한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아빠는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기가 막혀했다.


“이 집이 요새 1억이 안되는데 이놈들은 도대체 어떻게 근저당권을 이렇게 설정한 거고...”


엄마가 이자를 연체했을 경우에 대부업자는 1억 700만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엄마, 어떻게 겁도 없이 이런 대부업체에다가 돈을 빌릴 수가 있는데? 이 사람들이 대체 어떤 사람들인 줄 알고 이런 데서 이렇게 큰돈을 빌린 거냐고!!!!!”


심지어 등기부등본에 기재되어 있는 근저당권자의 주소는 처음엔 인천, 이후엔 서울이었다. 엄마가 연락하는 대부업체는 개인 대부업자들과 채무자를 중개해주는 곳인 듯했다. 엄마가 추가로 대출을 받을 때마다 등기부등본의 근저당권자가 변경되었다. 처음엔 대부업체, 이후엔 개인이었다. 엄마는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대부업체를 통해 그저 카카오톡으로 소통을 하고, 추가 대출을 받기 위해 중도상환수수료를 몇 백씩 차감당하면서, 그렇게 빚을 늘리고 있었다.


너무 무서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채업자들이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빨간 압류 딱지를 붙이고, 엄마를 협박하는 장면들이 그려졌다. 이 돈을 갚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아니, 그나저나 엄마는 매달 102만원의 이자를 어떻게 낸 거지? 조리사로 일하는 엄마의 월급은 한 달에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업자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엄마가 이자를 연체했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찾아낸 빚의 원금만 합쳐도 1억 2천이 넘었다. 더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과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엄마가 이용 중인 3개의 카드사, 각각의 카드대금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각각 이달(2월)에 납부할 금액이 A사 120만원, B사 130만원, C사 90만원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남은 할부잔액이 A사 350만원, B사 310만원, C사 650만원으로 더 있었다. 카드이용내역을 살펴보니 1달짜리 단기 대출, 소위 ‘신용카드 리볼빙’이 각각 각각 200만원, 210만원, 30만원으로 3건이었고 나머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할부 결제가 가득했다. 엄마의 카카오톡을 뒤져서 알아낸 할부 결제의 정체는 소위 말하는 ‘카드깡’이었다. 신용카드로 결제를 진행하고, 수수료를 뗀 나머지를 현금으로 입금받아 자금을 융통하는 방법, 일종의 허위매출을 발생시키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신용카드로 상품권 90만원을 결제하고 70만원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세 개의 카드로 수많은 소액대출을 받았고, 몇십만원대의 내역들이 쌓여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불어난 것이었다. 


통신사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것은 더 황당했다. 엄마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써본 적도 없는 아이폰과 갤럭시 최신형 모델의 할부금이 매달 핸드폰 요금에 포함되어 나가고 있었다. 역시나 현금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다. 업체에서 통신사를 통해 기기 할부금을 등록하고, 핸드폰은 보내지 않고 본인들이 가진 후, 중고 판매 가격을 현금으로 입금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통신사에 등록된 총 할부 청구 금액이 약 450만원이었다. 거기에 더해 핸드폰 소액결제도 가득했다.



엄마의 듣도 보도 못한 무차별 대출 폭격보다도 더 믿을 수 없던 사실은, 엄마가 그동안 단 한 번도 카드대금이나 대출 이자를 연체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성실한 채무자로서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납부했다. 금융 전산 상 등록되어 있는 대출은 원금만 천만원 이상, 3월에 대부업자에게 빌린 주택담보대출은 2000만원 이상을 갚았다. (대출을 갈아타면서 돈을 증액해서 소용이 없어졌지만...) 대체 무슨 돈으로 대출을 성실히 갚은 걸까? 엄마는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했다. 연체가 되어 추심(*흔히 말하는 빚독촉)이 들어오고, 직장이나 주변인에게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나와 아빠에게 돈을 뜯었다. 그 돈으로 본인은 성실한 채무자가 되고 아빠는 빚더미에 앉게 만들었다. 


엄마가 갚은 빚은 아빠의 빚을 만들어 얻어낸 돈이었다. 사라진 돈이 아니었다. 엄마가 이번 달에만 갚아야 할 돈은 500만원이었고, 총 빚은 원금만 1억 3천, 아빠의 빚까지 합치면 1억 8천에 육박했다. 게다가 일반적인 금리의 대출은 하나도 없었고 15-20%의 이율을 더하면 나와 언니가 푼돈을 모아서 보내봤자 해결될 금액이 아니었다. 


이 빚을 해결하기 위해 떠오르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집을 둘 다 팔고 할머니 댁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내가 태어나서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를 하고, 처음으로 등교를 하던 우리의 작은 집, 그리고 내가 문을 닫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던, 나의 전부였던 나만의 공간, 내 방이 있는 작은 옆집. 그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아빠도 내 생각에 동의했다. 아빠는 엄마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힘들더라도 빚을 청산하는 게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팔 집이 있고 들어가서 살 집이 있는 게 복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노. 그래도 빚이 없으면 아껴서 조금씩이라도 모을 수 있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한 게 중요하지. 아빠는 할아버지한테 참 감사하다. 돌아가시면서 아빠한테 집을 주고 가셔서. 할머니 혼자 계시는 것도 마음이 안 좋았는데 같이 지내면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오히려 마음이 놓이지 않겠나.”



내가 아는 아빠는 평생을 정직하게 살았다. 늘 일찍 일어나고, 성실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장남으로서 형제들을 잘 챙기고, 내 친구들의 아버지들과 다르게 가정적이었다. 언니를 더 사랑했던 아빠는 내게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줬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아빠는 절대다수의 투표로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빠를 보고 자라면서 따뜻함과 다정함을 배웠다. 아빠는 이런 일을 겪어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불행이 비켜가더라도 모두가 응당 그러함을 납득할만한 사람이었다. 


“너희 엄마도 참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할머니한테도 할아버지한테도 잘하고, 고모들한테도 잘해서 다 엄마를 좋아하는데. 우짜다 이래 됐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랬다. 엄마는 불평 한번 없이 묵묵히 할 일을 하는 맏며느리였다. 자매들 사이에서도 신의가 두터워 돈 관리를 도맡아 했다. 계모임의 총무도 결혼하기 전까지 은행에서 일했던 엄마의 몫이었다. 무엇이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천원 한 장도 아끼던 사람이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온라인으로 돈을 끌어 쓰고 2억이 가까운 빚을 만들었을까. 


온라인에서 합법적으로, 또 불법적으로 돈을 구하는 일은 너무 쉬웠다. 카카오톡 대화 몇 번만으로, 카드사 어플 클릭 몇 번 만으로 통장에 돈이 꽂혔다. 그리고 통장에 꽂힌 돈과 갚아야 하는 돈은 같지 않았다. 중간에 계속 누군가 가로채는 적지 않은 돈이 있었고, 그들이 가로챈 돈은 엄마가 받은 돈과 합쳐져서 엄마의 빚이 되었다. 그렇게 쉽게 얻은 돈을 또다시 쉽게 가로채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다들 이렇게 돈을 번다고. 나를 믿으라고 말하면서. 도와주겠다고 말하면서.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뜨거운 불 앞에 서서 음식을 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엄마에겐 월급 100만원이 주어졌다. 평생 푼돈을 아끼며 계산기를 두드린 엄마에게 쉬운 돈이란 얼마나 달콤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괴로웠을지.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을 잃고, 평생 마음껏 써본 적도 없는 돈을 잃고. 


언니에게 답장이 없다고, 언니가 이제 엄마를 싫어할 것 같다며 어두워진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엄마가 너무 미운데, 엄마가 너무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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