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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Aug 31. 2024

돈을 빌리려고 혈안이 된 엄마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하루하루

퉁퉁 부은 발을 신발에 겨우 구겨 넣었다. 꺼내놓았던 짐을 정리하고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차례차례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기나긴 통로를 걸었고 알파벳이 아닌 글자가 가장 크게 쓰여 있는 파란색 표지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이었다. 내가 지금 퉁퉁 부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너무 간단하고 빨라서 당황스러울 정도인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에서 밥을 먹었다. 시래기가 가득 든 국밥을 입에 넣으니 서서히 한국에 왔다는 감각이 찾아왔다. 우리가 정말로 한국에 왔구나. 기묘했다. 왜 우리가 지금 한국에 있지. 


인천공항의 고속버스 탑승장은 처음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면 언제나 공항철도를 타고 힘들게 서울로 돌아갔었는데. 이젠 서울에 우리 집이 없었다. 2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체크카드로 고속버스 탑승권을 끊었다. 대부분 콘택트리스(contactless) 방식으로 결제하던 독일에서의 습관 때문에 카드를 결제 단말기에 꽂아야 한다는 걸 잊어서 조금 허둥댔다. 30년을 살아온 나라가 고작 2년 만에 낯설었다. 


이젠 정말로 가야 했다. 남편과 헤어져야 했다. 잠깐일지 영원일지 흐릿한 채로 남겨두고, 그를 여기에 두고 엄마와 아빠에게 가야 했다. 그를 끌어안았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지금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판단할 사람은 너밖에 없어. 이제 당분간 내가 옆에서 도와줄 수도 없으니까. 너무 힘들면 그냥 빨리 올라와, 알았지? 너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야.”

“내가 없어도 잘 챙겨 먹고, 돈 아낀다고 괜히 굶거나 하지 말고 꼭 식당 가서 밥 먹어. 이제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당분간 편하게 지내. 자기만 생각해. 알겠지?”


맑았지만 계속 뿌옇게 변하는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돌아서서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마음을 흐르는 눈물로 씻어내려 애썼지만 눈물도 마음도 계속 차오르고 고이기만 했다. 





엄마의 투자 사실을 알게 된 후 한국에 오기까지, 그 사이의 2주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선 엄마의 빚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내기 위해 막내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엄마의 빚을 알게 된 것이 엄마가 이모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통해서였으니, 이모라면 엄마의 상황을 잘 알 것 같았고 이모가 엄마에게 큰돈을 빌려줬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이모는 처음에 말하기를 주저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걸 얘기하고 아빠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이모의 도움을 요청하니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엄마가 이모에게 빚이 1억이 넘는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한 건 작년 10월이었고, 다행히 이모는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이모들과 다 같이 만났을 때 계속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해서 한번은 결국 이모들이 30만 원씩 모아 120만 원을 건넸다고, 엄마에게 돈을 준 건 그게 전부라고 했다. 


이모는 아빠에게도 빚이 생긴 줄 몰랐다며 자신이 미리 아빠에게 얘기하지 않은 것을 자책했다. 몇 번 엄마에게 아빠에게 빚에 대해 털어놓을 것을 권유했지만 엄마는 이모의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 엄마는 어디에 씐 사람 같았다고 했다. 엄마가 하고 있는 투자가 사기 같고, 이상한 것 같다고 이모가 몇 번 얘기했지만 엄마는 다 아빠와 상의해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많이 했다. 





이모와 통화한 며칠 후였다. 독일은 밤 11시였다. 핸드폰이 울려서 봤더니 엄마였다. 엄마에게 다시 한번 장문의 문자가 왔다. 


‘엄마가 진짜 미안한데 우리 딸한테 한 번 더 부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네. 카드론 대출받은 거 300만 원 상환하게 좀 빌려줬으면 하는데 빌려줄 수 있겠나. 설 지나면 바로 갚아야 하는데 엄마가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정말 미안하다. 엄마가 너한테 정말 면목이 없다. 이 금액만 있으면 좀 한숨을 돌릴 것 같은데, 한국 나왔다가 돌아갔다 생각하고 그렇게 좀 주면 안 되겠나. 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는 엄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프다. 집에 오고 싶어 하는데 못 오게 하고, 엄마가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정말 면목이 없다.’


얼마 전 엄마를 떠보려고 했던 통화에서 남편과 둘이 한국에 가는 비행기 티켓 값이 300만 원이라고 말한 후, 딱 5일 만이었다. 나에게 그 정도의 현금이 있을 거라는 걸 안 다음 엄마는 바로 그 돈을 나에게 얻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이었지만 정말로 며칠 후에 나에게 돈을 요구하는 엄마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대출을 왜 또 받았냐고 물으니 그전에 받은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단기라 원금을 다 갚아야 된다고 하면서 면목이 없다는 말만 계속했다.


나는 엄마를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주고 싶어도 줄 수 있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에게 비자 때문에 현금이 묶여 있고 마음대로 뺄 수 없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아빠한테 얘기하라고 했더니, 엄마는 또 아빠한테는 말하면 안 된다면서 직접 해결해야 한다며 말을 돌렸다.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물으니 생각해 본다며 서둘러 대화를 끝냈다. 


대화창을 올려 엄마와의 이전 대화를 훑었다. 엄마에게 250만 원을 줬던 그때의 대화를 다시 봤다. 그 이후로 엄마와 메시지를 나눈 적이 별로 없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보낸 돈으로 엄마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그때, 엄마가 매달 50만 원씩 꼬박꼬박 돈을 갚을 거라고 믿었던 그때였다. 나는 엄마의 빚이 1억이 넘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엄마를 달래면서 운이 나빠서 도둑맞은 걸로 생각하라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엄마는 재차 내가 돈을 보내는 걸 남편이 모르는지 확인했다.


‘내가 남편이랑 사이 안 좋아지는 걸 바라면 또 대출받아서 투자해라.’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엄마에게 참을 수 없는 화가 났다. 엄마는 계속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고 있었고, 정말로 이 일 때문에 우리는 헤어질지도 몰랐다. 엄마는 어떻게 내 삶을 이렇게 망쳐버릴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얘기했는데. 엄마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불화가 생기든 상관없으니까 이런 짓을 하지. 그래, 결혼식 날 아침에도 엄마는 나에게 “니 같이 성격 더러운 애를 걔가 어떻게 데꼬 살지 모르겠다.”라고 했었다. 내 결혼식 날 아침에도 내 기분을 망치더니, 그냥 이제 내 결혼생활까지 망치는구나. 엄마한테 나는 정말 안중에도 없구나. 엄마에게 내 인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 대화를 다시 보고 나서 문득 남편이 아직도 내가 엄마에게 돈을 준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전화를 받은 이후 폭풍 같은 날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내가 이야기를 했는지 아닌지 기억이 모두 희미했다. 우리는 이미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였다. 그를 붙잡으려면 이 사실을 계속 숨겨야 할 것 같았지만 동시에 숨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를 생각하느라 말하지 않았던 일이 너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 걸 깨달은 후였다. 남편과 상의 없이 큰돈을 엄마에게 보낸 건 내 잘못이었고, 이미 돌려받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내 잘못을 말하지 않은 채로 그가 나와 함께하는 삶을 다시 선택하길 바랄 수는 없었다. 


“엄마한테 돈을 주지 말았어야 했어.”

“무슨 돈? 돈을 줬어?”


그는 역시나 모르고 있었다. 마음을 먹고 그때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내가 왜 엄마에게 돈을 주게 되었는지, 어떤 말이 오갔는지.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뗐다.


“근데 왜 그때 나한테 말 안 했어?”

“엄마가 돈을 준다고 해서 문제가 없을 줄 알았어. 엄마가 적어도 돈을 벌고 있으니까, 당연히 매달 돌려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자기 신경 쓰고 걱정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리고... 사실 좀 창피했어. 엄마가 대출을 받아서 투자를 했다는 게.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게. 자기가 우리 엄마를 안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어.”

“...... 그래도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 미안해. 내가 그렇게 우리 돈을 마음대로 쓰면 안 됐는데. 자기가 나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어......”


그는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 눈치를 살폈다. 분명 나에게 더 실망했겠지. 그래도 받아들여야 해. 어쩔 수 없다. 네가 나를 더 이상 믿지 못하더라도, 그것도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출국 전날까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새벽에 막내 이모에게 연락이 왔다. 이모는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복사해서 나에게 보냈다.


‘동생아. 카드론은 이율이 높으니까 내가 장기로 낮은 이율로 대출받아서 카드론 갚으려고 하는데, 1 금융권에서는 대출을 못 받으니까 2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해. 그런데 거기서 내 계좌로 입금을 안 하고 지인 계좌로 입금을 해준대. 그래서 네 계좌를 좀 이용하려고 해. 돈이 입금되면 나한테 보내주면 된다.’


도대체 엄마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막아야 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노트북을 열어 급하게 검색창을 두드렸다. 당연하게도 엄마가 말하는 지인 계좌를 이용해서 대출을 받는 방법은 정상적인 거래방법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아빠에게 전화했다. 엄마에게 호통을 치든 뭔가를 해서 당장 막으라고 했다. 엄마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너무 불안했다. 엄마는 내 전화는 받지 않으면서 이모와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이모는 자신의 계좌를 절대 이용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놨다. 이모는 메시지로 엄마가 하려는 대출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모두 사기라고 말했다. 엄마는 여느 때처럼 이모의 말을 믿지 않으며 ‘뱅크샐러드’ 앱에서 할 수 있다고, 이모에게 확인을 해보라고 했다. ‘뱅크샐러드’에서 최저가 금리 대출상품 조회가 가능한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가 있지만 엄마가 말하는 건 아니었다. 존재하는 앱을 사칭한 사기가 분명했다. 이모의 강한 반대에 엄마는 결국 포기했지만 쉽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어떻게든 돈을 빌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소야. 내가 그때 통화할 때 생각이 안 나서 말을 안 했던 게 있는데, 외할머니 집 판 돈 2천 조금 넘을 거야. 그것도 언니가 관리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우리 자매계도 언니가 총무라 회비 모은 거 3백 조금 넘을 거야. 그것도 언니가 관리했거든. 그것도 다 날렸다 하더라고. 알고 있으라고.’


이모의 메시지에 머리가 아팠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과 이모들의 곗돈까지 날렸던 거였다. 이모에게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모는 내가 미안할 일이 아니라며 나를 위로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엄마를 마주해야 했다. 엄마는 내가 한국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차창 밖 가로등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정리한 계획 목록을 열었다. 본가에 도착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1. 주식계좌 확인 / 전체 처분

2. 모든 대출 조회 + 지인 대출까지

3. 엄마의 카톡방과 텔레그램방 확인

4. 대출총액이 얼마인지 확인 / 대출상환 계획

5. 정보를 가지고 법무사 상담

6. 정신과 진료예약

7. 부동산에 집 내놓기(원금 상환 불가 시)


가슴이 쿵쾅거렸다. 엄마를 마주하고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엄마는 날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2년 만에 보는 나를 반가워하기는 할까. 


버스는 빠르게 달렸고 밤은 고요하게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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