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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언 Nov 30. 2021

인문학적 요가 수업

발은 어쩌다 말이 되었나?

요가수뜨라(योगसूत्र, yogasūtra)를 보면 각 장을 무슨 무슨 빠다(pāda)라고 합니다. 일례로, 첫 장을 보면 사마디 빠다라고 하지요. 우리말로는 보통 “삼매품”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담마빠다(धम्मपद, dhammapada)도 있답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 법구경(法句經)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데 어쩐 일인지 책도 아닌 요가 자세 이름에도 빠다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빠다 얘기를 좀 할까 합니다.


근데 익숙한 단어가 눈에 좀 띄지요? 바로 '삼매'입니다.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삼매는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파되면서 생활 속으로 스며든 대표적인 불교용어 중 하나입니다. 흔히 “독서 삼매경”이라는 관용어로 사용하지요. 삼매는 몰입의 최고 경지인 사마디(samādhi)의 중국어 음역인 '三昧'의 우리 식 발음이지요. 三摩地(삼마지, 중국어 발음은 산마디)로 음역 하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랜 세월 동안 한자(漢字)를 우리말의 문자로 사용한 탓에 같은 한자를 두고 중국과 우리가 발음하는 방식이 달랐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변이기도 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였던 거지요. 


여기에는 여전히 한자를 공식 문자로 쓰고 있는 일본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령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명상을 뜻하는 '禪'이라는 글자를 한국은 선, 중국은 찬, 일본은 젠이라고 발음합니다. 한‧중‧일 삼국이 禪 하나를 두고 선‧찬‧젠이라고 죄다 다르게 발음하고 있지요. 오늘날 선불교가 서양에서 Zen Buddhism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을 통해 선불교가 서양에 전파되었기에 禪의 일본어 발음인 zen으로 알려지게 된 겁니다. 


최근에 유행했던 zen style도 일본 사찰의 간결하고 소박한 스타일에서 비롯되었기에 zen이라는 말이 붙은 거랍니다. 근데 있던 거 다 버리고 젠 스타일 가구와 소품을 새로 잔뜩 들여와서 인테리어를 새로 다 했다는 그런 얘기도 들립디다. 나중에 미니멀리즘이 유행했을 때도 그랬다고 합디다. 


선은 선나(禪那)를 줄여서 간편하게 부르는 용어입니다. 그러면 이 선나는 어디서 왔을까요? 원래는 산스끄리뜨(saṁskṛta) 용어인 디야나(dhyāna)에서 산스끄리트 사촌인 빨리(pāli)어 자나(jhāna)로, 이 자나(jhāna)를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음차(音借)한 단어가 바로 禪那입니다. 중국인들은 '차나'라고 원 발음에 가깝게 읽습니다만 우리는 '선나'라고 좀 동떨어진 발음을 하게 됩니다. 


잠깐 여기서 산스끄리뜨를 한글로 표기할 때 우리말에 없는 발음인 dh, jh는 정확히 음역 할 수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위의 디야나(dhyāna)는 ㄷ히야나로, 자나(jhāna)도 ㅈ하나로 표기해야 원발음에 가까울 것이나 우리말에 이런 표기법은 아시다시피 없지요. 원발음을 최대한 반영하고 문자 변별력을 높이려면 드히야나, 즈하나가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만, 가독성과 실제 우리 귀에 들리는 발음을 고려하면 디야나, 자나가 좀 더 자연스럽기에 부득이 그랬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여담입니다만, 오래전 인도에서 만났던 대만 여성에게 한자 네 글자를 써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加口加樂. 그 대만 여성의 발음은 이랬습니다. 코끄콜러. 뭔지 눈치를 챘겠지요? 코카콜라입니다. 이 한자를 우리가 읽으면 가구가락입니다. 만약 삼국시대에 불교와 함께 코카콜라가 들어왔다면 우리는 코카콜라가 아니라 가구가락을 마시고 있겠지요. 이러면서요. “입에 들이 부우니(加口) 즐거움이 더해지누나(加樂)!”


다시 빠다로 돌아가 봅시다. 빠다의 어근은 √pad로 '가다'를 뜻합니다. 우리를 가게 하는 건 발이지요. 그래서 √pad에 a를 더해서 명사 발(pāda)이 되었답니다. 지네 아시죠? 향랑 각시(노래기)는요? 몸서리치지 마시고요. 지네는 영어로 centipede, 노래기는 millipede라고 합니다. 다 라틴어로부터 온 말이죠. pāda와 비슷하게 생긴 게 보이지요? 지네(centipede)는 백 개의 발이라는 뜻이고, 노래기(millipede)는 발이 더 많아서 천 개의 발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명백한 과장이죠. 그리고 자전거 페달, 자동차 페달, 페달(pedal)은 외래어가 다 되었습니다. 


발은 발자국(footstep)을 남기죠. 그래서 pāda는 발자국으로 영역을 넓혔고, 발자국은 땅의 한 부분을 차지하니까 위치나 자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를 가게 하는 건 발만이 아니지요. 수레와 같은 탈 것도 우리를 가게 만듭니다. 수레에서 가게 만드는 결정적인 부품이 바로 바퀴지요? 그래서 빠다에는 바퀴라는 뜻도 있답니다. 바퀴 하니까 짜끄라 생각이 나네요. 발자국만이 아니라 바퀴도 자국을 남깁니다. 궤적(軌跡)이라고 하지요. 바퀴가 남긴 자국, 즉 궤적은 선(line) 모양이지요. 그래서 말의 선율인 운율이 있는 문장인 운문(verse)이나 운문의 한 부분이라는 뜻으로 확장됩니다. 급기야는 말(word)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요가수뜨라라는 경전의 한 부분이라는 의미로 빠다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품(品)이라고 의역되었고, 담마빠다(법구경)에서는 말씀 또는 구절이라는 의미로 구(句)로 의역되었지요. 법구경에서 경은 원어에 없는 말을 더한 겁니다. 법구라고만 하면 좀 이상하지요? 불교 삼장(三藏) 중 경장(經藏)에 해당하는 책이기도 해서 한역본(漢譯本)에서는 법구경이라고 한 걸로 추정합니다(100% 확신합니다만). 


아까 요가 자세 중에 빠다가 들어가는 게 있다고 했지요? 바로 드위빠다 삐탐(dvipāda pīṭham)입니다. 여기서 빠다는 발을 뜻합니다. 두(dvi) 발(pāda) 자세(pīṭham)라는 말이지요. 누워서 무릎을 세운 채로 엉덩이를 들어 두 발(pāda)로 버티는 자세입니다. 여기서 팔까지 뻗어서 사지로 버티면 짜뚜슈빠다(चतुष्पाद ; catuṣpāda) 삐탐이 되지요. 요가에서 자세를 뜻하는 말이 아사나(āsana)인지라, 자세 이름 뒤에는 아사나가 붙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왜 드위빠다 삐탐 아사나라고 하지 않는지 이유가 궁금할 수도 있겠군요. 


pīṭham은 아사나(āsana)와 동의어이기에 함께 사용하면 동어반복이 됩니다. 마치 '역전앞'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함께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당연히 사용되지도 않습니다. 하타요가 3대 경전 중 하나인 하타쁘라디삐까에도 마유라 아사나(공작 자세)를 설명할 때 마유라 삐탐이라고 한답니다. 주요 경전에서도 아사나와 삐타(pīṭha)는 자세 또는 좌법을 뜻하는 말로 혼용됩니다. 물론 아사나라는 용어가 압도적이긴 합니다만. 


삐타(pīṭha)? 삐탐에 미음(m) 받침을 빠뜨렸다고요? 삐탐, 삐탐하더니 이제 와서 왜 삐타냐고요? 잠깐 문법적인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산스끄리뜨는 우리말과 달리 명사에 성(姓)이 있답니다. 그것도 세 가지나 있답니다. 남성, 여성, 중성으로 구분합니다. 삐타(pīṭha)는 중성 명사에 해당하는데, 중성 명사에서 주격을 나타내는 표기가 단어 마지막의 미음(m) 받침입니다. 따라서 삐탐은 삐타의 단수 주격(중성 명사에서 대격도 형태가 같으므로 문장으로 주격인지 대격인지 파악해야 합니다)입니다. 


그런데 왜 문장도 아닌 명칭에 주격을 사용하냐고요? 우리의 언어 정서로는 이해가 어렵지만 주격이 그 명사를 대표한다고 여기기에 관습상 주격을 제목이나 명칭에 그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이름은 최소 한 번은 들어보셨을 색즉시공으로 유명한 '반야심경'의 산스끄리뜨 표기가 그러합니다.


प्रज्ञापारमिताहृदयसूत्रम(prajñā pāramitā hṛdaya sūtram). 경(經)을 뜻하는 수뜨라(sūtra)가 수뜨람(sūtram)으로 표기된 걸 볼 수 있지요. 수뜨라도 중성 명사로 주격을 뜻하는 미음 받침이 첨가된 겁니다. 책 제목이 '반야심경은' 또는 '요가수뜨라는'이라고 주격으로 표기해놓으면 마음 불편하실 분들도 꽤 많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로마에선 로마법이지요. 마음 넓은 우리가 이해하는 수밖에요. 


급히 결론지으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빠다가 발도 되고 말도 이 신비한 마법을 이제 이해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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