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끄리뜨 아빠, 라틴 아들, 영어 손자
산스끄리뜨의 복잡한 문법 체계가 정교한 철학적 사유와 논리에는 적합하지만, 정작 일상에서 대중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결국 사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라틴어도 같은 이유로 사어가 되었지요.
그러고 보니 두 언어는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같은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점, 물론 계보 상 산스끄리뜨가 훨씬 상단에 위치합니다. 그래서 라틴어에는 산스끄리뜨가 어원인 단어가 꽤 많습니다. 쉽게 도식화하면, 산스끄리뜨 → 라틴어 → 영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쓰는 영어 중에는 산스끄리뜨에서 기원한 게 좀 됩니다. 첫 수업에서 말씀드렸던 yoga → jungo → yoke 기억 나시지요?
하나 더 가볼까요? 차량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이 산스끄리뜨에서 왔다고 하면 “진짜?” 이러실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 내비게이션(navigation)은 배를 뜻하는 라틴어 navis에서 와서 항해(航海)가 되었습니다. navis는 산스끄리뜨 नाव(nāva, 나와)에서 왔지요. 뜻은 똑같이 배입니다. 요가 자세에도 있지요. nāvāsana(나와아사나, 배 자세)라고, 그 왜 앉아서 다리 들고 팔 뻗고 버티는… 배에서 쥐가 난다는 그 자세, 아시지요?
그리고 정교하고 복잡한 문법 체계, 이것도 산스끄리뜨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서구에서 가장 어렵다는 라틴어보다 산스끄리뜨가 더 어렵습니다. 라틴어가 어렵다고 예시한 지시대명사 표와 한 번 비교해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먼저 라틴어부터 볼까요. '이것(this)'을 뜻합니다.
5격 3성 2수로 30개의 변형이 만들어지지요? 영어에서 this 하나면 충분할 일을 꼭 이래야만 했나요? 그럼 산스끄리뜨로 넘어가서 그것(that)에 해당하는 tad(따드)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라틴어가 아주 착해 보일 겁니다. 데와나가리는 생략하고 라틴화 문자만 쓰겠습니다.
7격 3성 3수로 63개의 변형이 만들어집니다. 라틴어의 두배가 넘지요? 산스끄리뜨는 라틴보다 격이 두 개 더 많고 수는 하나가 더 있습니다. 단수, 복수는 너무나 익숙하지요. 어느 나라 말에나 다 있으니까요. 그런데 산스끄리뜨에는 독특하게도 양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너랑 나랑 단 둘일 때, 남녀, 암수, 좌우 등 쌍일 때 사용합니다. “두 사람이 오고 있다”라고 할 때도 사용하고요.
마지막으로, 현재는 사어이고 종교적 권위(힌두교, 불교/가톨릭)에 힘 입어 한정적으로 사용된다는 점, 방대한 고전 문헌을 기록한 언어여서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이게 라틴어, 영어까지 들먹일 일은 아닌데”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름 산스끄리뜨에 대한 친숙도를 높여보려는 몸부림 정도로 어여삐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영어는 친숙하시지요? 뭐, 늘 우리 가까이 숨 쉬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쓰고 보니 약간 호러물 같네요. 가까우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고, 잊으려 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노래 가사 인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말에도 산스끄리뜨가 꽤 있습니다. 불교를 통해 한역(漢譯)되어 들어와 원 발음과 멀어지긴 했지만요. 이전에 말씀드렸던 삼매를 비롯하여 찰나(刹那), 건달(乾達), 나락(奈落), 아수라장(阿修羅場), 염라(閻邏) 대왕, 야차(夜叉), 수리수리 마수리(修里修里 摩訶修里) 등등. 익숙하지요?
눈 깜짝할 새를 뜻하는 찰나는 끄샤나(क्षण, kṣaṇa)의 음역이고요. 천상의 가수 간다르와(गन्धर्व, gandharva)는 건달바(乾達婆)로 한역(漢譯)되었다가 놀고먹는 백수건달이 되었다가 지금은 불량배를 일컫는 말이 되었지요. 인도에서는 뛰어난 가수를 아직도 간다르와라고 한답니다. 잘 나가다가 일순간 나락(नरक, naraka, 나라까)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때의 기분이란 참 지옥 같겠지요? 나라까는 지옥을 뜻합니다.
인도 신화에서 반신반인 아수라(असुर, asura, 아수라)는 신들과 맨날 싸웁니다. 그러니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요. 만화영화 마징가 제트 덕에 당시 어린이들에게도 유명해졌지요. 거기선 반남반녀의 악당으로 나오지요. 죽음의 신 야마(यम, yama, 야마)는 염라대왕이 되었고, 사람을 헤치는 악마 야끄샤(यक्ष, yakṣa)는 야차가 되었지요.
수리수리 마수리는 국민 주문(呪文)이 다 되었습니다. 원래는 불경(천수경)에 나오는 주문으로 정확히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修里修里 摩訶修里 修修里 娑婆訶)입니다. 원어는 슈리슈리 마하슈리 수슈리 스와하(श्री श्री महाश्री सुश्री स्वाहा, śrī śrī mahā śrī su śrī svāhā)입니다. 이건 그나마 발음이 비슷하지요?
이건 어떤가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많이 들어보셨지요? 반야심경 마지막 부분입니다.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되었지요. 원어는 가떼 가떼 빠라가떼(गतेगतेपारगते, gate gate pāragate)입니다. 발음이 좀 멀리 갔지요? 공교롭게도 가떼 가떼 빠라가떼의 뜻도 '가셨기에 가셨기에 저 너머로 가셨기에' 이런 뜻입니다.
슈리는 부, 복, 행운, 상서(祥瑞), 성공, 번영, 권위, 영광 등 온갖 좋은 뜻이 다 달라붙어있는 말이지요. 지금도 존경받는 사람 이름 앞에 붙여 경칭으로 사용됩니다. 영어의 sir와 비슷한 개념이지요. 마하슈리에서 마하는 '큰, 위대한'을 뜻합니다. 간디를 마하뜨마 간디라고 부르지요? 마하뜨마는 간디의 이름이 아니라 최고의 존칭입니다. 우리가 성웅 이순신이라고 하는 것처럼요. 마하 아뜨마가 연음 되면서 마하뜨마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자아 또는 위대한 영혼 간디가 되겠지요. 수슈리의 수는 수카(즐거움)할 때 이미 나왔지요? '좋은, 뛰어난'을 뜻하는 접두어입니다.
스와하는 원래 불의 신 아그니나 최고신 인드라에게 드리는 희생제(यज्ञ, yajña, 야즈냐)에서 공물이 잘 타서 기도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뜨라(मन्त्र, mantra, 주문의 원어) 마지막에 붙이는 추임새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기도 끝에 아멘 하듯이요. 한국식 발음 사바하도 영화 제목으로 사용되어 친숙할 것 같네요. 스와하(svāhā)에도 수(su)가 들어갑니다. 어디 있냐고요? 보시지요.
svāhā = su + āha입니다. u와 ā가 연성하면 vā가 된답니다. āha는 말해졌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잘 말해졌음 또는 좋게 말해졌음이 됩니다. 요가 자세 중에 스와스띠까(स्वस्तिक, svastika) 아사나도 su + astika = svastika가 된 거지요. 잘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고 보니 well-being이군요. 좋은 것이 있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스와스띠까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 한번 정도는 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찰 측면 지붕 아래 동그라미 안에 卍 문양을 본 적 있지 않나요? '님의 침묵'을 쓴 한용운의 호에도 들어갑니다. 만해(卍海). 방향을 뒤집으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즉 갈고리 십자(卐)가 되지요. 원래는 방향과 무관하게 사용했지만, 아리안 신화에 집착한 히틀러가 나치당 상징으로 사용한 이후 우회전 스와스띠까는 수천 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물밑으로 가라앉았답니다.
“슈리슈리 마하슈리 수슈리 스와하”를 풀자면, “복 되고 복 되고 아주 복 되고 최고로 복 되도다. 이루어지길!” 정도가 될 겁니다. 내친 김에 반야심경도 이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여기에도 스와하가 있지요? 빠라상가떼(पारसंगते, pārasaṃgate)는 저 너머로 완전히 가셨기에, 보디(बोधि, bodhi)는 깨달음을 뜻합니다. “가셨기에 가셨기에 저 너머로 가셨기에 저 너머로 완전히 가셨기에, 깨달음이여! 이루어지길” 이제부턴 아제 아제 바라아제 하지 마시고, 가떼 가떼 빠라가떼 하시길!
다시 돌아가서, 당시 대중이 사용했던 언어를 쁘라끄리뜨(prakrit)라고 부릅니다. 산스끄리뜨의 방언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것도 원어로는 쁘라끄리따(प्राकृत, prākṛta)로 산스끄리뜨와 같은 과정을 거쳐 쁘라끄리뜨가 되었습니다(이전 수업을 참고하십시오). 이미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정교하게 다듬어서 만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는 거지요. 산스끄리뜨의 완벽하게 만들어 졌다는 뜻과 대비되지요?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정착된 언어라는 뜻입니다. 언어는 쉬운 게 진리지요.
산스끄리뜨가 그들만의 리그였다면 쁘라끄리뜨는 민중들의 언어였기에 파급력이 훨씬 광범위했지요. 붓다가 당대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성 종교가와 달리 쁘라끄리뜨로 설법했기 때문입니다. 붓다가 대중 설법 시 사용한 마가다 어가 당시 대표적인 쁘라끄리뜨에 해당합니다. 마가다 어는 도시 국가 시대(16 대국 시대, 기원전 6세기경) 인도 북동부(현재의 비하르 주 일대)의 맹주였던 마가다(मगध, magadha) 국어입니다. 마가다 어(मगही, magadhī, 마가디)는 오늘날에도 인도 비하르 남부에서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