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흐만은 모든 존재를 하나로 이어주는 의식의 기반
이 경계 없는 마음을 체득하면 “아함 브라흐마 아스미(अहम् ब्रह्मास्मि, ahaṁ brahmāsmi)”가 됩니다. 우빠니샤드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중 하나로 꼽히며,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빠니샤드(बृहदारण्यक उपनिषद्, Bṛhadāraṇyaka Upaniṣad)에 나옵니다. 브리하드 아라냐까는 거대한 숲을 뜻합니다. 브라하드(bṛhad)는 브라흐만과 같은 어근인 √bṛh(커지다)에서 온 말입니다. 앞에서 본 기억이 나지요?
아함 브라흐마 아스미가 대체 뭘까요? 문장을 번역하면 “내가(아함) 브라흐만이다(브라흐마 아스미)”인데, 이건 자신이 절대자가 되었다는 패기 넘치는 독선과 오만이 아니라 태어나 자라고 늙어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조건 지어진 마음을 의식 본연의 광대함에 융해시켰음을 뜻합니다.
파도와 바다가 다르지 않듯이 나의 본질은 궁극의 실재인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본질만 브라흐만일까요? 나의 본질이 브라흐만이면 당연히 너의 본질도 브라흐만일 것이고, 그의 본질 역시 브라흐만일 겁니다. 세상의 모든 파도가 제각각인 듯 보여도 결국 하나의 바다이듯이 나와 너의 본질이 다르지 않으므로 우리 사이에 우열과 차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차별의 궁극적 해소는 이런 자기 깨달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깨달음에 대한 노력은 요가 수련자에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또한, 신체 조건 ‧ 이름 ‧ 나이 ‧ 성별 ‧ 성격 ‧ 취향 ‧ 출신 ‧ 직업 ‧ 관계 속의 역할 따위로 조건 지어진 마음의 집합체인 '나'는 광대한 의식의 작은 한 부분일 뿐이며 영원한 것도 아닙니다. 어느 땐가 나타나 언젠가 사라질 존재인 '나'는 시공 속의 한 양태일 뿐입니다. 특정한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모양과 상태를 넘어서는 무조건적이고 광대한 의식을 깨닫는다면 '나'의 위상이 변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양들 틈에서 양인 줄 알고 살던 사자가 어느 날 다른 사자를 보고 양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쳤습니다. 그를 쫓아간 다른 사자는 그를 물가로 데려가 자신의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일깨웠습니다. 자신이 양인 줄 알던 사자는 커다란 포효와 함께 자신이 더는 양이 아님을 깨닫고 마침내 자신의 참모습인 사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광대한 의식인 참나가 조건 지어진 나를 밀어내면 내 안의 떠는 양은 사라집니다. 그 양은 실제가 아니라 환영이기 때문입니다. 환영이 걷히면 세상에 고립된 느낌과 삶에 대한 두려움도 마법처럼 흩어집니다. 고립감도 두려움도 환영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대한 의식인 참나는 세상이 자기 안에 있음을 압니다. 보이는 것 모두가 내 마음이고 들리는 것 모두가 내 마음임을 압니다. 내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압니다. 이것이 바로 아함 브라흐마 아스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