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들을 모두 사랑하기로 했다.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버둥거렸다.
적어도 나의 삶은 '평범'이라는 이름 속에 묻히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남들이 해보는 것은 얼추 다 해보았다.
미라클 모닝도 해보고, 루틴도 짜보고, 다이어리도 쓰고, 운동도 하고, 식단일지도 쓰고, 독서모임도 나가고, 글도 쓰고, 취미생활도 다양하게 만들면서, 또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체력이 저질인만큼 에너지가 크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무언가 집중하는 일이 생길 때면 내가 낼 수 있는 온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일시적인 열정 하나만큼은 자부한다. 이 부분은 친구들도 인정해주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두달 정도 빠지지 않고 써오던 다이어리에 지난 이틀간 전혀 손을 뻗지 않았다. 아침마다 하루를 계획하고 거기에 적힌 빼곡한 일정들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는 것이 최근의 나의 가장 큰 일상목표이자 재미있는 미션같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달부터 준비하고 있던 시험일이 다가오면서 약간 번아웃이 온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도피의 일종으로 다이어리 펼치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계획해놓은 틀대로 살아야한다는 부담감? 갑자기 그런 마음이 덜컥 든 것이다.
나는 이번주 내내 해야 할 공부 대신 다른 데서 의미와 재미를 찾고 있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대청소를 하고 책장을 옮기고 많은 물건들을 버리며 혼자서 청소하는 시간의 고요한 공기를 채우려고 넥플릭스를 풀재생했다. 그러다가 주객이 전도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콘텐츠에 빠져들어서 그 다음 영상을 또 보기 위해 급하지 않은 것들까지 꺼내서 다시 줄맞추고 닦아서 정리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평소라면 나는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시간 아까워. 나에게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는데, 얼른 나의 행동을 수정해야해.
그런데 오늘 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매일 나의 시간의 틀을 정하고 그대로 되지 않으면 불편해하고 있었던 거지? 물론 열심히 살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일은 정말 중요해. 그런데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포인트라는 것 말이야. 자기관리 고수들처럼 모든 생산적인 일을 다 따라한다고 생기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나는 평생 P성향으로 살아왔고 매일 짜여진 대로만 완벽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그날 그날 나의 컨디션과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최대의 출력을 낼 수 있을 때 하나씩 원하는 결과들을 만들어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게 나잖아?
다이어리를 작성하다가 멈추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나는 만족감을 느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든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떠올린 수많은 생각들이 실체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으나 지속되지 못한 것들이 상당하다. 나는 그동안 나의 실패작들을 지우고 감추고만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니 그렇게 작심삼일로 점철된 많은 시간들도 결국 나고, 열정의 불꽃이 타오른 기간이 매번 달랐던 것도 나다. 그 모든 것을 끌어안아 보기로 마음먹으니 나의 시간들이 더욱 예뻐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들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오늘 이 시간도 마찬가지다. 더이상 내가 실패한 수많은 작심삼일의 시간들에 뼈아프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진짜 내가 되기 위해 무수한 연습을 하고있는 것 뿐이다.
인정하는 삶은 아름다우리. 나의 모든 시간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