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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Oct 26. 2021

아빠에게


아빠.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렇게 쓰면 될까?

아빠 소식을 듣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빠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줬어. 퇴직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빠를 기억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엄마가 너무 고마워했어. 근데 아빠는 주변에 내 얘기를 많이 했나보더라. 자꾸 코레일 다니는 딸이 누구냐고 물어봐서 민망해서 혼났어. 예전에 아빠랑 모의면접 본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자랑한 거 같던데 아빠가 내 앞에서는 티내지 않아서 몰랐네.


몇 주 전, 아빠 생일날 제주도에 간다고 QR코드 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 적 있었지. 우리 아빠라면 당연히 알고있을 줄 알았는데 몰라서, 그것도 한참을 설명해야해서 마음이 아팠었거든. 왜냐면 나한테 아빠는 뭐든지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그 때 아빠 핸드폰 패턴을 알려줬는데 그 덕분에 아빠 핸드폰을 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아빠를 아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소식을 전할 수 있었거든. 그리고 그 패턴은 나만 알고 있었어! 그게 뭐라고 뿌듯하더라.


아빠, 나는 아빠가 사랑했던 많은 것들을 사랑하지 못했어. 바둑, 풍란, 그림, 나무랑 도마같은 것들 말이야. 아빠가 사랑한 것들을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빠가 열렬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가 났어. 나한테는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 아빠였으니까. 아빠의 사랑은 항상 숨겨져있어서 찾아야만 했으니까. 아빠는 사랑한다는 말을 밥 잘 먹고 있냐고 말하는 사람이잖아. 병원에 입원해서도 내가 밥 먹는지 궁금해했다며? 나는 밥 잘 먹고 있으니까 이제 걱정하지마.


사실은 아직 실감이 안 나서 어쩌면 안방에서 아빠가 걸어나올 것 같기도 해. 며칠 전엔 혜원이가 와서 아빠를 찾았어. 할아버지 왜 없찌~? 하고 궁금해하더라.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세 살짜리가 아빠를 기억하고 찾는 게 고맙고 기특해서 엄마랑 나는 조금 울었어. 혜원이가 아빠한테 꽃도 많이 올려줬는데 하늘에서 지켜봤을까? 꽃을 좋아하는 걸 보면 아빠를 닮은 걸지도 몰라.


아빠, 어제는 청첩장을 다시 만들었어.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뭐가 맞는지 몰라서 그냥 만들었어. 만약 아빠가 있었다면 물어봤을텐데.. 이젠 물어볼 데가 없네. 둘째 사위를 시켜서 양복집에 전화도 했어. 도저히 나는 전화할 용기가 안 나서.. 언니 결혼하고 살이 많이 빠져서 맞춤 양복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걸 못 입혀봐서 너무 아쉬워. 그때도 조금 힘들어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제 아프지 않았으면 해.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여행도 다니고 목공도 원없이 해.


아빠가 나에게 알려준 많은 것들을 잊지 않을게. 아빠가 사랑한 많은 것들을 소중히 여길게. 아빠가 내 옆에 없다고 해서 너무 많이 울지 않을게. 아빠 걱정하지 않게 밥도 잘 챙겨 먹을게. 그러니까 아빠도 이제는 푹 자. 아참 그리고 내 책도 완독해줘. 지금처럼 아빠 나오는 부분만 읽지 말고! 세브란스 병원은 아빠가 전산화한 곳인데 아빠는 거기서 눈을 감았네.. 이제 병원도 가지말고 약도 먹지마. 매일 두 번 울리는 면역억제제 알람은 내가 껐어. 그러니까 잊어버려도 돼.


아빠가 눈을 감던 날엔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너무 춥고 무서웠는데, 아빠를 보내던 날엔 노을이 빨갛게 지고 보름달이 뜨더라. 날씨가 좋아서 엄마도 조금은 마음이 편하대. 아빠도 그렇길 바라. 이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마음 편히 지내. 사랑해 많이!



작은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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