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음 Apr 08. 2024

식물 이름 알아맞추기 대회를 아시나요?

식물과 나

어렸을 때부터 식물과 연결된 에피소드가 유난히 많았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으로 유명한 도시에 살면서도 놀이공원보다 식물원을 더 많이 갔다. 식물을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금낭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공작 단풍의 이름 유래를 알고 식물원의 너른 풀밭에서 뛰어놀았다. 아버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의 대표 꽃들을 사 오셨다. 봄에는 수선화를, 가을에는 샛노란 국화를. 가을에 거실 베란다 문을 열면 국화꽃의 향기가 가득했다.


학교에서 '식물 이름 알아맞추기 대회'를 하셨던 분 있는지요? 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식물에 꽂히신 분이었다. 학교에 다양한 식물이 가득했고, 부레옥잠, 부들, 가지, 고추 등 보통의 학교에는 없는 식물들도 많았다. 그리고 모든 식물에 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방송'이라는 식물이 있는 것을 아는가? 작고 동그랗게 생긴 소나무의 이름이 '방송'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되어보니, 식물을 다 심고, 하나하나 이름표를 적어서 매다느라 힘드셨을 선생님들의 모습이 그려져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매 해마다 '식물 이름 알아맞추기 대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에 열심히였던 나와 그것을 도와주는 부모님 덕에 주말에 부모님과 학교에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식물과 이름표가 보이게 한 컷, 식물만 보이게 한 컷, 이름표만 보이게 한 컷을 찍었다. 모든 식물을 그렇게 다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집에 가서 디지털카메라를 컴퓨터로 연결해서 사진을 보면서 식물을 외웠다. 다 외우면, 식물 사진만 보면서 이름을 떠올리고, 이름만 보면서 어떤 식물인지 떠올렸다. 어떤 해는 비가 오는 날이어서 부모님이 우산을 씌어주고 내가 사진을 찍었었다. 그러다가 교장선생님을 우연히 만났고 이것을 뿌듯하게 봤었던 교장선생님이 가지를 따서 주었다. 그날 저녁으로 가지 무침을 먹으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관심도 없던 '식물 이름 알아맞추기 대회'에서 나는 매년 최우수상을 탔다. 3학년 때 전학을 가는 바람에 1,2,3학년까지 밖에 못해서 아쉽고 그리운 것 같다.


그렇게 부모님과 초등학교 덕분에 식물을 가깝게 느꼈던 나는 중학생 시절 '가든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터넷에서 가든 디자이너의 모든 포스팅과 인터뷰를 하염없이 읽었었다. 그리고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를 가겠다고 온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시절도 있다ㅋㅋ 왜 하필 서울시립대학교였는지는 모르겠지만ㅎㅎ 그래서 이 중학생 시절엔 꼭 아파트 공원을 가로질러서 하교했다. 공원에 어떤 나무를 심었는지, 어떻게 화초를 조화롭게 식재했는지를 하염없이 봤었다. '가든 디자이너님이 인터뷰에서 이 직업은 영업능력도 중요하다고 했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며 진지하게 고민하곤 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식물이 주는 안식을 누렸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지역에 있는 수목원에 찾아가곤 했다. 수목원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가야했다. 그리고 거기서 20,30분마다 한 번씩 있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타고 다시 또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가는 데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취업 시험을 준비하던 막학년에는 2주마다 찾아갔다. 일주일 내내 공부를 하고 일요일 아침에 스터디 모임을 한 뒤에, 수목원으로 달려갔다. 수목원에 딱 도착하면 세로로 기다란 길이 나있다. 그 길 양쪽에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쭉 심어져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 길을 걸을 때의 해방감은 최고였다.

5월쯤 수목원을 가면 눈이 내리고 길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사실 눈이 아니라 버드나무 씨앗이다. 솜털 같이 생긴 이 씨앗이 바람에 따라 함박눈 내리듯이 떨어지는 풍경을 보면 다른 차원의 세계에 온 것 같다. 정말 평화롭다. 근처에 아파트가 있어서 그런지 벤치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는 노년 분들이 많다. 수목원 자원봉사를 하는 노년분들이 많다. 수목원 조끼를 입고 꽃을 심고 잡초를 뽑으신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중에 나이가 들면 수목원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아야지. 아침에 여기에 와서 나도 책도 읽고 자원봉사도 해야지.'라고 다짐했다.


이렇게 식물 곁에 오래 있었던 나는 친구들이랑 길을 걷다가 "저건 밤나무잖아."라고 내가 말을 하면, 어떻게 잎 모양만 보고 이름을 맞출 수 있냐는 친구의 물음에 이건 무슨 식물인지 저건 무슨 식물인지 하나하나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교사가 된 나는 매년 봄이 되면 아이들과 교실에서 나와서 학교 화단을 돌면서 식물을 하나씩 설명해 준다.

"얘들아, 이거 여러분 아파트에서 많이 보지 않았어? 비비추라는 식물이야. 어떻게 외우면 되냐면, 치킨 비비큐랑 연결 지어서 외우면 돼~"

"이 나무는 껍질이 반들반들하고 연한 갈색이지 않니? 한 번 만져보렴. 롱나무라는 식물이야. 진분홍색 꽃이 정말 예쁘지 않니? 자, 이 나무 앞에서 김치~대신 롱~이라고 외치면서 단체 사진 찍어보자~"


겨울에서 봄이 시작될 때, 아파트 화단 땅에서 갈색 가시처럼 올라오는 비비추를 보면서 봄이 시작됐음을 느끼고.

일요일 아침에는 일어나서 식물 팟캐스트를 켜면서 주말을 시작한다.

내 돈으로 직접 식물을 사서 키우고, 내 생일엔 스스로에게 선물로 꽃을 선물하기도 하고.

봄을 느끼고 싶어서 식물 책을 사서 읽고.


식물이라는 안식을 알려 준 부모님과 학교에 감사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