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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May 05. 2023

안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고린도전서 10:23)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유를 갈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고 싶어하는 이유는 돈이 그 사람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웬만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자유와 방종은 느낌이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결과는 매우 다르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은 자유로운 세상일까? 아니 그 이전에 내가 원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서두에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 책이 나에게는 '자유'와 '방종'의 차이에 대해 곱씹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들이 있겠지만 나는 '자유'라는 관점으로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보려 한다.




 우선 이 책의 배경을 짧게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시대는 2500년대. 아주 큰 전쟁이 있은 후 세계 정부가 설립되어 세상의 안정화를 위해 모든 사람들을 통제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진다. 알파 계급(귀족)부터 의도적으로 장애를 갖고 단순 노동만 시킬 계획으로 만든 엡실론 계급까지.

계급이 나뉘어져 있지만 각 계급은 자기 계급에 만족하도록 어린 시절부터 교육(이라 읽고 세뇌라고 씀)을 받는다.

체제 유지를 위해 사람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죄악시 하고 오직 쾌락을 충족시키며 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일부일처제는 추악한 것이고 최대한 많은 사람과 육체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 우울, 흥분, 두려움 등 감정을 느끼면 '소마'라고 하는 마약을 일부 복용해 감정을 잠재운다. 문학, 자연 과학, 철학 등 체제를 위협하는 공부는 금지되고 오로지 쾌락을 충족시키는 오락만이 허용된다.


 이런 배경을 듣기만 하면 굉장히 이상하다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알게 모르게 '멋진 신세계'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통제는 없어지고 자유라는 명목 하에 모든 가치가 받아들여져 무엇이 옳은지 분간이 안 되는 세상, 미디어에서는 쾌락과 소비만을 조장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점점 앗아가는 세상, 모든 것이 가하지만 무엇이 유익한지 모르게 되는 세상.




 책의 초반에 알파 계급인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인물이 나온다. (조지 버나드 쇼 작가와 칼 마르크스를 합친 이름이 맞다고 한다) 버나드는 알파 계급이지만 보통의 알파 계급에 비해 체구가 작아서 아래 계급에게도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열등감과 세상에 불만, 회의감으로 가득차 자기 계급에 만족을 못 하는, 위험 인물인 셈이다. 대부분이 자기의 위치에 만족하고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애를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버나드는 그런 삶에 어울리지 못 한다. (여자들이 아무도 자기를 만나주지 않기도 하다...) 불만만 가득하던 어느 날 휴가로 '야만 세계'로 관광을 갔다가 자신의 상사가 낳은 자식이 거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존'


 이 시대에 일부일처제는 범죄와도 같다. 이를 이용해 상사를 몰아내고 아주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제공해 입지를 올리고자 존을 '문명 세계'로 데려온다. 원래 문명 세계에 살다 임신을 하고 쫓겨난 어머니는 늘 문명 세계를 그리워 하며 존에게 그 세계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어릴 때부터 문명 세계를 동경했던 존도 흔쾌히 따라 나선다. 이 책에서 존은 주요 등장인물 중 '문명 세계'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조차 어린 시절 받았던 세뇌 교육과 쾌락을 탐하던 삶을 그리워하다 문명 세계로 오자마자 마약을 온 종일 즐기다 결국 사망하게 된다.


 존은 문자를 익힐 요량으로 어린 시절부터 셰익스피어 등의 고전 문학으로 공부를 했다. 자연스레 그 시절의 도덕 관념과 '문명 세계'에 영향을 받지 않은 '야만 세계'의 도덕 관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문명 세계'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이 세계에서 '사랑'은 곧 '섹스'를 의미했고 이에 존은 충격을 받고 '문명 세계'에 깊은 회의감과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난동을 부리다 자살로 마무리 짓고, 버나드도 외딴 섬으로 유배를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지고 하는 일이 정해지는 삶은, 지금 세상의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이다. 하지만 '문명 세계'는 그런 삶을 안정된 사회로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는 일말의 자유를 향한 의지가, 교육을 통해서도 없앨 수 없는 의심이 심어진 사람이 나오게 된다. 우리는 자유를 아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살고 있다. 이제는 자유를 논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자유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모든 쾌락이 허용된다고 해서 인간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는 것 같다. 계급이 나눠져 있고 상위 계급은 하위 계급보다 훨씬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그들은 각 계급에 주어진 자유만을 누릴 뿐이다. 그 "자유"마저 사실은  누군가가 정해준 자유일 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유'인 듯 보이는 '방종', 쾌락 추구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자유 = 쾌락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들 인용되는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서 아래 단계가 만족할 수록 그 윗 단계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다고 한다. 아래로 갈수록 쾌락에 가까워지고 위로 갈수록 자유와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꼭 아래 단계를 만족시켜야만 윗 단계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쾌락을 포기하면서 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단식 시위를 한다거나, 더 건강한 삶을 위해 입에 단 것을 포기하고, 얕은 관계에서 더 깊은 관계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가 무엇인지 사유하고 토론해야 한다.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을 수 있게 더 치열하게 관찰하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 자칫 누군가 꾸며낸 허상의 세상에서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다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 하지 않을 수 있도록.




P.S. 이 책은 멘토링 수업에서 '살면서 절대 안 읽을 것 같은 책 읽기' 미션을 수행한 책이다. '소설'은 평소에 거의 읽지도 않는데다 '고전' 소설은 더더욱 안 읽을 것 같아서 선정했다. 학창시절 문학을 읽으며 주제를 찾고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을 참 못 했던 터라 문학을 읽으면 해석을 잘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어서 피하게 됐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쌓은 교양을 가지고 문학을 보니 보이는 게 다른 것 같다. 영화를 본 것처럼 책을 덮고도 지속되는 여운이 좋았다. 문학을 종종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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