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 너는 혼자가 아니다_03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제 어린이집 경력 중에 아버님께서 아이 적응 프로그램에 함께 하여주신 것은 처음이에요”
“아 그렇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아내의 직장어린이집에 선발되어 좋은 여건에서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는 기회였다. 내 육아휴직기간이 1년으로 제한되어있고, 직장 어린이집 모집도 1년에 한 번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이견 없이 기회가 왔을 때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어린이집에 처음 입소하게 되면 적응 프로그램을 하게 되는데, 기관마다 프로그램이 조금씩 상이한 듯했다. 프로그램의 골자는 집이 아닌 다른 곳(어린이집)에 아이가 일정 시간 동안 부모와 거리를 두며 놀 수 있도록 적응을 돕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부모 또는 주 양육자 중 1명이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원의 낯섦을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가 다니게 될 어린이집의 적응 프로그램 기간은 한 달이었다. 프로그램의 개요는 아래와 같았다.
1 주차 이것저것 탐색해보고 돌아가기
2 주차 함께 간식 먹고, 실내 체육활동해보기
3 주차 점심을 같이 먹기
4 주차 낮잠 같이 자기
적응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빠가 나 혼자이다 보니 한 달간은 엄아 또는 할머니들과 아이들을 지켜보고 또 함께 놀아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같은 반 아이들의 양육자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 반 아이들도 어른들의 얼굴이 익숙해졌는지 함께 놀이를 하게 되었다. 유일한 아빠였기에 호기심에 아이들은 나와 함께 놀고자 했고 급기야 내가 우스갯소리로 ‘제가 자원봉사자로 와서 함께 놀아야겠는데요?’ 라며 선생님께 말씀드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별 적응 상황에 맞추어 유동적으로 일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는 점이 안심이었다. 실제 아이가 3주 차 정도에는 아빠와 잠시 떨어지는 것에 대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금씩 떨어지는 시간을 늘려가다가 갑자기 겁이 났었나 보다. 이에 바로 선생님께서 ‘아버님께서 놀이하는 시간을 더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란 조언을 해주셔서 적응 프로그램에 여유를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란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자연스레 아빠와 물리적 거리를 두며 놀잇감을 탐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천천히 진행하고 완급조절을 하시는 점이 좋았다.
어린이집은 여러 방면에서 나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고독한 육아의 과정 속에서 어린이집 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감사했다. 그분들은 내가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육아와 관련하여 이것저것 편하게 물어볼 수 있도록 유도해주신게 무엇보다도 감사했다. 도움이 될만한 책도 추천해 주셨고, 특정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하면 대처 방법과 본인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들려주셨다. 희미하지만 가이드라인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평안이었다.
선생님의 시각에서 아이를 관찰한 내용들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시곤 “바삭바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얘기해 주셨는데 이 코멘트가 나의 메뉴 선택에 꽤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 아이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 바삭한 식감의 반찬(튀김류, 건새우, 멸치 볶음 등등)을 배치한다던지 말이다. 또 ‘집에서 블록이나 종이컵을 쌓은 뒤 무너뜨리는 놀이를 해봐 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란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무너뜨려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놀이도 좋겠다는 의미에서의 조언이었다. 나는 세심하게 아이를 관찰하는 데는 서툴렀지만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씀들을 통해 구멍 난 세심함을 메꿀 수 있었다.
또 아이가 다양한 놀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내 심리적 부담을 줄여주었다. 내가 놀아주는 방식이 매번 비슷하여 새로운 놀이 방법을 시도해 보잔 생각을 많이 하였고, 그때마다 어린이집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과 교보재를 간접적으로 보며 모방해 볼 수 있었다.
아이의 발달과 놀잇감들에 대한 궁금증은 공통적으로 부모가 많이 궁금해하는 사항인지 별도의 안내 세미나를 열어 초보 부모들에게 유용한 정보들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놀아줄 때 스킨십을 많이 해주세요’
‘부정적 언어가 아닌 긍정적 언어를 많이 사용해 주세요.’
‘10-15분이라도 아이와 놀이할 때는 아이에게 100% 집중해 주세요.’
월령별 적합한 놀잇감에 대한 안내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활용하는 놀이, 노래들을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최대한 많이 알아두고 집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활용해보는 것이 내 육아의 스펙트럼을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린이집을 단순히 등 하원을 하는 장소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이곳의 전문성을 조금이라도 활용하려는 노력을 할 것인지는 양육자 본인의 선택이다. 후자의 경우 내가 잘 몰랐던 부분을 알고 실상에 적용해 볼 수 있도록 협력의 기회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적극적인 참여는 어린이집의 선생님들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토대이며, 아이의 발달상황에 대해 차곡차곡 정보의 탑을 쌓아 나갈 수 있는 전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집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아이의 적응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또한 아빠도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소스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 "두번째 아빠육아휴직을 하게된다면" 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협력: 너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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