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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09. 2020

자가격리의 복병. 쓰레기 처리

자가격리 5일 차. 날파리 공격에 대비하기

"아빠!!!!!"
"왜! 무슨 일이야!"
"저기 모기가 있어"

여름철 모기에 물리면 퉁퉁 붓고 가려워서 긁는 고통을 겪어본 아이는 눈앞에 뭐가 날아다니기만 하면 놀라며 잡아야 한다고 아빠를 부른다. 항상 잡지 못하고 놓치는 아빠를 한심하게 쳐다볼 때도 있지만, 어쩌다 잡았을 때면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 하지만 본인 손으로는 잡으려고도 안 한다.


"이건 모기가 아니야. 날파리야"

"아 그래? 날파리는 왜 우리한테 오는 건데?"


자가격리 생활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찾아왔다. 바로 '날파리의 등장'이다. 모기와는 다르게 날아다니는 속도마저 빠르니 잡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평상시엔 쓰레기가 어느 정도 발생했다 싶으면 제때 수거장으로 배출할 수 있었지만, 격리기간에는 집 안에 함께 격리되어야 한다는 사실. 이 사실로부터 파생하는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점점 늘어가는 날파리를 보면서 왜 전담 공무원 분이 "쓰레기는 격리기간 중에는 절대 밖에다가 배출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반복해서 강조하셨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가 격리자가 되면 보건소에서 격리 패키지를 전달해 주신다. 종량제 봉투와, 의료용 폐기물 수거용 봉투, 마스크, 손세정제, 소독제 등으로 구성된 키트인데, 2주간 배출할 음식물, 일반 쓰레기를 담으라는 용도였다. 주어진 봉투에 담고, 별도의 스티커를 붙이면 격리 해제 이후 별도의 프로세스로 폐기물을 수거해 가는 방식이었다. 50L 종량제 봉투 2장과 의료용 폐기물 1장. 처음에 받고 나서는 뭐 이렇게까지 나오려나 싶었는데, 이미 집에 있는 쓰레기를 한데 담아보니 벌써 하나를 다 써버렸다.

 

발코니가 있는 집이 아니다보니 쓰레기 보관이 아주 난감한 일이 되어버렸다. 내겐 날파리를 없애는 임무 외에도 폐기물을 최소화해야 하는 임무가 별도로 주어졌다. 평상시에 쓰레기를 차곡차곡 정리하거나 효율적으로 정돈하는 습관이 있었다면 모를까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떡하니 나타난 셈이다.


이사 준비를 위해 주문했던 포장박스, 종이 박스 등이 담긴 골판 포장지. 필요한 물품을 택배로 받은 포장상자와 내용 포장물 등. 집에 들어올 땐 쉽게 들여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니 현관에 그대로 놓아둘 수밖에 없다.

또 아이에게 후식으로 주겠다고 여러 과일을 구비해놨던 것이 결론적으로 날파리를 부르는 결과를 낳았다. 점점 쌓이는 쓰레기와 음식물에 달려드는 달려드는 날파리. 앞으로 며칠이나 남았는지 달력을 하염없이 보며 생각했다.


'흠 이러다가 집안 쓰레기 대란이 생길 수도 있겠는걸.. 다른 대책이 필요하겠어' 


아무런 대책 없이 14일을 보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등골이 서늘했다. 50L 꽉 차 있는 음식물 쓰레기와 온갖 쓰레기들. 눈에 확연히 띄는 날파리 무리. 그 곁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는 나와 아이. 나는 그렇다 쳐도, 아이를 위해서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잘 안 하던 주방 청소를 했다. 여기저기 음식 잔여물이 있을만한 곳을 닦았다. 싱크대 안쪽 음식 잔여물이 묻었을만한 부분도 닦고, 개수대를 열어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했다. 가스레인지의 화구 부분을 비롯한 표면을 깨끗하게 닦았다. 아이가 놀자며 나를 잡아 끄는데도, 아빠가 모기들 안 나오게 하려고 이러는 거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분노의 수세미질을 했다. 아마 아내가 봤으면 무슨 일인가 싶었을 거다. 내가 청소하면 청소한 것 같지 않다고 종종 핀잔을 들을 정도로 청소에는 일가견이 없는데, 손수 주방 청소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요리하고 지저분하게 만들기, 아내는 청소와 뒷정리를 분업하던 호흡은 이제 2주간 없다. 내가 마무리해야 한다.


잔반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 밥을 먹이다 보면 항상 조금씩(때론 많이) 남기가 일쑤인데, 남은 건 오롯이 내 몫이 된다. 내 식사의 시작은 아이의 잔반을 먹는 것부터 시작이다. 평상시에는 아이가 남긴 것은 먹지 않고 버렸는데, 격리 상황이 되니 이 방법이 최선이다. 하지만, 운동량은 적은데, 이렇게 먹으니 점점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다. 아이가 '아침-간식-점심-간식-저녁-간식'을 먹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먹는다. 평균 체중보다 훨씬 적게 나가는 아이가 자가격리를 하면서 조금씩 살이 붙는 것을 보니 다행이다 싶지만, 함께 늘어가는 내 체중은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시설에 있는 아내와 통화를 하며 고충을 토로하니, 날파리 잡는 끈끈이와 대용량 음식물 수거통을 주문했다며 캡처해 보내주었다. 끈끈이가 제 역할을 잘해줬으면 좋겠다. 제발.



"폐기물 봉투는 자가격리가 해제되고 난 다음날에 수거합니다"

"아 그런가요? 선생님 근데 제가 해제되자마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인데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담당 공무원은 관련 부서 확인 후 다행히 당일에 배출이 가능하다고 답변 주셨고, 배출할 장소를 지정해 주셨다.


아마도 나는 격리 해제가 되는 12시 정오가 되자마자 나가서 햇볕을 만끽하고 바람을 느끼는 것보다 집에 있는 쓰레기를 몽땅 지정된 장소에 갖다 버리는 것부터 하지 않을까 싶다. 부피는 작지만 존재감은 큰 존재, 쓰레기봉투 더미와 2주간을 말썽 없이 잘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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