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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Oct 16. 2020

아빠 어디 있어?

자가격리 10일 차. 걱정하지 마. 아빠도 아무 데도 못 가니깐.

아이랑 열심히 놀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가 혼자서 자신만의 놀이에 몰입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웬만하면 방해하거나 말 걸지 않는다. 뭔가를 집중해서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서서 집중을 방해할 이유가 없다. 사실 그때 내가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 꿀 같은 시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이가 혼자 놀며 하는 얘기를 자세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쉽게 알게 된다. 어떤 때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오늘 배운 단어와 문장을 조합하여 혼자 얘기해보기도 하며,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여러 사람의 역할 놀이도 한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굵은 목소리를 내는 아저씨 흉내를 내기도 하고, 입을 뻐끔 거리는 물고기 흉내도 낸다. 요즘에는 부쩍 '푸쉬~ 푸쉬~" 로봇 소리와 발사하는 소리 등이 자주 들린다.


놀이에는 항상 시나리오가 존재하며, 자신이 생각한 흐름대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변의 물건을 바로 시나리오에 맞는 소품으로 투영한다. 이렇게 집중해서 노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식탁 의자에 앉아 아이가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아무 생각 안 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짤막한 휴식이다.


"아빠 이제 설거지할게. 잠깐 혼자서 놀고 있어"

"싫어~ 난 혼자 못 놀아"


미묘하지만 아이가 약간 변한 걸 느낀다. 아마 고열 사건 전후로 이런 변화가 있지 않았나 싶다. 내가 시야에서 잠깐 사라지기만 하면 아이는 내가 어디 있는지 찾으러 온다. "아빠 어디 있어?" 라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리 넓지 않은 집에서 내가 잠깐 방으로 가면 아이도 방으로 졸졸 따라오고 나오면 따라 나온다. 혼자 잠깐 놀고 있으라고 해도 놀지 않는다. 내가 함께 놀잇감에 붙어있어야 놀이를 시작한다.


불안한 게 있는 건가..... 생각해보면 환경이 변했으니 아이의 행동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이치일 수 있다. 내가 고열 증상을 겪고 아이와 놀던 방식이나, 생활 방식을 바꾼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에게는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환경이라는 점이다.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떨어져 있다는 점. 보고 싶은 사람을 애타게 찾아도 바로 볼 수 없다. 이때까지 엄마와는 한 번도 일주일 넘게 떨어져 본 적 없는 아이에게는 10일간 엄마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큰 일이며,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며 꿋꿋이 아빠와 살아내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다.



자가격리 초기, 아내는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대화에서는 항상 눈물이 가득했으며,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짜증과 절망의 섞임에서 나오는 분노도 가득했다. 그래도 아이와의 영상 통화에서는 최대한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첫 영상통화에서는 여지없이 눈물이 터졌다. 통화를 마친 후 아이 눈을 보니,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빠, 이상하게 내 눈에서 왜 눈물이 나지?" 라며 묻는 아이에게 최대한 담담하게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 그러게 왜 눈물이 날까?"라는 회피성 답변 말고는 머릿속에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건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그리움이 계속 축적된 탓인지 아이는 엄마와의 영상통화를 꺼리는 눈치다. 영상 통화를 해도 빨리 끊으려고 하고,  오히려 핸드폰을 가지고 장난치는 경우가 많다. '엄마랑 통화하는 거 싫어?'라고 물어보니 아이는 이내 "아니.. 엄마랑 통화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엄마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라고 답변한다. 그래 얼마나 만나고 싶겠니, 얼마나 보고 싶겠니.. 지금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만날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 조금 더 힘 내보자.


격리 10일 차, 좁은 공간에서조차 아이는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아빠랑 하루 종일 놀이하고 싶다고 하는 아이. TV를 보여주겠다고 해도 고사하는 아이. 그래 특수한 상황이니 네가 힘들어하고 불안해하는 것 모두 이해해. 힘들 때, 엄마가 보고 싶을 때 '그래도 내겐 아빠가 있으니깐'이라고 생각하고 안도했으면 좋겠어.


"아빠가 갑자기 없어질 거란 생각은 안 해도 돼. 걱정하지 마. 아빠도 지금 아무 데도 못 가니깐. 아빠는 거실 아니면 화장실 아니면 침대방 아니면 책상 방에 있을 거야. 알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는 껌딱지처럼 내게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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