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더 먼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
한국에서 미처 봉합하지 못한 관계들에 8,500km 떨어진 곳에서 상심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폐쇄되던 날의 딱 다음 해에 한국을 떠나오다 보니, 그 사이 친한 친구들 사이의 곪아진 문제들이 계속 상처의 범위를 넓히다 결국 터져 버렸다. 어제부터 결국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더니 독일 시간으로 아침에 눈을 뜨고 확인한 단톡방에 수 백개가 쌓인 메시지들을 보면서 급기야 폭발했구나 싶었다. 짐 정리와 서류 준비들로 바빴던 일주일 정도 지나는 시점에서 이제야 숨통이 놓이기 시작해, 아끼는 친구들에게 내가 머물게 된 집도 소개하고 서로의 근황도 물어보며 먼 거리로 떨어져 있는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는데 결국은 갈등이 터져버린 상황에서 몸보다 더 먼 마음의 거리를 체감한다.
한 친구는 "코로나가 심한 와중에 우리 모임이 나에겐 강제 같았고 스트레스였어." 하고 말했다. 다른 친구는 "서로 쌓인 걸 풀려면 결국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 하고도 말했다.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이렇게나 오래 지속되어 견고하던 우정도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 비단 이런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지금껏 일어났던 여러 일들을 듣고 겪으며, 문제의 원인이 정말 지금의 재난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전부터 이미 문제가 있었으나 시국을 핑계로 이제야 본심을 꺼내는 것인지 이 두 가지가 가끔 혼동된 적이 있었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환경이 바뀐다면 결국 마음 역시 변하는 걸까. 그리고 변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바뀐 환경의 탓으로 돌려야 할까?
이른바 현피도 하지 못하는 이 시국에서 한국의 친구들은 만나지도 못해 메신저로 열심히 각자의 마음들을 꺼내 놓으며 주말인데도 계속해서 단톡방은 쉬지를 않는다. 그래도 이곳 시간으로 자고 일어나서는 그 사이 에너지가 다들 소강되었는지, 혹은 너나 할 것 없이 소중한 주말에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목소리로 전할 말을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는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졌던 건지 메시지를 보내는 텀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친분도로 따지자면 이 친구들보다 덜 교류가 있던 다른 친구가 갑자기 영상통화를 걸어 얼떨결에 받았다. 그리고는 우습게도 이 친구에게 친구들 중 가장 먼저 내가 사는 집과 바깥의 풍경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래,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상처를 더 많이 주기도 하고. 반대로 그다지 친분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고 웃게 되기도 하는 게 인생이었지.
다른 친구와의 영상 통화를 마치고 자연히 발걸음은 강가를 옆에 낀 집 근처 산책로로 향했다. 룸메 언니와 지난 주말 시내에서부터 걸어왔던 그 길을 기억을 더듬어 거꾸로 돌아가자니 입구를 못 찾아 몇 번을 헤맸다. 집 근처에는 마땅한 카페가 없어 근처 맥도날드에서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옆에 차가 쌩쌩 다니는 다리를 건너 강을 따라 길게 나있는 길을 조금 걷다 강을 마주 보고 어느 돌 위에 대충 걸터앉아 잠시간 있었다.
흘러가는 강의 물결, 이미 늦은 오후가 되어버려 햇살은 사라진 냉기를 머금은 주변 온도, 가끔씩 조정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거위들의 깜찍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마침 외가 친척들 집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영상통화가 와 방금까지 내가 보고 있던 것들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이모들과 삼촌들과도 오랜만에 인사를 드렸다. 큰이모의 호탕한 웃음을 들으며 몇 분 남짓한 통화를 끝내니 꼭 다른 세상에 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다. 덕분에 친구들로 인한 상심이 다소 누그러진다.
금세 어두워져 돌아가는 길은 더 찾기가 어렵다. 길을 헤쳐 나가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머릿속에 잔여해 있던 잡념들이 끝내 자취를 감춘다.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그렸는데 하루는 어째 짧게 느껴진다. 그래도 돌아가 몸을 누일 곳이 있고, 그곳에서 다시 몰려오는 잡생각과 감정에 끝내 저항하지 못하겠지만서도 동시에 알고 있다. 결국은 잠에 들 거라는 것. 이 하루에 끝이 있을 거라는 것. 그 하루의 끝이 간절한 오늘이다.
외국체류 시작 (2021. 9. 17. ~)으로부터 +7일.
브런치북 첫 연재일로부터 +91일.
주의사항: 언제 이 체류가 종료될 지는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