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관한 오해를 풀면 자유로워진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는 ‘위장된 고민’이기도 하다. 수많은 직업 중에서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고, 수많은 직장 중에서 하나의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다루어야 한다.취업을 한 이후에도 선택의 순간은 다가온다. 이 회사는 정말이지 비전도 없고, 더구나 꼰대 상사를 만나서 기분도 엉망이다. 사직서를 쓸까? 말까? 하는 선택을 마주한 사람도 있다.
결혼은 어떠하랴? 누가 나의 천생연분인지? 누가 나의 베스트 커플인지? 지구 상에 수많은 여성과 남성중에서 나의 배필을 어떻게 쉽게 선택한단 말인가? 결혼을 한 이후에도 선택의 고민은 쫓아온다. 결혼생활 동안, 크고 작은 부부싸움에 지치고 지쳐서 이혼을 할까? 말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가? 선택의 결과에 따라서 나에게 더 이익이 될 수도 있고, 더 손해가 될 수도 있고, 때론 삶의 성공과 실패로 귀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선택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보자.
첫째는 나의 선택에 의해서 모든 결과가 결정된다는 '선택 결정론'이다. 선택의 고민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선택하지 않은 다른 하나로 인해서 우리의 선택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늘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은 팔짱을 끼고 우리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선택의 결과가 나쁘면, 보란 듯이 말할 것이다. “너의 선택은 잘 못 되었어!” “네가 선택을 잘했더라면, 네 인생이 달라졌을 거야!”
선택의 결과는 ‘선택’만으로 결정되는 것인가? 하나의 선택이 초기 변수가 되지만, 결과는 내가 왜 그 선택을 했는가? 하는 가치 기준과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선택은 점을 찍는 것이며, 가치는 방향이고, 실천은 점을 선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선택했는가? 보다, 왜? 그 선택을 했는가? 하는 이유와 실행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둘째는 내가 선택하면 그것으로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선택 주도권'이다. 구직활동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은 대부분 나의 선택이 나의 직업과 직장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이는 직업과 직장에 관한 탐색 단계에서는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모습은 다르다. 취준생 홍길동은 본인이 탐색한 모든 직장에 원서를 내고, 자소서를 준비한다. 하지만, 대부분 서류전형 통과도 어렵다. 겨우 면접 기회를 얻었다 하더라도 또 높은 경쟁의 허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합격을 하고, 첫 출근을 하는 날 홍길동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이 직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직장이 나를 선택했다는 것을 말이다.
남녀관계도 마찬가지다. 홍길동은 첫눈에 마음에 든 아가씨를 만난다. 데이트 신청부터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 온몸을 던져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나면, 홍길동은 나의 선택이 성공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함께 살다 보면, 내가 아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나를 선택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된다.
셋째는 나의 선택지가 많을수록 선택의 재량권이 커진다는 '선택 자유론'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보다 열 개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선택의 폭이 넓고, 따라서 내가 더 선택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고른다. 작은 장난감 가게에 갔을 때는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한다. 그런데 오히려 대형 백화점이나 장난감 전문점에 가면 너무나 많은 장난감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어느 것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때론 이것, 저것 모두 집어 들고, 투정을 부리다 울고 만다.
아이들만 이럴까?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우리나라는 1만 1천 개, 미국은 3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 많은 직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택 장애에 빠지게 된다. 세상에 수많은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춘남녀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이 어렵다. 수많은 청춘남녀를 모두 만나고 사귀어보고 비교해서 결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00번을 소개를 받아서 100명의 이성을 만났는데, 한번 소개받은 사람이 또 나와서 “이 사람은 인연이구나.”하고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선택지가 많다고 생각할수록 '선택 과잉'으로 인해서 '선택 장애'가 오기 쉽다. 다르게 관찰하면, 사실은 늘 선택은 예(yes)와 아니오(no), 둘 중에 하나다. 내가 살아가는 길에서 내 앞에 나타나는 그 누구, 그 무엇에 '예' 또는 '아니오'하면서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선택을 마주한다.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의 선택을 하는가? 인식의 차이일 뿐이지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산다. 아침에 자명종이 울려도 금방 일어날 것인가? 10분을 더 잘 것인가? 중국집에 가서도 선택을 마주한다. 중국집에서는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하는 선택애로를 해소해주기 위해 짬뽕과 짜장면을 반반씩 한 그릇을 양분한 ‘짬짜면’ 메뉴를 출시한 지 오래다.
모든 시간이 선택의 연속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선택의 무게를 지고 살지는 않는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분명하면, 모든 선택은 쉽고, 자연스러우며, 선택이라는 재판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사진출처
- 선택의 갈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