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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Sep 08. 2023

세상에는 절 가는 누나도 있어요

[100일 100 글]89일, 여든아홉 번째 썰

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인 것과는 별개로, 나는 절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부모님이 절에 끌고 가신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절이 편했다. 쉬는 날에 다른 스케줄이 없다면 절을 찾는다. 많은 곳을 가보지는 않았고, 가게 사장님 모르는 단골손님 느낌으로 한 장소의 재방문율이 높은 편이다.


절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희미한 조각으로 남아있다. 당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 고모 가족이 할머니를 모시고 절에 갔었다. 어린 나와 동생들은 바깥 마루에 앉아 있었고 어른들은 안에서 기도를 하셨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는 풍경소리와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향냄새. 소리는 예뻤고, 향기는 은은했다. 흙바닥을 보면 뛰어다니기 바쁜 나일 텐데, 마루에 오도카니 앉아 감각에 집중했던 것 같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신 고모에게 향냄새가 너무 좋다는 말을 했고, 고모 역시 웃으며 동의해 주신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참 예뻤는지 가라고 강요한 사람도 없는데 성인이 된 이후 나 혼자 절을 방문하게 되었다. 도심 한중간에 있던, 산속에 있던 가리지 않고 방문했다. 처음에는 접근성이 좋은 도심에 있는 절을 자주 갔는데 지금은 주로 산사를 가는 편이다. 아무래도 차 소음보다는 산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가 더 좋다. 맑은 풍경 소리와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유튜브의 ASMR 영상이 전혀 부럽지 않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절의 큰 매력 중 하나이다. 내가 가봤던 모든 절들은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또 하나의 매력은 절에 서 있노라면 모든 감각이 부드럽게 자극된다는 것. 햇빛이 부서지는 대웅전의 모습도, 부슬거리는 비가 흙바닥을 두들기는 소리도, 은은한 향도 모든 것이 넘치지 않고 적당하다. 불경을 암송하시는 스님의 목소리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나오는 길에 절 굿즈까지 구매하면 하루가 완벽해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또래 신자들이 거의 없어 그곳에 있기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심심치 않게 어린 학생들도 볼 수 있다. 최근 날이 너무 더워 절에 가지 못했다. 그것이 조금 안타까웠는데 다행스럽게도 오늘 아침 공기가 제법 시원했다. 그렇다면 슬슬 절 스케줄을 잡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놀러 가기 좋은 날씨가 되었으니 조금 먼 곳으로 떠나도 좋겠다. 향냄새와 풍경소리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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