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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Sep 12. 2023

나도 내가 회식을 원할 줄 몰랐다

[100일 100 글]91일, 아흔한 번째 썰 

취직이 결정된 후 가장 걱정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회식이다. 그때까지 난 단 한 번도 그런 어려운 자리에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함께 술을 마셔본 어른은 부모님 외 친척 어른들이 전부였다. 혹여 내가 실수할까 봐 걱정도 되었고, 술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입사한 회사는 술을 먹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전체 회식은 아주 드물었고 내가 속한 부서의 팀장님께서는 술을 드시지 않았다.  


일단 내가 다니는 회사의 회식 문화를 먼저 소개해볼까. 이미 설명했듯이 전체 회식은 아주 드물다. 송년회를 포함한 전체 회식은 1년에 3번을 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고, 2년 동안 회식은 전무했다. 코로나 방역수칙에 위배되지 않게 소소한 인원들만 모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방역이 완화된 작년이 돼서야 아주 오랜만에 전체 회식을 하게 되었다. 


회식이 적다는 것은 나에게 극호였다. 술이란 자고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즐기면서 마셔야 하는 것 아닌가.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실수할까 봐 걱정할 상황은 피했으니 신입사원으로서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일단 불편한 상황을 피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불편한 사람과 함께 할 때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아마추어다. 때문에 신경 쓸 것이 많아 피곤하다. 그래도 1년에 몇 번만 조심하면 되니 그 정도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연차가 쌓인 지금. 내 생각은 아주 조금 바뀌었다. 


오랜만에 회식을 하는데 너무 어색했다. 같은 회사 동료들끼리 내외하는 것도 아니고, 마스크 벗은 얼굴을 처음 보는 직원도 있었다. 분명 몇 개월 동안 같이 일했던 직원인데 첫 대면인 것처럼 서로 부끄러워했다. 본사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되는 것도 아니고, 20명을 겨우 넘기는 정도인데 회식에서 미팅 분위기가 났다. 누가 보면 거래처 직원들끼리 식사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자고로 회식자리에서는 같은 부서끼리 더 돈독해지고, 타 부서와의 반목도 사라질 수 있지 않나. 


무엇보다 긍정적인 업무 피드백이 가능해진다. 신입사원 당시 매일 깨지는 것이 일이었는데 맨 정신으로 못하는 낯간지러운 말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일까. 처음으로 팀장님에게 이런 것만 고치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다. 좋은 말에 몹시 인색한 분이셨기에 조금의 감동도 느꼈다. 타 부서 상사분 들도 나에게 굉장히 잘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다독여 주셨다. 미취학 아동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처럼, 나 역시 당시 받았던 피드백으로 지금껏 버티며 쑥쑥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회식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을 수 있다. 일단 자리 자체가 불편하고, 다음날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안 봐도 되는 더러운 꼴도 감내해야 한다. 상호 간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분기별로 1번씩은, 그마저도 힘들다면 점심시간을 활용해 보는 것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나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회식이란 5 백 원짜리 동전 같다. 없어도 크게 아쉽진 않은데, 진짜 없으면 마냥 아쉬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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