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우 에디터 Jul 17. 2022

제프 쿤스: 거대한 강아지 풍선으로 높인 시장 점유율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재벌 예술가의 브랜딩 법칙

2013년, 439억 원에 낙찰된 <Balloon Dog> 


이 작품은 제프 쿤스의 대표작, <풍선 개 Balloon Dog>입니다.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천 840만 달러, 한화 약 759억 원에 팔리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의 작품이 되었죠. 이전까지 생존작가 최고 낙찰가는 439억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역시, 제프 쿤스의 기록이었죠. 과거 본인의 기록을 현재의 자신이 깨뜨린 것입니다.


제프 쿤스의 기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2019년,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토끼>가 9천 백만 달러 (한화 약 1,185억 원)에 낙찰되며 자신의 기록을 또 깼습니다. 439억, 759억, 1185억. 순차적으로 최고가를 갱신한 제프 쿤스의 작품들.


그의 작업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어서 이렇게나 비싼 금액에 팔려나갈 수 있었던 걸까요? 심오한 예술 세계가 담겨있는 것일까요?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워 보여서 일까요?


제프 쿤스와 천억 원대에 낙찰된 <토끼> © nyt


쿤스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고급스럽기도 하고 위트있기도 한 현대미술 작품처럼 느껴지는데요. 사실 이 작품을 만든 제프 쿤스는 상당한 괴짜입니다. 작품을 고가에 판매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활용했죠. 이는 '상업성', '괴짜', '스타' 등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제프쿤스와 상업성

(좌) 앤디 워홀, (우) 제프 쿤스


현대미술계에 가장 상업적인 작가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제프 쿤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앤디 워홀'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워홀은 상업사회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잘 드러낸 작가인데요. 동시에, 이를 통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가 되기도 했습니다.


쿤스는 워홀이 갔던 길을 쫓은 작가입니다. 워홀처럼 스스로를 마케팅한 인물이죠. 이전에 쿤스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세일즈맨으로 일하기도 했고, 작품의 자금 확보를 위해 월스트리트에서 선물중개인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술품 딜러로 일한 적도 있고요.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미술품도 상품처럼 세일즈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타 예술가가 된 지금도, "훌륭한 작가는 훌륭한 흥정가가 되어야 한다"거나, "내 작품의 시장점유율을 증대시킨다" 등 작품을 상품처럼 바라보는 느낌의 말을 남기곤 하죠.


Michael Jackson and Bubbles, Jeff Koons, 1988 © Flickr


그렇다면 쿤스는 어떤 상업적 행보를 보였을까요? 쿤스는 워홀처럼, 스타를 작품에 활용했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마이클 잭슨과 버블>은 그를 처음 유명세에 올린 작품인데요. 마이클 잭슨의 두터운 화장, 애완 원숭이를 끌어앉고 공허하게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은 스타의 연약함을 잘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죠.


이후 2001년 5월, 이 작품은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와 560만 달러 (한화 약 72억 원)에 낙찰됩니다. 쿤스가 작가로 데뷔한 지 10여년 만의 일이었죠. 사실 10년 차 작가가 수십억 원대 작품을 파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요. 쿤스는 머리를 썼습니다. 이 작업을 3개로 제작한 것이죠.


© ArtnetNews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소장했고, 나머지 한 점은 그리스의 유명 컬렉터인 다키스 조아노가 소장했습니다. 이처럼 대단한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프리미엄으로 작용합니다. 덕분에 쿤스는 이 작업을 비싼 금액에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워홀의 방식으로 유명 스타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유명 컬렉터에게 영업해 작품의 퀄리티를 검증했습니다. 이를 통해 쿤스는 데뷔 후 불과 10년 만에, 72억 원 짜리 조각 작품 판매 기록을 세울 수 있었죠.



괴짜 예술가, 제프 쿤스

MADE IN HEAVEN 시리즈 전시 모습 © garage magazine


제프쿤스는 오늘날 사회에서 예술가의 위상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단, 그 예술가가 유명할 때만요. 쿤스는 이런 현실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유명인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꾸준히 작품에 본인을 그려넣었죠. 처음에는 밴드의 리드싱어로 자신의 모습을 묘사했는데요, 이 정도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쿤스는, 자신의 성관계 장면을 작품에 활용하기로 합니다.


그의 작품, <메이드 인 헤븐>은 시리즈 작업으로, 금발의 여성이 흰색 속옷만을 걸친 채 쿤스와 뒤엉킨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 만든 작업이었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사진 속 여성입니다. 그는 제프 쿤스의 아내로, 그와 3년 간 결혼생활을 했는데요. 직업이 매우 독특합니다. 이탈리아의 포르노 배우이자, 정치인이죠. 쿤스는 '아내와 나 모두 미디어가 따라다니는 사람들이기에 천생연분'이라고 언급하기기도 했는데요. 두 사람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뒤엉킨 모습은, 많은 관객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는 철저히 제프 쿤스가 의도한 바였죠.


영화 포스터 컨셉으로도 만들어졌다. © Sartle


사실 이전에도 포르노와 예술을 접목한 화가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프 쿤스처럼 '본인'이 직접 등장한 작가는 없었죠. 게다가 아내는 포르노 출신 배우면서, 이탈리아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대중적 논란을 만들기에 충분했죠. 수 많은 관객이 쿤스의 작품에 주목했고, 시리즈는 점점 더 난해해져 갔습니다. 그의 작품, <레드 버트 Red Butt>는 쿤스와 아내가 애널 섹스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작품 도록에는 작품 사진이 나오기 전, "다음 그림은 수위가 높은 성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경고문을 담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마케팅의 일부였고요.


이에 미술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지나치게 저속하다'는 이유였는데요. 시간이 지날 수록 이런 여론은 더욱 강해져, 미술계 최대 행사 중 하나인 '도큐멘타 11'에도 쿤스는 초청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참석자 중 한 명으로부터 행사장 외곽에 설치작품 의뢰를 받습니다. 정식 초청은 아니었지만, 쿤스에게는 큰 기회였죠. 그리고 쿤스는 꽃으로 뒤덮인 거대한 강아지를 제작해 내놓습니다.


구겐하임이 구입한 쿤스의 작품 



이후, 미술계 관계자나 예술 애호가들만 모이던 행사장은 쿤스의 '꽃 강아지'를 보기 위한 다양한 관객들로 북적였습니다.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온 거대한 꽃 강아지'라는 제목의 뉴스는 엄청나게 쏟아졌죠. 이 작품은 미술계 뿐만 아니라 언론, 대중의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는데요. 이후, 구겐하임 미술관은 쿤스의 꽃 강아지를 구입합니다. 이를 통해 쿤스는 다시 미술계 재기에 성공,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죠. 




 "미술시장 필요 없다" -제프 쿤스

© Masterworks


아슬 아슬 줄타기를 선보이는 듯한 제프 쿤스의 행보. 쿤스는 이전에 '나한테 미술시장은 필요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로 미술씬에 입문했을 당시부터, 경매회사나 갤러리, 거대 컬렉터 등 미술시장 권력자들로부터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자 했기 때문인데요. 호기롭게 미술시장을 부정했던 예술가는 오늘날 가장 부유한 재벌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쿤스는 예술가로 데뷔한 직후, 연예인처럼 계속 자신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파격적 언행이나 독특한 작품 세계는 충분한 파급력이 있었는데요. 이 외에도, 마치 작품보다 본인이 유명해지길 바라는 듯한 행보도 많이 선보였죠. 비키니 입은 여성들 사이 둘러싸인 채 사진을 찍거나, 작품 앞에 서서 기괴한 표정으로 사진을 남기기도 합니다. 또 이전에 앤디 워홀이나 살바도르 달리가 그러했듯, 사인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잡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는 등 끊임없이 대중에게 자신을 선보이며 유명세를 키워나갔죠.


© Art and Crit


하지만 미술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유명하다고 해서 스타 예술가가 될 수는 없죠. 쿤스는 데뷔 초 미술시장이 필요 없다 말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이 씬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쿤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술시장을 공략합니다. 자신의 시리즈 작업 중 1호 작업은 유명 미술관, 저명한 컬렉터에게 판매했죠. 그것도 가격을 할인해주면서까지 말이에요.


유명 미술관이나 대형 컬렉터에게 1호 작품을 팔면,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습니다. '구겐하임이 소장한 작품', '찰스 사치가 사들인 작품'이라는 딱지는 불투명한 미술시장에 확실한 지표가 되어주기 때문이죠. 제프 쿤스는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작품이 완성되기 전부터 영업을 시작해 이들에게 팔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대중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들이 사들인 소식만 접할 뿐이죠. 겉으로만 보면, 여전히 쿤스는 미술시장을 등진 듯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영리하게 시장구조를 파악해, 작품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죠.




제프쿤스 작품 가치 알아보기

© Vanity Fair


오늘날 쿤스는 뉴욕 첼시에 작업실을 두고,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 작업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90명~최대 120명이라고 하는데요. 제프 쿤스는 앤디 워홀이 그랬던 것 처럼,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고, 기획만 합니다. 가끔 쿤스가 작업실에 들를 경우는, 조수들이 공정별로 일을 제대로 하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때문에 쿤스를 '작품 철학 없이 유명세에 집중한 관종', 혹은 '아이디어만 내놓는 현대미술꾼'처럼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비평가들 중에서는 '자기 상품화에 몰입했을 뿐'이라는 비난 섞인 조롱을 내놓는 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켠에서는, '제프쿤스는 선구적인 작가며,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가다'라고 보기도 합니다.


쿤스의 작품이 전시된 모습 © The Times


쿤스의 작업물은 기존 미술시장에서 전혀 볼 수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작가 자신의 괴짜스러운 면모를 더해 발칙한 모습을 보여주죠. 쿤스는 이 점이 자신의 작업의 최강점임을 빠르게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대외적인 활동을 선보였고, 때로는 순수예술과 키치를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제프 쿤스' 라는 이미지는, 대중에게 강력하게 어필되는 브랜드가 되었죠.


지금도 제프 쿤스의 작품은 엄청난 고가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강력한 브랜드로 미술시장, 그리고 관객들의 뇌리를 자극하는 제프 쿤스. 앞으로 그의 행보는 또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게 될까요?


© Jeff Koons



제프 쿤스는 앤디 워홀이 떠난 자리를 대신할 만한 예술가지만,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워홀은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셀럽 문화에 매료되어
그것을 향유하고 기꺼이 동참하는 한편,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되도록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했다.

하지만 쿤스는 달랐다.
쿤스는 자기 자신을 조작된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발칙한 현대미술사: 천재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 경쟁, 윌 곰퍼츠, 2012 (RHK)


> 예술가들의 셀프 브랜딩 사례, Bid Piece를 통해 만나보세요. 

이전 09화 다큐멘터리로 보는 뱅크시의 작품세계 [3] 정체성 모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