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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우 에디터 Sep 09. 2022

다큐멘터리로 보는 뱅크시의 작품세계 [3] 정체성 모순

저작권은 루저들을 위한 것이다?

© Banksy


뱅크시는 거리예술을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작품을 파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의 작품은 사고팔 수 없었죠. 이에 뱅크시는 포스터를 제작해 팔거나, 책을 내거나, 놀이공원을 만들어 수입을 창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뱅크시가 판 물건이나 만든 작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뱅크시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쉽게 벌었죠.


뱅크시는 자신을 통해 돈을 버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봤습니다. 대신, '그라피티는 소수를 위한 예술이 아니다'라며 불쾌감을 표했죠. 그렇게 온건한 대응을 하던 중, 뱅크시가 최근 자신의 저작권을 지키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 Art of Banksy


위의 두 사진은 작년 여름,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뱅크시 전시의 홍보 포스터입니다. 그리고 이 전시에서 내세운 슬로건은,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시'이기도 했죠. 실제로 전시는 뱅크시의 동의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28개국을 돌며 순회 전시까지 했죠. 이에 뱅크시는, 본인 웹사이트에 'FAKE' 전시하며 보이콧을 장려합니다.


(좌) 뱅크시 웹사이트, (우) 가짜 전시 보이콧을 장려하는 게시물 © Banksy


하지만 안타깝게도, '뱅크시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라는 점은 전시의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뱅크시가 익명의 예술가이니, 허가받기 어려웠겠지!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이죠. 전시는 잘 됐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앵콜 전시까지 진행하기도 했죠. 


(좌) 전시 기획자 스티브 라자 리즈(Steve Lazarides) (우) 런던 소더비 전시장에서 열린 뱅크시 프리뷰 전시 모습


이 전시를 기획한 건, 뱅크시의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스티브 라자 리즈(Steve Lazarides)였습니다. 스티브는 일찍이 뱅크시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일을 해왔죠. 뱅크시가 그라피티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의심할 때, '아웃사이더'로 뱅크시를 새롭게 브랜딩 한 것도 스티브였습니다. 또 뱅크시의 포스터 사업을 위해 웹사이트 POW를 연 것도 스티브였죠. 뱅크시와 스티브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8년까지 함께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이들은 결별합니다. 이들의 결별에는 여러 풍문이 있었습니다. 스티브가 뱅크시 작품을 판 돈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 뱅크시가 실망을 했다거나, 둘 사이에 돈 문제가 있었다거나, 자존심 싸움을 했다거나, 비밀 유지 협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등 많은 이야기가 있었죠. 하지만 이는 모두 소문이었고, 스티브는 "여전히 나는 뱅크시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다"라며 대응했습니다.


© Artsy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스티브가 뱅크시 덕분에 많은 돈을 번 것은 사실입니다. POW의 현금흐름을 파악하고 통제했던 유일한 인물이 스티브였고, POW는 공개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였기에 정확한 규모는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스티브만 알고 있었죠. 이 외에도 전시 수익, 굿즈 수익 등 많은 부분을 스티브가 가져갔고요. 뱅크시에게 들어오는 모든 비즈니스 연락도 스티브가 담당했습니다. 비밀스러운 예술가 뒤에 더 비밀스러운 매니저가 있었던 셈이죠.


그리고 이 둘이 결별한 지 6년이 지난 2014년, 스티브는 자신이 소장한 뱅크시 작품을 뱅크시의 동의 없이 경매에 내놓습니다.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열린 프리뷰 전시가 시작이었습니다. 경매 회사에서는 작품의 컨디션 체크를 위해 경매 참여자들에게 작품을 미리 선보이는 프리뷰 전시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뱅크시의 작품이 판매를 위해 걸린 것이죠. 이를 시작으로 스티브는 <Art of Banksy>라는 제목의 무단 회고전을 진행했습니다.


2003년 열렸던 뱅크시의 공식 전시  전경 © Banksy


10년 넘게 함께 일한 파트너가 자신의 동의 없이 전시를 선보이는 상황. 뱅크시는 그간 자기 작품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저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스티브의 불법 전시도 처음에는 지켜보았는데요. 이후 스티브가 조금씩 티켓 비용을 올리며 여러 나라에서 순회 전시를 진행하자, 홈페이지에 FAKE 전시하며 경고의 글을 올립니다. 하지만, 어떤 법적인 절차도 밟지는 않았죠. 전시는 최근까지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 Full Colour Black


그러던 중 2019년, 큰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뱅크시와 그 어떤 연고도 없던 업체, Full Colour Black이 무단으로 뱅크시 이미지를 활용해 엽서를 제작하고, 판매를 한 것이죠. 장당 약 4천 원을 받고 판매했고, 종류만 수십 종에 달했습니다. 뱅크시는 이번엔 참지 않았습니다. 소송을 걸었죠.


그런데 FCB에서는 당당하게 대응했습니다. 뱅크시의 작품은 길거리에 그려진 것이고,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고화질 이미지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두었다. 제작 과정에서 그 어떤 제제도 없었다. 이것이 어떻게 저작권이라 볼 수 있는가.


© EPO (EU 특허청)


이에 EU 특허청에서는 FCB의 편을 들어줍니다. 가장 큰 이유는 뱅크시의 실명과 신원 파악이 불가하기 때문이었죠. 뱅크시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게 논조였습니다.


© Banksy


같은 시기, 뱅크시는 가게를 오픈합니다. GDP(국내총생산)이라는 이름의 가게였는데요. 물건 파는 방식이 독특했습니다. 점원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50단어 내로 답변을 해야 물건을 받을 수 있었죠. 이때, 답변이 괜찮으면 무료로 물건을 받을 수 있고, 별로면 유료로 구매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매장 내에서는 재고가 없어서,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했죠. 괜찮은 답변을 했을 경우엔 집 주소로 물건이 배송되었습니다. 물론, 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고요.


물건 하나도 독특하게 판 뱅크시. 그가 정신없는 소송 와중에 이런 이벤트를 기획한 건, 이유가 있었습니다. 상표권을 주장하기 위함이었죠. 이미 뱅크시는 2014년에 상표권을 낸 적이 있었는데요. EU에서는 상표권을 낸 후 5년 내로 상품을 판매하지 않으면 무효화됩니다. 때문에 급히 상표권을 지키려는 시도를 한 것이죠.


GDP의 전경 © Quartz


이에 EU 특허청은 상표권을 방어하기 위한 일회적인 시도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죠. "익명의 예술가는 대중이 본인의 저작권이나 저작물을 복제, 수정 및 기타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덕적, 법적 가능성을 이해해야 한다."


저작권과 상표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얼굴과 신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미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뱅크시 얼굴 공개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되었지만, 결국 뱅크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소송은 2021년, 뱅크시의 패소로 막을 내렸죠. 지금도 FCB에서는 여전히 뱅크시 엽서를 판매 중입니다.


(좌) 뱅크시가 이전에 남긴 그라피티 © Banksy (우) 셰퍼드 페어리의 모습


뱅크시는 이전에 '저작권은 패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이 말과는 상당히 상충되는 행보였기에, 비난도 많이 받았는데요. 뱅크시의 절친한 친구이자 스트리트 아티스트인 셰퍼드 페어리는 다소 비판적인 이야기도 내놓습니다.


"뱅크시는 예술품을 판매하는 일, 그리고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아주 많이 신경을 씁니다. 사람들의 환상이, 현실보다 더 나은 마케팅 도구라는 것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죠." 여기서 현실은 뱅크시의 작품세계, 즉, 뱅크시가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환상은 뱅크시의 신비로움을 의미하죠. 셰퍼드 페어리는 뱅크시가 선보이는 메시지보다, 그의 신비주의가 더 잘 팔린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 Banksy


실제로 뱅크시는 소속 갤러리는 없지만, 홍보 에이전시는 두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죠. 저작권은 패자들을 위한 것이라 주장한 뱅크시, 그리고 그런 그를 반박하는 루저들, 뱅크시 추종자들은 이 루저들을 다른 근거로 반박합니다.


첫째로, 뱅크시는 본인 작품을 이용해 돈을 버는 이들에게만 대응합니다. 뱅크시는 Pest Control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불법적으로 본인 작품을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회사나 개인을 막기 위함인데요. 이 단체를 만든 이유는 스티브 라자 리즈가 런던 소더비 프리뷰 경매를 열었을 때 대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둘째로, 뱅크시는 여전히 상업적 움직임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어느 갤러리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최소한의 활동만 하죠. 오늘날 갤러리는 마치 예술가들의 소속사처럼 작가를 홍보하고, 전시를 열어주고, 작품이 팔리게 도와주는데요. 뱅크시는 그저 자신의 크루를 꾸려 활동합니다. 작품은 웹사이트 등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전시하고요. 또 누구나 고화질의 작품 사진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단, 상업적 사용은 하지 말라는 문구가 있죠. 이 문구도 FCB 사건 이후 보인 대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뱅크시는, 기부를 위해 상업적 활동을 합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사우샘프턴 종합병원에 자신의 작품 <게임 체인저>를 선물했습니다. 이 작품은 액자에 담겨 병원 복도에 걸려있었는데요. 1년간 전시된 후,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뱅크시가 이걸 원했죠.


작품은 1,670만 파운드 (한화 약 264억 천만 원)에 낙찰되었고, 수익금은 국민보건서비스를 지원하는 자선단체에 기부됐습니다.



이 외에도, 디즈멀랜드의 수익금은 난민 피난처 설계에 쓰도록 기부했습니다. 지금도 7천여 명의 난민이 살고 있는 프랑스 칼레 지역의 '정글'에요. 또 2019년에는 이민자 천여 명을 이탈리아로 구출해 화제가 된 독일의 생물학자에게 돈을 보내, 새로운 보트를 살 수 있게 돕기도 했습니다. 작품을 판매하거나 전시를 열 때와는 달리, 기부할 때만큼은 뱅크시가 직접 컨택해 자금 전달을 진행한다고 해요.


뱅크시는 권력과 권위에 저항하고, 소수의 약자들에 집중하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통해 얻게 된 유명세와 부를 소수자와 약자에게 직접 전달했죠. 뱅크시의 이런 행보는 진정한 사회참여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 Sotheby's


여전히 뱅크시는 스스로를 사회 최하층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사회 체제와 권위에 저항하는 예술을 계속 선보이려 하죠. 2021년 경매장에서 작품을 분쇄한 퍼포먼스는 그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고요.


뱅크시의 현재 나이는 48세입니다. 50이 가까워져오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꾸준히 파급력 있게 선보이는 예술가는 매우 드물죠. 언제나 선을 넘나들며, 예술을 더 많은 대중에게 전달하고, 그 영향력을 사회 최하층 약자에게까지 넓힌 점에서 뱅크시는, 현대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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