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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사람 A Nov 07. 2020

쌀쌀한 가을의 캐럴, 정준일 <Summer Inn>

정준일, <Summer Inn>

2014년 발매된 정준일의 2집 ‘보고싶었어요’ 이후, 그의 앨범에선 좀처럼 동화 같은 가사나 스트링 사운드를 찾기 힘들었다. 3집과 4집은 현실적이며 자전적인 이야기와 미니멀한 메인 사운드, EP 앨범은 자기혐오, 현실 비판 등의 무거운 가사와 피아노, 쨍한 기타 사운드가 주춧돌이 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는 정준일이 가진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으나, 그를 대표하는 대표성의 완전한 근간이 되지는 못한다. 이것은 '안아줘', '고백', '첫 눈'과 같은 모든 곡에 적용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거의 5년이 가까이 지난 시점, 예상치 못한 투 트랙 (Two Track) 싱글, ‘Summer Inn’에서 그에게 남아있던 ‘보고싶었어요’의 흔적을 찾게 된다. 수록곡 ‘Summer Christmas’와 ‘Sleep in summer’은 ‘보고싶었어요’의 ‘크리스마스메리, Merry’의 양면을 하나씩 나눠가진다. 


의아하게도, 이 앨범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차가운 태풍이 오던 날, 그는 여름의 캐럴을 노래한다. 정준일이 자신의 환상과 꿈, 그리고 따스함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Summer Inn>

01. Summer Christmas

02. Sleep in summer


곡의 구성을 이끌어가는 일렉 기타와 힘을 뺀 스트링 사운드는 ‘Summer Christmas’라는 제목에 그럴듯하게 들어맞고 있다. 일렉 기타는 진성과 낮은 가성을 오가는 목소리에 거리를 두고 배회하며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 된다. 이후 등장하는 나지막한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청자가 곡에 갖는 기대감을 높이고, 부담감을 낮추며 그들의 역할에 충실한다. 가사 속 산타와 루돌프, 그리고 곁에 남아 함께하겠다는 다소 이야기는 어떤 이에겐 그리 마음에 들지 못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다.


<Summer Christmas>의 기타 코드는 유려하게 <Sleep in summer>의 피아노 멜로디와 연결된다. 낮고 낮은 곳으로 침전하는 듯한 가사는 ‘크리스마스메리, Merry’를 닮았다. 집중하지 않는다면 3분 33초라는 재생 시간은 무난하게 흘러갈 수 있다. 하지만 ‘엄마의 젊은 날을 모두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겠죠’, ‘우리 함께 춤을 출까요? 세상이 끝내 멸망할 때까지’ 등의 가사는 휘휘 대기를 떠돌던 멜로디를 다시 마음에 무사히 안착하도록 돕는다. 단조롭게 들릴 수 있는 코드 진행은 연주자의 섬세한 테크닉을 통해 편안함으로 변화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안아줘’나 ‘고백’, ‘첫 눈’ 등의 가슴 아프고 절절한 곡들은 음악에 대한 정준일의 애정과 역량을 잘 보여준다. 그가 말했듯이, ‘붓으로 찍어 휙 그은’ 곡들은 오히려 그가 가진 다양한 생각을 잘 표방한다.


그의 음악이 가진 색채는 흔한 레토릭으로 대표되지 않는다. 정준일의 메인 발라드는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큰 파편 중 하나일 뿐이다. 정규 단위의 앨범이나 가슴을 깊숙하게 찌르는 가사만이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려주는 싱글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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