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Inside>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에서의 첫 조합 후 루시는 끊임없이 달려왔다. 기존 보컬이었던 이주혁이 '기프트'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자연스레 루시의 보컬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독특한 미성의 소유자였던 이주혁이 자리는 쉽게 메꿔지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슈퍼밴드 기존 참가였던 최상엽의 합류로 본격 데뷔의 신호를 알렸고, 봄의 <개화>, 여름의 <Panorama>, 가을의 <선잠>에 이어 <Inside>로 겨울의 녹아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INSIDE>
01. 히어로
02. 난로
03. OUTRO (뒤 돌아보면)
언뜻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가사를 루시의 색으로 잘 표현했다. '두 손의 빔', '하늘을 가르는 날개', '괴력의 힘' 등의 가사는 직설적이기에 오히려 부담스럽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진부한 사랑 노래의 뻔한 가사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인 선택이다. 루시의 곡 중 '개화'의 '동지섣달'이라는 가사나, '수박 깨러 가' 등의 노래 제목처럼 표현의 신선함을 차지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보인다.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가사에 오케스트라 급의 스트링 사운드가 쌓여 좋은 대비를 이룬다.
돋보이는 베이스 소리도 매력적이다. 바이올린이 내는 높은 음색에 베이스의 톤이 잘 묻어난다. 베이스를 주 악기로 다루는 루시의 프로듀서 조원상의 애착이 드러난다. 필자와 같이 음악을 잘 모르는 청자라도 베이스가 주는 무게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의문점은 '바이올린의 음색을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가?'이다 일반적인 밴드 사운드 구성에서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확실히 특이하며, 루시만이 가진 독보적인 색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루시의 곡들이 발매될수록 바이올린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의 한계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최상엽의 음색을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얼마나 더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가 프로듀서 조원상이 고민하는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엠비언스 팝'이라는 장르의 지향성은 '난로'에서 두드러진다. '히어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이 곡의 가장 큰 장점은 더 이상 이주혁이 생각나지 않게 하는 최상엽의 목소리이다. 어딘가 막혀있는 듯한 음색으로 시원한 소리를 내주니 듣는 청자의 입장으로서 그저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그밖에 종이 울리는 소리, 나무가 타는 소리 등을 도입부에 배치함으로써, 특정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도록 청자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머릿속에 그리도록 돕는다. 빨개진 코와 볼을 어루만지는 따듯한 집 안의 온기가 청자들을 반기며 보는 음악을 구현한다. 바이올린의 음색 역시 '히어로'보단 '난로'와 같은 곡에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트랙 'OUTRO (뒤돌아보면)'은 지브리 스튜디오, 그중에서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벤치마킹한 듯한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마지막 트랙에 대한 몰입을 돕는다.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악기와 소리가 쌓이며 눈보라가 펼쳐지는 설원을 눈 앞에 펼쳐 놓는다.
온기가 까마득히 보이는 날씨와 계절보다는, 봄의 방문을 알리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더욱 어울리는 싱글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