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침묵에는 이유가 있다. 더 많은 걸 바라지 말자.
뚜껑 없는 쓰레기통, 마치 나의 모습 같아
원필 (DAY6) - 휴지조각 중
나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에도 (생각해보니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 정보전달이 맞는 것 같다), 하소연을 들을 때에도, 내게 조언을 구할 때에도 나는 침묵한다. 이건 내 버릇이다. 꽤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하지만, 말은 거의 하지 않을 수 있다. 기껏해야 '응', '진짜?', '와' 정도가 나의 반응의 전부이다. 타인의 나의 얄팍한 생각과 지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싫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내 머릿속은 늘 복잡하다. 내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는 건지, 나의 선택 하나하나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쓸모없지만 늘 그런 생각들로 내 머릿속은 포화 상태다. 이런 상태의 나는 타인의 토로를 듣고 있기 어렵다. 아니, 듣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적당히 정제해 흘려보내는 것이 어렵다. 타인의 토로는 전부 다 나의 기억에 흡수된다. 자연스럽게 타인의 고민은 내 복잡한 머릿속 생각의 연장선이 된다. 관심 없는 상대의 토로는 조금이라도 집중해서 들으면 안 된다. 모조리, 모조리 흘려보내야 한다. 그것이 자연에서 발생한 소리인 듯 또는 백색소음인 듯 무감각하게 흘려보내야 한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무관심의 노출은 더 큰 비극을 불러온다. 나의 건조한 표정을 남이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다른 곳을 향해있던 토로는 곧 나를 향하게 된다. '뭐야 내 얘기 듣고 있어?', '왜 이렇게 관심이 없어?' 등으로. 그리고 남에게 쪼르르 달려가 나의 대한 서운함을 그대로 옮길 것이다.
그러니 남의 토로를 들을 땐 늘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눈에 힘을 꽉 주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들키지 않는다. 내가 말을 아낀다면, 상대방은 자연히 나의 표정에만 집중한 채로 말을 이어가게 된다. 내 표정을 본 상대가 나의 표정 연기에 완벽히 현혹됐다면 90% 이상은 성공이다. 이제 상대의 문장 끝맺음에만 신경을 쓰며 적당히 꼬리를 달아준다. '응', '진짜?', '와' 정도면 충분하다. 더 큰 다른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과장되게 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렇게 얘기를 들으며 오늘의 저녁 메뉴, 볼 영화, 취침 시간 정도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면 토로는 완벽히 끝나 있다. 자리를 마무리할 때, '아무것도 함부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오늘 나랑 얘기한 후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으면 좋겠어' 정도면 적당하다. 괜히 기억을 복기하거나 더 큰 표현을 하는 것은 '2장의 서막'이 될 수도 있으니 유의한다.
나는 누군가의 쓰레기통이 아니다. 나는 내 고민과 생각을 내 머릿속에만 떠올리는 걸로 만족한다. 남에게 토로를 듣고 있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내가 남에게 떠벌리는 건 더욱 최악이다. 다들 제 몫이 있듯이, 고민과 걱정도 자신의 몫이 있다. 함부로 이동하거나 분담하려고 하면 안 된다.
내가 머리란 쓰레기통의 뚜껑을 활짝 열고 누군가의 버려진 기분을 주워 담기 시작한다면 그 안은 금방 포화상태가 될 것이다. 이것들을 다 비워내지 않는 한 나는 내가 가진 우울과 고민 일부와 타인의 감정에 매몰되어 매우 높은 자살충동을 느낄 것이다. 과장이나 관용적 표현이 아니다.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우린 모두 다 고민과 걱정에 대한 적정한 할당량은 가지고 산다.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늘 할당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