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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Jul 10. 2021

내가 읽은 책으로 그녀들의 마음 훔치기!

강화도 북트립

제주도 여행이 끝난지는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아들과 둘만의 여행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상을 유지하며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다. 일은 차치하고라도 루틴으로 하는 건 모조리 해야 하는 성격이다. 그중에는 여행도 있다. 여행은 수많은 글감의 원천이기도 하고 살아가는 에너지원이기도 하니까.


이번 여행은 특별하다. 독서를 테마로 한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다. 무엇이든 새로운 건 무엇인고 싶은 호기심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이 여행이 계획된지는 꽤 오래전이다. 아무리 사소한 여행이라도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하다. 처음엔 이 여행을 가기는 무리였다. 아내는 나 혼자 잘 노는 걸 좋아하지 않는 까닭이다. 충분히 이해된다. 부부관계에선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끓어오르는 마음에 얼음 한 바가지 던져 식혀버렸다.


"여행이 떠나가네" 가수 김건모의 사랑이 떠나가네, 노랫말처럼 여행은 떠나갔다. 그런데 떠났던 여행이 다시 돌아왔다. 여행을 다시 되돌린 건 아내다. 강화도 여행이 계획된 날 아내는 동네 절친들과 즐거운 일정이 생겼다고 했다.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던진 얼음에 완전히 식어버린 줄 알았던 설렘은 활화산처럼 다시 타올랐다.


책방에서 책을 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을 주제로 대화하고 책에 둘러싸여 잠드는 경험, 혼자 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아들을 데려가기로 했다. 아들에게 어떤 여행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지만 별말 없이 간다고 했다. 아들에게 여행을 갈지 말지 판단하는 기준은 오고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1시간 이내면 흔쾌히 간다고 하지만 두 시간 넘어가면 고민한다. 차 멀리 때문이다. 강화도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사이로 아들 기준으로 적당히 갈만한 거리다.


여행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두근거린다. 나는 여행 친구들에게 하나를 제안했다. 첫째는 본인이 읽은 책 중에서 상대방의 취향을 저격하는 책을 골라 선물하기와 둘째는 1만 원 정도의 선물을 하나 사서 마니또 게임하기다. '노는 게 참 좋아~ 친구들 모여라~'가 딱 어울리는 나는 노는 생각은 기똥차게 잘한다. 함께 하는 여행 친구(사비나 님)가 수정 제안을 했다. "우리가 책방에 가니까 선물은 책으로 하면 어떨까요?"  독서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안 될 이유는 제로였다. 금상첨화였다.


집에 있는 책장에서 친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책을 하나씩 골랐다. 꽤 오래 독서모임을 해서 그들의 취향을 조금 안다. 시간과 관심의 힘이다. 글에서 인문학의 향기가 만 리까지 풍기는 독서 친구(마린 님)에게 줄 책으로 유현준 작가의 <공간이 만든 공간>을 선택했다. 유현준 작가는 건축과 공간에 관한 나의 안목을 넓혀주었다. 나는 그의 작품을 세 권 읽었는데 이 책은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다. 새로운 책을 볼 때마다 공간을 이해하는 나의 수준이 높아지는 느낌이 있다. 그녀도 그러길 바랐다.


곧 출간을 앞둔 친구(서라 님)에게는 <출판사 에디터가 알려주는 책 쓰기 기술>을 드렸다. 나는 이 책을 참고해 출간 기획서를 썼다. 첫 책도 그렇고 두 번째 책도 그랬다. 충분히 도움을 받았고 서라 님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불어 서라 님의 글 하나 그림 하나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사랑받기를 바랐다.


소설을 쓰는 사비나 작가님에게는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선물했다. 곧 이북으로 소설을 출간할 계획이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소설을 출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루키는 내가 좋아하고 한때는 꼭 닮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도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 책이 그럴 마음을 던지기도 했다.


사진작가(초이 님) 친구는 걷기를 좋아한다. 집에 걷기와 달리기에 관한 책이 몇 권 있다. 그중에서 내가 선택한 책은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걷기 책은 좀 느린 느낌이 든다.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누군가 나에게 추천했고 빌 브라이슨이 말하는 숲이 언젠가는 한 번쯤 걷거나 달리고 싶은 애팔래치아여서다. 걷는 그녀가 심장이 뛰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했다.


서점에서 와인을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은 무척 특별했다. 새 책 향기가 가득하지는 않았지만 보이는 곳곳에 책이 있는 것만으로도 설렘은 충만했다. 여행 친구들은 모두 메타버스에서 만났다. 라이프로깅인 블로그에서 알게 됐고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이었다. 디지털 세상을 뜻하는 메타버스는 기술이나 부의 관점에서 많이 해석하지만, 나는 메타버스가 인간관계를 조금 더 풍요롭고 멋지게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와 취향이 맞는, 말하자면 나와 싱크로율이 높은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글과 책으로 만난 사람들이니 책 하나로 서로에 대한 신뢰는 높아졌고 경계는 베를린 장벽처럼 허물어졌다. 나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메타버스의 쓸모는 참 좋았다. 물론 우리는 메타버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검증을 끝냈다. 메타버스가 선물한 사람을 현실 세계에서 풍요롭게 하려면 그들을 현실로 데려와야 한다. 포노 사피엔스에게도 그런 건 아니지만, 현실 세계를 더 오래 경험한 우리는 그랬다.


나는 친구들에게 다섯 권의 책을 받았다. 마린 작가님은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주셨다. 위대한 작가를 만나면 뿌듯하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에 소개된 책이고 우리가 읽을 다음 책이기도 하다. "당신은 다 계획이 있었군요!"


서라 작가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을 주셨다. 달리기를 하는 작가 하루키가 쓴 여행책이니 마음이 쏙 들었다. 그의 여행을 따라가며 설레고 싶다. 그녀의 또 다른 선물은 <군주의 겨울>이었다. 어리석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나를 단련하는 책을 좋아하는 내게 딱이다.


초이 작가님은 내게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을 선물했다. 내가 소설을 멈춘 걸 아는 까닭이다. 언젠가는 쓰겠지만,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좀 더 나은 글쟁이가 될 것이다. 김연수 작가 또한 달리는 사람이다. 그는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를 번역하기도 했다. 초이 작가님, 언젠가는 소설 완성하지 않겠어요? 기다려 주실 거지요?


사비나 작가님은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를 선물했다. 런던에서 뛰던 내가 상상됐다. 지금 당장이라도 런던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런던은 멋들어진 공원이 많아 러너들의 천국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제일 먼저 날아갈 곳이다.


꼬마 여행 친구와 오래 함께 할 시간은 별로 없었다. 아들의 친구는 없었던 까닭이다. 대신 다락방에서 아들과 함께 특별한 하룻밤을 보냈다. 이런 신박한 방이 있냐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던 아들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동막 해변에서 바다 구경을 하고 오락실에 들러 자동차 경주를 한 번씩 했다. 배가 고파 평양냉면 식당에서 한 그릇씩 뚝딱하고 음악이 사각사각 흐르는 감성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함께 함께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살포시 잠이 들었다. 가끔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웃었다.


맞다. 이걸 쓸까 말까 하다 쓴다. 초이 작가님께 드릴 책은 두 권을 선택했다. 빌 브라이슨의 책이 자신이 없어서였다. 준비한 책은 정지영 작가가 쓴 <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다>였다. 이 책은 안나푸르나 트레킹 책인데, 정지영 작가는 내게 안나푸르나를 심었다. 강화도 책방에 도착했더니 주옥 작가님이 있었다. 초이 작가님에게는 빌 브라이슨 책을 주옥 작가님에게는 이 책을 선물로 드렸다.  두 분 모두 괜찮으면 좋겠는데, 혹시라도 별로라면 다음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그때는 꼭 책으로 마음을 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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