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니까 꼭 걸으세요."
대회 전날 윤길이가 수시로 강조한 말이다. 반드시 기억했어야 했는데, 내 마음은 늘 간사하다. 너덜길 초반에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었으나, 조금씩 익숙해지자 어느 순간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돌길은 위험하지만 달리지 못할 길은 아니었다. 어떤 돌이 단단히 박혀 있고 어떤 돌이 밟으면 움직일 돌인지도 나름 짐작됐다. 이건 산에서, 특히 돌길에서 달리다 보면 저절로 쌓이는 직감이다.
위기는 방심과 함께 찾아온다. 갈증이 찾아왔다. 배낭 앞주머니에 있는 물통을 손으로 움켜쥐고 입을 가져다 대는 순간 돌에 미끄러지며 나는 공중부양했다. 주의력이 흐트러진 탓이다.
'으악, 조졌다'
순간적으로 왼팔이 얼굴을 감쌌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행동이다. 나는 '퍽'하는 소리와 함께 너덜길 위에 널브러졌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시계가 멈춘 것 같았다. 어쩌면 잠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여기저기 만져보니 얼굴은 아무 이상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왼쪽 팔과 양쪽 무릎은 돌에 긁혀 피가 나고 있었다. 얼마나 다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당장 그 순간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니까. 계속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천만다행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일어나는 순간 현기증이 났고 그때까지 대회를 하며 한 번도 떠올리지 않은 단어가 떠올랐다.
‘DNF’
DNF는 ‘Do not Finsh’의 약자로 CP마다 통과해야 하는 기록을 초과했을 때 주최 측에 의해 실격을 당하거나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풀코스를 포함해 40Km 이상 되는 대회를 스무 번 이상 참가했다. 힘든 대회도 많았지만 한 번도 DNF를 떠올리지 않았다. DNF는 포기이기도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용기이기도 하다. 몸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대회를 이어가면 부끄러움 이상의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할 때 어지러우면 멈추는 것은 철칙이다. 일단 앉을만한 자리를 찾았다. 적당한 곳에 앉아 가방을 풀었다. 몇 달 전 친구가 준 에너지젤과 또 다른 친구가 준 연양갱을 허겁지겁 먹고 물을 마셨다. 식염 포도당도 두 알을 털어 넣었다. 잠시나마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월의 한라산은 추웠기에 가만히 있으면 체온이 떨어져 더 큰 위험이 찾아온다. 여전히 어지럽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지만 조금 힘을 냈다. 일어나서 한 발짝 내디디며 걸었다. 축 처진 어깨를 끌고 발걸음을 옮기며 나에게 한 마디 쏘아붙였다.
‘7시간이 뭐라고? 고작 달리기일 뿐인데? 취미잖아? 너는 도대체 왜 그러냐?’
누군가의 인생에 고난이 닥쳐도 시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흐르고, 타인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가끔 인생이 그렇듯 달리기도 각자도생이다. 우거진 숲 속, 이끼 낀 돌무더기 위에서 내가 흩어진 영혼을 모으는 동안 뒤에서 달리던 선수 몇 명이 나를 추월했다.
몸에 들어간 에너지젤과 연양갱, 식염 포도당이 에너지로 바뀌면서 조금씩 몸과 마음이 회복됐다. 현기증과 두려움은 사라졌고 두 발은 조금씩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시계를 봤다. 도전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나를 질책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세상에 위기가 닥치면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을 당하는 법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온 인간사의 법칙이다. 돌무더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안 말 없는 발바닥은 쉼 없는 통증을 견뎌내고 있었다. 대회가 끝나면 발바닥을 위해 충분한 마사지와 편안한 신발을 선물하기로 약속했다.
짧은 내리막 달리기가 끝나고 다시 오르막이 나타났을 때 CP가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물통에 물을 채워주었다.
'다른 대회도 그럴까? 물까지 채워주는 자원 봉사자가 있을까? 이것은 제주도만의 정일까?‘
오래 머물 시간은 없었다. 여전히 시간은 흘렀고, 나는 도전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콜라, 포카리스웨트, 꿀물을 조금씩 마시고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7시간이라는 목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나지막한 언덕이 끝날 무렵 계단이 나를 맞이했다.
계단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의욕인지 욕심인지 둘 중 하나는 내 몸을 앞서고 말았다. 쥐의 기습공격은 뼈아팠다. 허벅지 끝까지 올라온 쥐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돌덩이처럼 굳어진 허벅지를 두드리며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했다. 쥐를 몰아내려 애썼지만, 쥐의 버티기도 만만치 않았다.
트랜스 제주의 목표 기록, 7시간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도전과 취미 사이에서 달리는 나는 도전의 끈을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다.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 잠시 뒤 쥐는 버틸만한 상황이 됐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두 손으로 허벅지를 밀어내며 온몸으로 계단을 올랐다. 7시간이 누군가에겐 하찮은 무엇이었지만, 나에겐 끝까지 놓고 싶지 않은 대단한 무엇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도 쉼 없이 가면 끝이 나온다. 멈추지만 않으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한다. 멈춘듯한 시간은 조금씩 흘렀고 어느 순간 계단은 끝을 보였고, 드디어 내리막이 나타났다. 편한 길을 기대했지만, 그건 나의 희망일 뿐 다시 너덜길이 시작됐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불평을 쏟아봤자 아무 소용없다.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빨리 어려움을 끝내는 길이다.
나는 여자 선수 한 명과 남자 선수 한 명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그들을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함께 달리고 싶었다. 내 옆에 누군가 함께 달리는 자체가 힘이 된다. 내가 한 번 그들이 한 번, 서로 추월하며 달리는 동안 결승선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끔 나는 시계를 보며 내가 도착할 시간을 계산했다.
드디어 돌무더기가 끝나고 내리막이 나왔다. 발바닥은 여전히 아팠지만, 무시하며 속도를 올렸다. 이런 평탄한 길이 이어지면 7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순간 불안감이 찾아왔다. 오르막이 남아 있었다. 나는 높은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50Km 즈음에서 만나는 오르막은 시작할 때 만나는 오르막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리막에서 생기는 발바닥 통증은 참아내면 되지만, 오르막에서 쥐와 마주할 때는 쥐가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 결국,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끝까지 내리막이길 바라던 내 마음과 달리 다시 오르막이 나타났고, 오르막은 계단으로 이어졌다. 그곳에 계단이 있는 이유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걷기가 됐다. 그것도 굼벵이의 속도로. 다시 7시간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달리던 두 사람은 내가 굼벵이가 된 사이 나를 추월했다.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용을 써도 될 상황이 아니었다. 꾸역꾸역 발걸음을 움직여 다시 평지가 됐을 즈음에야 나는 굼벵이에서 달리는 러너가 될 수 있었다.
산에서 완전히 벗어나 도로 위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발바닥은 뜨거웠지만, 결승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 7시간은 물 건너갔지만, 그것 때문에 페이스를 늦추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전자의 자세다.
결승선이 보이고 대회 자원봉사자가 힘을 보탰다. 아파도 달릴 수 있는 내리막이었다. 달릴 수 있는 만큼 속도를 올렸다. 허벅지의 고통은 사라졌다. 발바닥의 고통은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다리가 부지런을 떨면서 눈앞에 결승선이 나타났다. 7시간은 진작에 지났지만, 끝까지 달리고 싶었다. 누구와의 경쟁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시작한 도전을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그까짓 달리기가 나에겐 끝까지 특별한 무엇이었다. 마치 우승자가 된 것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7:09:11’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뿌듯하고 기뻤다. 허벅지가 뻐근한 만큼 성취감도 차올랐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청새치가 뭐길래 생명을 담보로 싸웠을까? 나에게 이까짓 달리기는 무엇일까?’
3년이 지난 지금도 되풀이하는 질문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결국 뼈만 남은 청새치를 잡은 노인의 마음은 어쩌면 비록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달린 내가 느낀 그 무엇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그까짓 달리기로 몽블랑에 오게 됐다. 한라산에서 넘어졌을 때 경기를 포기했다면 몽블랑에 오지도 못했고, 트레일 러닝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이 책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작은 판단 하나가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늘 놀랍다. 하지만 이건 결과적으로 잘 된 것이지, 넘어졌을 당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달렸다면 완주는커녕 다시는 달리지 못할 상황이 생겼을지 누구도 모를 일이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도 다짐하고 달리기를 막 시작하는 누군가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대회를 할 때 심각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스스로 경기를 멈추고 대회 주최 측이나 함께 달리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에서는 전화가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를 대비해 주최 측은 호각을 필수품으로 요구한다. 우리가 트레일러닝을 할 때 착용하는 러닝용 조끼에 호각이 달린 이유다.
안전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심각한 상황에선 누구에게라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함께 달리는 선수는 늘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부상자를 옆에 두고 달려가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트레일러닝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선함은 있을 거라 나는 믿는다.
2년이 지난 2023년, 트랜스 제주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UTMB 대회가 됐다. 트레일 러닝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찌감치 모집을 마감했다. 나는 대회를 신청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제주까지는 거리가 멀고 다른 대회에 비해 시간과 돈도 많이 든다. 당장 내년에 UTMB 몽블랑 대회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비슷한 날짜에 열리는 다른 좋은 대회도 있다. 내로라하는 대회가 모두 열리는 10월과 11월에 러너들은, 특히 트레일 러닝을 즐기는 러너들은 어떤 대회를 선택할지 자못 궁금하다.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회만 해도 여럿이다. 울주트레일 나인피크, 서울 100K, 트랜스 제주, 춘천 마라톤, JTBC 서울 마라톤.
트레일 러닝대회 하나, 마라톤 대회 하나를 선택해서 하나는 취미로 하나는 도전으로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