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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진문화연구소 Dec 09. 2021

뒤늦은 기록

#광진문화연구소 #나루실험실 #기획일기

‘장소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인데(박명화, 남상준, 2017), “우리가 공간을 더 잘 알게 되고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공간은 장소가 된다”(구동회 외, 2011; 박명화, 남상준, 2017에서 재인용). 그러나 특정 공간이나 장소에 대해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과 감정들을 갖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장소가 다른 이들에게는 ‘장소’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박명화, 남상준, 2017).


이때 “사람들이 장소에 대해 가지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애착”(Agnew, 1987; Cresswell, 2004; 송하인, 2021에서 재인용), “인간이 특정 환경에 묶이도록 만드는 감정적이며 경험적인 흔적”(송하인, 2021), 즉 개인 혹은 집단이 장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장소감’이라고 할 수 있다. 장소에 대해 특정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개인들에게 장소가 적극적인 상호작용 상대임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박명화, 남상준(2017)은 장소가 인간의 정체성 형성의 필수적 토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지역에 대한 기록, 그리고 지역문화는 결국 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장소감’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나루 실험실에서 시장에 대해 기록하기로 결심했던 이유도(물론 자양5동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일종의 ‘장소감’ 때문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장소감들은 평소 동네를 다닐 때보다
동네의 일부가 없어지거나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었을 때 뚜렷하게 인식     


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장소감들은 평소 동네를 다닐 때보다 동네의 일부가 없어지거나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었을 때 뚜렷하게 인식되는 것 같다. 내가 광진구에서 살아온 이십여년동안 크게 변한 것 없던 시장의 일부가 재건축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 받았던 순간을 되새기며, 나는 나루 실험실에서 ‘동네 골목 시장’을 기록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시장을 더 자주 가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게 그렇게 아쉽고 서운했다. 평소에는 내 마음 한 켠에 그리 크게 자리 잡고 있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어떤 곳들은 없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그렇게 아쉽고, 서운하고, 슬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이런저런 감정들을 담아 재건축으로 사라진 시장의 일부와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동네 골목 시장을 기록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기록의 결과물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었는데, 얼마 전 나루 실험실 기획회의가 내 작업의 최종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문 대리님을 포함한 나루실험실의 구성원들은 내 계획의 시작이 되었던 그 사라진 시장부터 기록해보는 것이 어떤지 조언해주었다.   

 

그 조언에서 시작해 나는 우리 동네 골목 시장에 대한 ‘뒤늦은 기록’을 하고 있다. 동네 골목 시장을 둘러싸고 이제는 사라진 장소, 경험 등에 대한 한발 늦은 아쉬움에 대한 기록들이다. 사실, 아직은 건재한 동네 골목 시장이라고 해서 항상 그 모습, 그 경험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나루 실험실 회의가 끝나고, 배가 고파 자주 가던 시장의 한 곱창집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니 글쎄 곱창집이 소리 소문 없이 다른 가게로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제 나 곱창 어디서 먹지? 그곳의 곱창은 삶에 지친 내 육신과 영혼을 주기적으로 위로해주던 음식, 그야말로 ‘소울푸드’였다. 더군다나 그 오래된 곱창집 벽 한쪽에는 오고 가는 손님들이 추억 한 줄 한 줄 적어 놓은 메모지들이 한가득 붙어있었는데, 그 벽이 흰색 페인트로 깔끔하게 덮여 있는 모습을 보니 왜 그리 아쉽고 서운한지 모르겠다. 그 아쉬움과 서운함을 위로 받을 곳 없으니 나 혼자 기록이라도 해봐야겠다.      


이번이 마지막 나루실험실 기획일기라고 한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작업의 방향이 정해져서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지막이라도 해보고 싶은게 정해져 다행이고 감사하다. 작은 시작이겠지만 이 뒤늦은 기록이 시장에 대해 사람들이 경험했을, 혹은 경험하고 있을 감정과 의미를, 그것이 없어지기 전에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기록을 통해 시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었음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 홍)


참고문헌

박명화, 남상준 (2017). 일상공간에서의 어린이의 장소감.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 25(2), 41-57. 
송하인 (2021). 도시 속 자연마을 거주민의 장소감 비교연구: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마을 어른들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지리학회지, 10(1), 6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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