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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Aug 09. 2023

그해, 섣부름

첫사랑

그해, 섣부름

 

 나는 여전히 봄이 지나고 나서야 불광천을 찾아 철 지나 떨어진 벚잎들을 바라본다. 응암역 출구를 나와 조금 내려가면 있는 모퉁이에서 네 키가 이정도였나 하며 담벼락을 보고 눅눅한 가늠을 한다. 너와 내가 우리였던 때로 다시, 그렇다고 이미 과거가 되었고 이제는 점차 대과거가 되어가는 그때의 너와 나를 다시 우리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여태 살면서 가장 분홍색이었던 스물의 초입에 찾아온 너는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까지 나의 유일한 서정 혹은 문학. 네가 수면 위에 떠오를 때마다 나는 신발상자에서 빈소라를 꺼내 귀에 댄다.

 

 우리는 같은 대학에 다녔다 학과는 달랐지만, 타과 학생회끼리 하는 대면식 술자리에서 우리는 만났다. 첫눈에 반한다는 그런 속설은 믿지 않는 편이었는데, 너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기숙사에 있다가 나간 터라 편한 옷차림으로 뒤늦게 갔었다. 조금 꾸미고 갈 걸 후회했었지. 술을 못하는 이유인가 다들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너는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지. 나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떤 다짐을 했었다.

 

 우리는 서로 언어를 다루는 과목을 배운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 접점이 있어 친해졌지만, 그건 이유만으로 서술하기엔 너는 너무 예뻤다. 대학교 새내기와 캠퍼스 라이프 혹은 술자리라는 단어들이 너를 더욱 난분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너를 만나면서 들어본 적만 있는 타국의 낯선 언어를 조금씩 배우기도 했다. 네가 다루는 언어로 사랑한다고 언젠가는 말해주고 싶었으니까. 그쯤에 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타국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는지 듣고 여행 다니며 본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결국 네 앞에 돌아와 서서 나만의 언어로 사랑한다고 싶었다. 그렇게 섣부른 마음이 벌써부터 앞서나갔었지. 북유럽에 갔을 때, 눈 끝에 피어나 너풀거리는 오로라를 보고 너를 생각했었다. 조용히 혼자 나는 너를 오로라 해라고 읊조렸다. 세상에는 많은 사랑의 은유가 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오늘 참 달이 밝네요나 알랭드 보통의 나는 너를 마시멜로해라던지 혹은 이병률의 삿포로에 갈까요 그런 은유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있을까 하다가 너를 생각하면 딱 그랬다.

 

 난분분하게 날리는 벚잎들 사이로 감정들은 불쑥 튀어나와 제멋대로 섣부르게 발아하기 시작했다. 나는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우리는 제법 키 차이도 났고, 서로 죽이 잘 맞았다. 그렇게 몇 번을 만나다가 합정역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그때 살풋 맞잡은 너의 손을 잊을 수가 없다. 취기인지 아니면 봄이지만 꽃샘추위덕에 추운 바람 탓인지 샛말갛게 달아오른 너의 양볼이 그렇게도 예쁠 수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바람은 이토록 추운데 우리만 이토록 말갛게 웃었다.

 

 잠에서 일어날 때마다 창문에 비추는 햇볕이 너의 희고 마른 손가락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모든 것에 너를 대입해 너를 생각하고 사랑했었다. 대학생이라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우리는 잘 먹고 잘 놀았다. 형편이 어려울 때면 같이 시장에 가서, 철 지난 과일을 흥정하며 사서 서로의 입안에 넣어주는 일을 좋아했다. 끈적이는 과즙이 정말 달고, 우리는 더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가난을 달래는 일도 제법 잘했다.

 

 우리는 여름방학을 맞이해 강릉을 간 적이 있었다. 동해는 맑고 예뻤으며, 해풍에 날리는 너의 머릿결엔 좋은 향이 풍겼다. 우리는 맨발로 모래사장을 밟으며 걸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는 문장을 어떤 소설가가 적은 적이 있다. 그 문장이 자꾸 맴돌았다. 너는 쭈그려 앉아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를 모아 성을 만들었는데 나는 그 성에 너와 함께 들어가 살고 싶었다. 그게 내가 너와 함께 강릉에서 생각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동시에 이별은 저런 거구나 생각했다. 그게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모래성이 사라진 자리에 네 이름과 내 이름을 자꾸만 손으로 적었다.

 

 길게 이어진 연안을 맨발로 걸으며 여태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을 가늠해 보다 함께 할 수 있는 불안정한 미래를 점쳐보기도 했었다. 그 날 너는 강릉에서 돌아오며 해변가에 밀려온 빈 소라 하나를 나에게 쥐여줬었다.  

 

  너와 함께 보낸 더운 몇 번의 절기는 우리만의 다정을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너를 그늘 안쪽으로 스리슬쩍 밀어 넣고 아닌 척 네 쪽으로 부채질을 하며, 흰 피부에 흘러내리는 땀이 신경쓰였다. 이것이 이 계절에 사랑을 하는 방법이라는 듯이 쓰르라미는 높은 음계로 울어댔고, 골목은 점차 초록으로 선명해졌다. 우리는 장마가 오면, 입을 벌린 채로 자주 방에 누워 있었지 서로의 입안에 철지난 자두 한 조각씩 넣어주며 장마가 길어지길 바랐다. 아직 땅이 완전히 굳지도 않아, 비가 오면 무너질 것이 분명했는데 나는 섣부르게도 장마가 오길 바랐다.

 

 장마전선이 생각보다 길어지면, 우리는 자취방 안에만 있으면서 이게 최후의 도피처라고 말하며 웃어대는 일도 잦았다. 널어둔 투명한 반팔 티셔츠는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장마가 없는 우리가 있는 장소의 반대편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반대의 장소에서 편지를 부치면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쯤 도착하게 될까 하며 우리는 미리 사랑을 당겨서 속삭이기도 했지 장마가 끝나면 더 무르익고 일렁이고 뚜렷해지는 것들이 선명했다. 그 때, 여름의 끝자락 대서(大暑)에서 우리가 그랬었다. 우는 것을 다정으로 포장하는 일을 나는 잘도 좋아했다. 우는 것도 울음 소리도 모두 사랑의 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문학을 전공하는 내가 강릉에서 우리의 불안정한 미래를 점쳐본 탓인지, 혹은 교정되지 않은 치열로 발음해서인지 사랑이 비틀거려서 그런지 소설의 복선처럼 우리의 연은 끝을 보았다. 순식간에 장마가 끝났고, 여름이 져버렸다. 아무렇지 않았다. 바쁘게 살았고,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갑자기 꿈에서 네가 나왔는데 강릉이었다. 여전히 너는 내가 좋아했던 웃음을 지어보였고,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너에게 가닿으면 잘 지냈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너와 그 해변을 걷다가 꿈에서 깼다. 이상하게도 몸에서 식은땀이 났고, 베개는 젖어있었다. 그 날 혼자 강릉에 갔다. 파도를 들춰보면 자꾸만 웃자라는 마음들이 가득히 파닥거렸다. 나는 맨발 사이로 올라오는 모래처럼 울컥였다. 파도를 보고 있으면 너와 함께 있었을 때는 파도는 우리한테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 파도에 잠겨 죽어도 좋을 것 같았는데, 멀어져가는 파도를 끌어당겨 덮고 자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꿈속에서 본 너의 손짓이 어서 오라는 손짓이 아닌 이제는 잘 지내라며 잘 가라는 손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의 표정은 꿈속에서조차 슬퍼보였으니까.

 

 집으로 돌아와서는 네가 쥐여줬던 빈소라를 항상 꺼냈다. 귀에 대면 바다 소리가 들렸는데, 한참을 대고 있으면 붙잡고 붙잡아도 옅어지던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나는 해야만했다. 겹치는 지인도 없고, 연락처도 삭제하고, SNS도 끊어져서 이제 우리는 서로의 소식을 확인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군대를 다녀왔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봄만 되면 불광천을 찾는다. 행여나 네가 우리가 걸었던 이 길을 산책하지 않을까 하며 걷는다. 올해 봄에는 걷다가 멀리서 네가 보여서 심장이 반죽처럼 흐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네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서서 그 사람을 지켜만 봤었다. 스물의 초입에 찾아온 너에게 줬던 것처럼 나는 제작년에도, 작년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벚꽃을 주워 말려서 책갈피를 만들었다. 그 해의 봄을 기억하면서 너를 잊고 싶지 않았음에 기인한 행동들이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습관이 되었다.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이제 우리라고 불릴 수 없겠지만, 우리는 생애 몇 번이나 만나게 될까. 너를 처음 봤을 때 얹혔던 숙취가 나는 여전히 가시질 않는다. 여전히 꿈에는 종종 오로라가 첫 데이트 때 네가 입었던 블라우스처럼 너울대. 언젠가 너에게 썼던 편지의 말미에 나는 시인이 될테니 너는 그 안의 시가 되어달라고 적었던 적이 있었지. 있잖아, 나는 여전히 문학을 하고 시를 쓴다. 시인이 된다면 꼭 시집을 사서 읽겠다는 너의 말에 나는 아직도 저당잡혀 시를 쓰고 있다. 행여나 필명을 사용하면 네가 알아먹지 못 할까봐 실명으로 시를 쓴다. 너를 처음 봤을 때 했던 다짐이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 네 앞에서 시인이 되고자 마음 먹었던 때를 지나 현재 여기까지 당도하는 너는 나의 첫, 혹은 나의 서정이자 문학.


 첫사랑과 끝사랑은 오랫동안은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한없이 붉어지던 나의 귀와 그해, 마지막을 암시하듯 울음을 삼킨 너의 샛말갛고 붉게 부풀어오른 너의 양볼이 크게 다르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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