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시라카와고' 마을에서 먹은 초콜릿 디저트
나고야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약 두 시간 반을 달리면 ‘시라카와고’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산타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시라카와고를 가기로 결심한 건 눈 때문이었다. 눈이 다소 많이 내린다고 알려진 그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매년 관광객들의 발이 끊이질 않고, 관광객 대다수가 눈 내린 시라카와고를 보기 위해 겨울에 방문한다. 적설량이 많은 탓에 마을의 지붕은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하는 과자의 집처럼 큰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눈 쌓임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마을이라곤 하지만 집마다 사람이 거주하진 않는다. 말 그대로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방문객들도 그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떴을 땐 바깥은 이미 하양이었다. 처음엔 작은 눈송이가 나무에만 드문드문 붙어 있더니 곧 마을 전체에 하얀 가루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버스는 곧 종점에 도착했다. 고로케가 그려진 현수막, 아이스크림 모형이 반듯이 세워진 가게, 생필품과 과자들이 오묘하게 담겨 있던 기념품 가게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기는 찼지만 바람은 불지 않는 게 하늘이 곧 눈을 뿌릴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찾은 K 카페 역시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여럿이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과 아늑한 방 형태의 좌석, 카운터 맞은편 긴 테이블에는 피아노 건반처럼 사이사이마다 사람들이 있었다. 점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나도 그들 틈 어딘가에 흘긋 앉았다. 창문 너머 눈과 산, 나무와 사람들, 집과 골목길 같은 말 없는 풍경이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가운 겨울을 바라보는 동안 따듯한 생각들이 몰려왔다.
초콜릿. 추운 날에는 초콜릿케이크가 생각난다. 묵직한 마틸다 케이크라든지, 마시멜로가 둥둥 떠다니는 핫초코라든지, 오독오독 은빛 포장지 벗겨가며 먹는 초콜릿이라든지. 초콜릿의 그 개구진 모습이 떠오른다. ‘나무 케이크’ 또는 ‘나이테 케이크’라는 수식어를 갖는 바움쿠헨은 독일 디저트 중 하나이다. 시폰케이크처럼 케이크 중앙 부분이 뻥 뚫린 모습이지만 그를 가르면 나이테처럼 주름진 형상이 나타난다. 모나거나 각진 곳 하나 없는, 꼭짓점 하나 가지지 않은 무해한 케이크. 성숙한 파인애플 같기도 거대한 링도너츠 같기도 한. 어떻게든 만나고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을 끝없는 원의 일상. 초콜릿은 접시에 둔탁하게 미끄러진다. 제법 도톰한 흔적을 남기고는 따듯하고 치밀한 단어를 쏟는다. 시폰케이크보단 무겁고 파운드케이크보단 가벼운, 정리할 수 없는 그런 애매모호함에 계속 포크 질을 하게 된다.
초콜릿 바움쿠헨을 먹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을 때 발목까지 쌓인 눈 위를 한 가족이 차례대로 걷고 있었다. 모으고 가르고 눈사람을 만들며 눈을 가만두지 못하는, 눈을 사랑하는 순간들을 바라보니 바움쿠헨의 나이테처럼 내 여행에도 궤적이 생겼다. 어느 순간 한 외국인이 내 옆에 앉았다. 점원에게 내 초콜릿 바움쿠헨을 가리키며 ‘same’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와 나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어색하지만 모남 없는 둥근 웃음을 주고받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포크로 바움쿠헨을 가른다. 작게 잘린 바움쿠헨은 책의 펼침 면처럼 겹겹이 두껍게 쌓여 있다. 조각난 바움쿠헨 뒤로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간다. 모두 자신만의 여행에서의 나이테를 만들며.
시라카와고를 걸었던 날, 독감에 걸렸다. 나고야역으로 되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몸이 방망이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으슬으슬하더니 그날 밤 고열과 두통에 시달렸다. 물에 젖은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가며 새벽 내내 열을 내리는 동안 시라카와고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겹겹이 계속 떠올랐다. 전망대를 오르며 가족들을 떠올렸던 것, 포크에 묻은 초콜릿을 혀로 가볍게 미끄러뜨린 것, 지붕마다 매달린 고드름이 녹는 물소리를 들은 것, 사람들의 말소리가 달리는 풍경처럼 덜컹덜컹 지나갔다.
나고야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의 라멘집에서 뜨거운 라멘을 후루룩 먹었다. 콜라도 마시고 국물까지 싹 비웠다. 배부름에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계산하려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영수증 하나를 꺼냈다. K 카페의 영수증이었다. 서랍에서 오랜만에 꺼낸 티셔츠처럼 영수증 곳곳엔 불규칙한 선들이 잔뜩 그어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초콜릿 바움쿠헨이 떠올랐다. 영수증을 만지며 내가 머문 시간을 곱게 폈다. 구겨진 영수증을 반듯하게 펼 때마다 잊을 만했던 내 지난 여행의 기억들이 곱게 다림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