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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Oct 06. 2023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짧은 머리에 이지적인 외모 그리고 유독 불붙인 담배를 손가락에 끼고 있는 사진이 많은 프랑수아즈 사강은 1935년 프랑수아즈 쿠아레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사강이라는 성(姓)은 그녀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인물인 '사강'에서 따온 것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할 때 '쿠아레'라는 가족의 성을 가지고는 활동하지 말라는 것을 받아들여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만 여덟 살인 1954년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고 바로 '사강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한 반향을 일으키며 성공적인 문인 생활을 하였지만 사생활적으로는 그 작품의 주인공 세실의 그 후의 이야기라고 여겨질 만큼 질곡이 많았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은 차치하고서라도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할 뻔했던 교통사고의 원인이었던 스피드에 광적으로 몰입하여 각종 스포츠카를 섭렵하고 약물과 마약중독뿐만 아니라 도박에까지 손대는 등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도 작품 활동에는 성실히 임하여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 시나리오, 에세이, 시등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여 20편의 장편소설과 3편의 단편소설집 등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삶은 그녀가 1995년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을 당시 했던 말로 응축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제목으로도 유명한 이 말은 바로 오늘 소개할 작품의 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면서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짧지만 강렬한 코멘트에 그녀의 삶. 예술이 모두 녹아있다고 여겨지는데, 프랑수아즈 사강이 어떤 시대에 어떤 작품을 섰으며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간략하게 알아보자.


1935년 프랑스 남서부 카자르크 태생의 그녀는 1951년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하여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했으나 "나는 영혼의 것에 관심이 없었다"라는 노골적인 유물론적 견지를 주장하며 퇴학당한다. 1954년 소르본 대학의 첫해 시험에서 낙제를 하고 여름에 요트를 타다 사고를 당해 병상에서 완성한 '슬픔이여 안녕'으로 우리나라 표현대로라면 약관의 나이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신드롬을 일으키게 된다.


2차대전 전후 그녀의 다분히 개인적 감수성에 공을 들인 작품들은 사람들의 메마른 감정에 단비를 뿌렸다.

하지만 독점자본주의 체제하의 파멸적 전체주의(파시즘) 이후 신자유주의의 각박한 세상으로 변해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 계열의 철학적, 정치적, 문화적 요구가 높아지며 프랑스와 서방세계에서는 이른바 '68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운동은 1968년에 일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유명한 알베르 카뮈와 장 폴 샤르트르의 결별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전후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일로 그 방향성의 문제이지 사회참여적 예술은 지금도 그렇지만 사회문화적으로 하나의 큰 물줄기와 같은 현상이었다.

1968년 '68혁명'당시의 프랑스 파리의 시위대의 모습

이런 시기에 프랑수아즈 사강은 등단 시기의 기대와는 달리 온갖 기행과 부르주아적 예술 활동으로 문단의 평가는 점점 박해 지기 시작했다.

특히, 동유럽의 사실주의적 영향 아래 있었던 좌파 문인들뿐만 아니라 문학의 사회개혁을 위한 앙가주망을 강조했던 우익의 진보 성향의 문인들까지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은 가치 없는 멜로드라마로 폄하했다.

이런 와중에도 그녀의 문학은 오로지 한길 마르셀 프로스트의 영향하에 인간 의식 흐름을 찾아 좀 더 나은 자기만족의 길이었다.(물론 다분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이렇게 전후 인간성 복구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모순적 상황 속에서 그녀만의 예술을 추구했던 점에 있어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었지만 여러 기행과 문단의 박한 평가는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있다.


그럼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그녀가 스물네 살이었던 1959년 출간했다고 하는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보자.


먼저 프랑수아즈 사강은 제목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의 거대 담론을 비웃는듯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에드워드 올비가 작품 제목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원래는  ‘빅 배드 울프’(나쁜 큰 늑대)였다고 한다. 이는 잘 알려진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가 그 배경으로 허술하게 집을 지은 돼지 두 마리를 집어삼킨 늑대는 셋째 돼지마저 잡아먹으려 하나 셋째가 튼튼한 집을 지어둔 터라 실패하고 마는 상황을 노래하는 노랫말에 '빅 배드 울프'를 '버지니아 울프'로 바꾸어 달며 당시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희곡을 섰을 듯이, 프랑수아즈 사강 역시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브람스'(물론 브람스가 자신보다 14살 연상이었던 스승의 배우자를 사모했듯이 이 소설도 14살여(女) 연상 남(男) 연하의 커플이 등장한다)를 굳이 좋아하느냐고 묻고 음악회에 폴을 초대하는 시몽과 동시간 라디오에서 나오는 브람스의 음악회 실황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채널로 돌려버리는 로제의 행동에서 정작 개개인의 행복에 대해 무관심하며 거대 이데올로기 투쟁을 통해 단 한 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투쟁하는 대다수의 프랑스 시민을 조롱하는 듯하다.(브람스의 음악에는 정작 관심이 없고 왠지 모르게 고상한 브람스의 음악과 연주회 분위기 등에 부하뇌동적으로 행동하는 프랑스인들의 가식을 지적)

소설의 주 무대인 프랑스 파리(출처: pixabay.com)

그렇게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그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젊은 시절 한 번의 이혼을 겪고 연상의 로제와 6년째 연애 중인 서른아홉 살의 주인공 여성 폴.

그녀는 인테리어 업체에 근무하며 물류 사업을 하는 로제와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나 응당 그 정도의 나이와 연애 기간이 되면 찾아오는 권태에 삶은 들큼하지만 미지근한 수프처럼 늘어져간다.

특히, 간간이 젊은 여성과의 짧은 만남을 거짓으로 일관하며 한눈을 파는 로제의 행동에 폴은 지쳐간다는 감정마저 드는 즈음이다.


이때 업무차 미국 배우 출신의 부자인 테레사를 알게 되고 인테리어 사업상 의뢰를 받은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녀의 집에서 클럽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스물다섯 살의 젊고 매력적인 남성 시몽을 클라이언트의 아들로 다시금 만나게 되고, 시몽의 적극적인 구애로 둘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하지만 열네 살이라는 나이차와 육 년간의 연애를 통해 거의 배우자이자 반려자로 서로에게 각인되어 있던 로제와 자신의 마음을 생각해 보니 젊은 치기와도 같은 시몽의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로제의 외도와 그에 따르는 박탈감과 우울함에 점차 시몽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이윽고 폴과 시몽은 동거를 시작하고 로제에게는 이별을 고하게 된다.

한 달 정도 되는 헤어짐의 단계와 새로운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한 달간의 이별을 통해 폴과 로제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물리적. 정신적인 배우자가 서로였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토록 어렵게 서로를 마음을 확인하고 돌아왔음에도 로제의 마지막 대사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위 말은 그 사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돌아왔지만 결국엔 두 달 전 권태가 절정인 상황으로 돌아온 것이다. 도파민 가득한 불안정보다는 고단한 일상으로의 도피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가져가 주는 자기 기만적 만족감에 서서히 모든 것에 무뎌져가며 죽음이라는 파멸을 향해가는 고장 난 열차가 우리 인간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 짓는다.


당시의 치열했던 이념적 대립 속에 인간 한 개인으로서의 문제에 집중을 넘어 완전한 몰입을 통해 나온 작품이라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마르셀 프루스트야 프랑스 혁명 이후 1차 대전까지의 약 100여 년간의 평화의 시대라고 일컬은 '벨 에포크'시대의 작품이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의 시대는 그보다는 모든 면에서 어지럽던 시대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카뮈의 '부조리'이든, 샤르트르의 '구토'이든 인간존재의 필연적 문제인 실존의 불안을 카뮈가 지적했듯이 '반항'이라는 능동적인 극복이 아닌 그 부조리함에 다시금 매몰시키고는 일상이라는 익숙한 불편함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우리네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문학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프랑수아즈 사강이 의도했던 점이 이것일지 모르겠다.

개개인으로서의 인간 몰락을 방치하며 거대 담론으로 한방에 인간소외 문제를 해결하겠다?

너희들은 모두 위선자요 자기기만 중독인 것이다.

너희들은 좋아하지도 않는 브람스 음악을 듣고 마치 삶의 고상한 승리자가 된듯하지만 정작 브람스에 대해 단 일의 관심도 즐김도 없는 위선덩어리들이라는 일침. 개인적으로 그렇게 이 작품을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다.(그래야만 약관의 나이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천재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70여 년 전 우리는 6.25이후 이념 대립과 경제적 자립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 일상의 부조리에서 오는 권태와 다시금 그 일상의 부조리에 매몰시킬 수밖에 없는 개인의 무기력함에 전혀 관심을 가질 수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 시절 그런 문학을 할 수 있었던 프랑스라는 국가의 선진성과 여유 그리고 시대적 담론을 뛰어넘어 오롯이 개인의 문제에 집중했던 사강의 예술적 고집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1959년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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