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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Sep 27. 2023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소설가 한강의 외모만 본다면(선입견이나 편견이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그녀가 주는 여린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왠지 가슴 저미는 연애소설을 쓸 것 같지만 맨부커상으로 그녀의 입지를 만든 작품 '채식주의자',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제주4.3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사회성 짙은 강한 힘이 있는 소설을 쓰고 있다.


물론 한강 작가의 글에는 시(詩) 적이며 때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풍의 표현이 넘쳐 한편의 아름다운 서사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내용의 사회성이나 문제 제기성 등을 감안해 본다면 아주 묘한 힘이 있는 작가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볼 것이다.

우선 오늘 소개할 '작별하지 않는다'의 모티브가 되는 제주4.3사건은 광주민주화운동과는 다르게 그 명예 회복이 더딘 것이 사실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 항쟁의 주체가 군사쿠데타 세력에 저항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이었던데 반해 제주4.3사건 무장봉기 세력의 주체가 부인할 수 없는 공산주의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한 간에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마을 이름이 강원도 정선에 있는데 그 지명이 '김달삼모가지잘린골'이라고 한다.

김달삼은 제주4.3사건 당시 조선 인민유격대 예하 '제주도인민유격대'를 조직하여 총사령관(남로당 제주도당위원회 회장 겸임)에 올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제주도에서 4월 3일 350여 명의 무장 폭도를 이끌고 제주 경찰서 12곳을 습격했던 사건을 시초로 하여 좌익과 우익 간에 과도한 무력충돌로 인해 특히 좌익세력과 그들의 가족 및 무고한 제주도민 약 3만여 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약 3년간을 생각해 보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주의가 연합군의 원자폭탄 공격에 항복을 했다.

당시 일본에는 가장 가까운 제주도에서 여러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가있었다.

그들 중에 지식인들의 많은 사람들이 독점 자본주의의 폐허로 조국이 식민지가 되어 수탈되는 상황에 개탄 자본주의 체제의 비판적 대안인 공산주의 사상에 열광하였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조국이자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오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서 그 일본의 제국주의에 이를 갈았으니 제주도는 공산주의로 쉽게 물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공산주의를 이해하고 공부한 강성의 공산주의자들 그렇게 많았는가이다.

글로 사상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비문맹을 전제로 생각해 보면 해방 당시 80%에 육박하던 조선의 문맹률을 봤을 때 미 군정이 보듯이 제주도 전체가 소련의 공산주의 사상에 전도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의 남한 정부 수립을 방해하는 공작은 맞지만 당시 제주도 도민 약 30만 명의 10%인 3만 명이 희생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간 지식인 공산주의 세력이 과연 그렇게 많았을까?

그리고 그들을 진압하러 갔던 '서북청년단'도 북한 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에게 재산을 몰수 당하고 일부는 부르주아 세력으로 처단되었던 말 그대로 공산주의 세력에 이를 가는 이들로 구성되었던 점도 비극을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북한 지역에서 반동으로 몰릴 이들 중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경찰이나 '서북청년단'으로 글을 모르는 사람은 군대로 보냈다고 하는데 당시 자본이나 토지를 소유한 이들 중에도 글을 잘 모르는 이가 있었던 와중에 진정으로 제주에서 마르크스의 사상과 소련의 스탈린주의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던 이가 얼마나 있었을까? 어려운 사정에 그저 부르주아가 착취하고 있다는 선동에 처자식 굶주리지 말게 해달라는 애원의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던 무고한 시민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나오지 않던가 전쟁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공산주의 사상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서북청년단의 죽창에 죽어가야만 하는지)


아무튼 제주4.3사건으로 이름 없이 수많은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죽어나갔지만 본명은 이승진 공산주의자였던 장인의 필명 김달삼으로 당시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죽어서 북한의 애국 열사능에 "남조선 혁명가, 1926년 5월 10일 생, 1950년 9월 30일 전사"로 봉인되어 이름을 남긴 '김달삼'만이 북한에서 그 죽음을 기억할 뿐이다.


제주 4.3사건의 주동자 공산주의자 김달삼(左) 제주 4.3사건 당시의 사진자료(右)

사설이 길었지만 하고 싶은 말의 반도 못한 것 같다.

위의 글에 요지는 주동자는 몇 되지 않았지만 공산주의 확산을 두려워한 미 군정과 공산주의를 너무나 혐오했던 '서북청년단'의 폭주로 인하여 너무 많은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아무튼 제주 4.3사건에 관한 포스팅이 아니고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글이기에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해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설 속의 화자 경하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소설을 쓰고 같은 악몽(바닷가에 검은 나무들이 비석처럼 서있는데 밀물이 밀려와 무덤가를 덮쳐 땅에 묻혀있는 시신의 유골이 소실될까 어찌할 바르 모르고 깨는 꿈)을 꾸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소설가 자신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모티브로 한 '소년이 온다'를 펴낸 후 비슷한 시기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였기에 어느 정도는 작가 한강 자신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의 꿈 이야기를 사진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연출가이며 예전 경하가 잡지사 근무 시절부터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고 있는 인선에게 말하자 인선은 그것을 프로젝트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것을 약속한다.

경하는 경하 나름으로 인선은 고향인 제주도에서 치매로 고생하는 엄마의 간병을 위해 낙향한 대로 서로의 삶에 바빠 이제 일 년에 한 번 정도 연락하는 사이로 지낸다.

그리고 경하는 인선과 약속했던 프로젝트는 이제 접고 다음을 기약하자는 전화를 인선에게 하지만 인선은 현재 자신이 진행한 부분이 있기에 끝까지 함께 하자고 하나 경하의 반응은 미덥지 않다.


그러던 중 인선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방문을 해주겠냐는 부탁을 받고 경하는 병원으로 향한다. 별의별 생각을 하고 병원에 당도했는데 인선은 제주도에서 생계를 위해 하던 목공예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게 되고 손가락 접합을 위해 일주일간 매 3분 단위로 주삿바늘로 접합부위를 찌르는 치료를 받게 되어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던 앵무새 '아마'에게 물과 모이를 주기 위해 당장에 제주도의 인선의 집으로 갈 것을 부탁받는다.(앵무새 아마가 물을 안 먹은 지 3일째 당일 수분 섭취를 못하면 필시 죽을 것이기에 당장의 제주도행을 부탁받은 것이다)


예전에 한 번 가본 기억을 더듬어 그날로 인선의 제주도 집으로 가지만 폭설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겨우겨우 도착하지만 앵무새를 이미 죽어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곳에서 제주 4.3사건의 피해자였던 인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들.

인선이 준비하였던 제주 4.3 피해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접하면서 왠지 자신의 꿈과 제주4.3사건 그리고 준비 중이었던 나무 목공 작업까지 그 하나하나의 숨결을 찾아가고 또 하나의 비극의 민낯과 대면하게 되는 경하.


인선의 아버지와 어미니의 가족들의 인내하기 힘들었던 고통 그리고 제주4.3사건에 대한 비극적 이야기가 상당한 분량이지만 너무 세세하게 소개하지는 않겠다. 지어낸 소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당시 정말로 있었던 사실에 대한 르포로 여겨지기에(그보다 더한 이야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확신도 있다) 직접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지금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 제주 (출처:pixabay.com)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소설가 한강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역사적 과오 또는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건에 대한 앙가주망문학(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에 의해 주창된 문학 사상으로 사회참여적 문학을 지칭한다)에 정통한 작가인지를 확연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제주4.3사건의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이 아직은 만족스럽지 않은 시점에서 문제성 짙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물론 1978년 박정희 정권 말기에 현기영 작가의 제주 4.3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 '순이 삼촌'은 그야말로 용기 충만한 열사의 각오로 행한 일로 회자된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상을 수상하고 당시에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집필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우리 사회에 제주 4.3사건의 광기 어린 미친 역사를 상기시키며 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이들에 대한 위령과 반성을 촉구했다는 점 역시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고무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 세 작품을 연이어 읽으며 작가 한강에 대한 이미지는 나름 정립한 느낌이 든다.(물론 고작 세 작품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치에 어긋남을 인정하는 바이다)

'채식주의자'- 사회의 다수가 소수들에게 행하는 폭력적 위압.

'소년이 온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다수의 시민을 향한 무자비한 폭력.

'작별하지 않는다'- 일본제국주의에 이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를 위한 무모한 폭력.

이와 같이 다수가 소수에게 또는 권력자가 소시민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르포적 문학.

이것이 한강 작가의 진정한 매력임을 다시금 느끼며 이 소설 작품에 대한 독서를 추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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