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뷔히너 1813년 10월 17일에 태어나서 약관의 나이라 할 수 있는 24살인 1837년 2월 19일 티푸스로 조용히 눈 감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짧지 않은 여운을 남겼는데, 그가 만약 사십여 년을 더 살아 60대 중반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다면 과연 독일의 문학과 사상 아니 그를 뛰어넘어 인류의 삶이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을 저절로 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도 그런 것이 오늘 소개할 책 '당통의 죽음'같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문학적 재능뿐만 아니라 엄청난 독서열과 과학적 탐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투쟁까지 도저히 24년간의 짧은 생애에서 그가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하여 과연 실화인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1813년 독일의 다름슈르트 부근 고델라우에서 의사를 아버지를 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왕의 권위가 추락하지 않았으며 이를 반영하듯 낭만주의 사조가 절정에 있음에도 그는 사회주의적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사회변혁을 꿈꾸었고, 그의 문학적 성향도 공산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사조라 할 수 있는 사실주의 문학의 사실상의 창시자라고 할 정도로 그는 출신성분과 사회적 분위기를 뛰어넘는 말 그대로 '시대를 앞서간' 인물 중의 인물이었다.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의학을 배우러 가게 된다. 과거 독일의 영토였으며 당시에도 독일어권으로 분류되던 스트라스부르로의 유학은 천재 청년 뷔히너에게 혁명의 의지를 고취시켰을 것이다. 물론 프랑스혁명하면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794년에 끝났다던 프랑스혁명 만을 기억하겠지만 그 후 나폴레옹의 등장과 왕정복고로 이어지는 격랑 속에서 1830년 7월 혁명의 영향으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1832년 6월 봉기와 지구상 최초의 공산주의 공화제 정권이 들어서는 파리코뮌의 1848년 2월 혁명을 거쳐 1879년 제3공화국이 들어서서 1914년까지 이른바 벨 에포크 시대의 안정이 오기까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난하지만 거센 파고가 일었던 것이 내가 생각하는 프랑스혁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오르크 뷔히너는 1830년 7월 혁명과 1832년 6월 봉기를 프랑스에서 직접 체험하며 도시 빈민과 가난한 농민의 편에 서서 투쟁하는 등 앙가주망 좌파 성향의 지식인이었다.(실제 그는 독일에서 빈민과 농민을 위한 자유주의 책자를 냈다 발각되어 체포령이 떨어지자 스위스로 사실상의 망명을 했고. 그 후 취리히대학에서 대학교수 자리를 얻어 강의를 한지 3개월 만에 티푸스가 발병하여 몸 져 눕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게 되는데 전문가들은 그가 스트라스부르에서 물고기 신경조직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때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생각해 보면 그의 열정이 화를 부른 것 같아 무척이나 안타깝게 여겨진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지만 같은 독일 출신으로 그보다 3년 늦게 태어난 칼 마르크스와 만나 의기투합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이 절로이는 장면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글 서두에 그가 '60대 중반까지 살았다면'이라는 가정했던 것이다.
우선 작품을 살펴보기 전에 이 희곡의 배경이 되는 1794년의 프랑스혁명을 이끈 정치세력이라 할 수 있는 자코뱅당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아보고 들어가야 희곡 초반부에 나오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파벌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클뢰브 데 자코뱅(Club des jacobins)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자코뱅당은 프랑스혁명 시기에 생긴 정파 중 하나로 파리 자코뱅 수도원을 본거지로 삼은 데서 유래되었다.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이들은 조직 내에서 각자의 노선 차이로 인해 분열되게 되는데, 크게 입헌군주제를 옹호했던 푀양파, 극단적인 사회주의 노선(반기독 교주의. 빈민 구제 등)을 걸었던 에베르파, 절충공화파였던 지롱드파, 급진공화파의 집단인 산악파와 산악파였으나 공포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관용을 주장하는 당통파 등이 있었다.
최초의 자코뱅은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의 삼두체제였는데 1792년 9월 대학살을 당통이 주도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 로베스피에르가 그 유명한 공포정치를 펼치면서 9월 대학살 당시 봉건세력에 대한 피의 보복이 자코뱅당 내의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여 서로를 모함하여 죽고 죽이다 이내 혁명을 주도할 인물이 없게 되는 지경이 되어 로베스피에르가 7월에 죽고 1794년 11월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로 자코뱅당은 말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당통이 로베스피에로의 단두대에서의 죽음을 예견했듯이, 로베스피에르 역시 프랑스 제1공화국과 조국의 미래를 예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군사독재자의 등장인데 이는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정확히 증명되었으며, 자코뱅당은 지구상에서 가장 소란스러웠던 미완의 혁명세력이 되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시간적 배경은 바로 1794년 4월 공포정치가 극에 달해가던 때인 당통파세력이 제거되는 시기이다.
작품을 읽기에 사람의 심리적 변화나 갈등을 두고 만든 희곡 작품이기에 줄거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줄거리라고 할만한 플롯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1794년 봄 1792년 8월 13일 프랑스 왕정을 지지했던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민중들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하여 북쪽 국경으로 향하였다. 그러던 즈음 민중 사이에서는 감옥에 투옥되어 있던 반혁명 세력이 탈옥하여 혁명세력의 가족을 몰살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퍼진다. 이에 조르주 당통은 감옥에 있던 봉건세력을 형식적인 즉결심판하여 무자비하게 처형하는데 그 인원이 프랑스 전역에서 1만 5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후방을 든든히(?) 한 프랑스군은 프로이센 군대를 물리치고 1792년 9월 21일 군주제를 폐지하고 다음날 제1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이런 당통은 프랑스혁명의 영웅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지도자였다.
그들 간(자코뱅당)의 정쟁으로 인한 공포정치가 실행되고, 1794년 초에는 이런 당통까지 단두대에 이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당통도 정권을 잡은 후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에 빠져 굶주리는 민중의 분노로 시작된 혁명의 시작에서 그 이념을 배반한 변절자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을 다시금 부여잡고 혁명의 전사가 되든 그간 모아온 돈을 가지고 국외로 망명을 가든 조여오는 기요틴의 칼날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지만 당통은 '나는 인간 자체가 지겹다. 이제 인간 냄새마저도 신물이 난다.'라는 말을 하며 오히려 죽음의 세계라 할 수 있는 '무(無)'에 의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설득과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의 자발적 자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며 콩코드 광장의 단두대 아래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이 줄거리는 사실 책에 나와있는 있는 그대로의 내용이 아닌 조금 의역한 줄거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희곡 이 자체의 줄거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때가 1835년이다.
그런데 지금 읽어도 상당히 세련된 심리극임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게오르크 뷔히너의 시대를 앞선 천재성을 느낄 수 있으며, 왜 이 작품이 실제 연극으로 1902년 이 되어서야 초연되었는지 단 번에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당시 사람들로부터는 전혀 관심을 끌 수 없는 형식과 내용의 희곡이었던 것이다.
특히, 혁명의 동지들이 종국에는 서로에게 반감을 품는 과정에서 인물 하나하나가 느끼는 심리적 갈등과 자가당착적 모순에 대응하는 모습에서는 희곡이지만 읽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닐 정도이다.
또한 당시의 낭만주의라는 거센 조류에 휩싸여 있던 독일문학의 영향 아래 이를 아주 거스르는 작품은 아닌지라 대사 하나하나는 음미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표현이 넘치는 수작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게오르크 뷔히너의 천재성에 빠지게 되며, 그가 24살의 나이로 요절하며 4편 작품(3편 희곡과 1편의 소설 이중 2편은 미완성 작품이다)만을 남긴 사실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또한 반봉건 혁명사상에 눈을 뜬 젊은 독일인의 눈으로 바라본 미완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소회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도 많은 비판을 받은 1794년의 프랑스혁명을 보며 뷔히너는 마음속으로 그가 꿈꾸는 진정한 민중혁명에 대한 그림도 그렸을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 또한 해본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역시나 그가 60대 중반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더라면 하는 상상을 글의 처음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다시금 해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게오르크 뷔히너의 천재적 매력에 빠지게 되는 작품'당통의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