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찾아 헤매다 도달한 곳
나와 비슷한 사람이 고파서, 현존하는 기록물들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등장한다던 <조선왕조실록>을 뒤졌었어요. 사관이 붙어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는 존재가 국왕이잖아요? 한 인간에 대해서 가장 많이 기록된 기록인 셈이죠. 그 곁에 붙어 나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그중에 나랑 비슷한 인간이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습니다. 짬날 때마다 뒤졌지만, 결국 찾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됐어요.
<조선왕조실록>도 선택된 기록인 것을.
실록은 당사자인 왕이 죽고 나야 간행되는 국가 기록물입니다.
사관이 붙어서 기록한 일들은 <승정원일기>에 쓰이고 책으로 엮입니다. 실록에 있는 그 어떤 말도 <승정원일기>의 한 대목이 아니에요. <승정원일기>에서도 선택되고 선택된 기록들이죠.
(그 승정원일기조차 초고는 없어요)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사관에게 선택받았다는 뜻입니다
선택받는 것들은 보통 최초이거나, 최고이거나, 최후인 경우가 많아요.
그날 이후 기운 없어하고 있던 어느 날, 너무 외롭던 나머지 이런 상상까지 했습니다. 나는 이미 다 멸종하고 나 혼자 남은 마지막으로 남은 존재, 나만 없어지면 온전히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는 존재, 그러니까 최후인 어떤 존재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었던 것 같았었어요.
아무리 모난 돌이 정 맞는다지만
너무 모가 나서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든 나날들.
짧지 않은 과거들이 유수처럼 흘러가는 걸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주인공이라기엔 설정값이 약해서 드라마에도 못 쓸 만큼 평범한 차상위 계층 가정의,
줄줄이 딸린 동생들, 의지하기엔 약해서 의지하기 어려운 부모.
어차피 기록되지 못할 만큼 흔한 불행이면
차라리 없었던지, 덜 하던지, 아예 더 하던지 하지.
지천에 깔려있는 흔하디 흔한 불행이라
오히려 더 불행했어요.
매일매일 울며, 힘겹게 사는데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어요.
세상사람들 다 그렇게 산다고,
별거 아닌 일로 엄살 피우지 말라고
너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 무궁무진하게 많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어요.
각기 전혀 다른 곳에서 만나는 사람인데도 말은 다르지 않았어요.
그냥 흔한 불행이라고.
그거 하나 이겨내지 못하면 네가 바보인 거라고.
다 그렇게 산다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니 그게 진실인가 보다 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바보고, 내가 나약해서 힘든 거구나, 하고요.
그래서 꿈을 꿨어요. 미래에는 작가가 될 거야!라고 명랑하고 푸르른 꿈을.
바닥에서 매일 생존하며 사는데 급급해하면서도
생존에만 매인 현실이 삶이 될까 봐 무서워하며 내가 택한 방법은
꿈꾸는 작가인 나와 그냥 나를 분리한 채 허구 속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꿈꾸고 사는 나는 그래도 보통의 존재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글을 쓰는 걸 좋아했을 뿐
제가 딱히 글 쓰기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부모님은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타와도 부모님은 별 관심이 없으셨고,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장려상, 가작, 동상, 참가상까진 받았지만...... 1등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죠. 1등이 아니라서 축하받을 수 있는 공적 자리에서 앞에 나갈 기회가 없었고, 3등까지도 안 돼서 작은 교실 안에서라도 칭찬받은 적이 없었어요. 그냥 그렇구나, 그래 열심히 해서 다음에는 순위권에 들어보렴. 이런 정도였을 뿐.
소설 쓰는 걸 전공한 것도 좋아해서였지 잘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전공이라면 사실 수업시간에 잘 썼다는 말은 당연히 듣기가 힘들지만, 소재가 좋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내가 노력한 흐름, 문체, 만들어낸 인물 뭐 하나 비난받지 않은 것이 없었어요.
뭐든 하나라도 잘하는 게 있어야 인정받는 세상에서 아이디어, 그러니까 소재가 좋다는 이야긴 들었지만(소재가 좋을 수 있는 건 내가 보편적이지 않은 너무 모난 사람이라서일지도 모른다) 그건 타고난 생각이고, 노력이 한 번이라도 인정받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요.
자기혐오의 바닥에는 타인에게 긍정된 적이 없던 내가 있었습니다.
흔하게 널린 집안환경의 그저 그런 성장환경에서 특별날것도 없는데 그 정도 고난(이라고 할 수도 없는 어려움)도 힘들어하는 너는 너무 나약하고 못났다,라는 환청 같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렸나 봐요.
현실의 나도 그런데, 글 쓰는 나라고 별반 다르지가 않았어요.
그나마 너무 좋아서 하고 싶어 했던 글 쓰는 일에선 인정받은 기억이 없더라고요.
대학생 때 딱 한번 전국규모 대회에서 1등 상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많이 홍보가 되지 않았었고 지방이라 참여자 수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운 좋게 1등을 했던 거였는데...
그래도 중학교 고등학교도 아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처음으로 제일 높은 상을 받아본 거라 너무 기뻤었어요. 내가 글재주가 있나, 하면서 정말 온전히 기뻐했었던 것 같아요.
다음날 학교에 나갔는데 소설전공 다른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인정도 못 받을 자잘한 대회에서 상 받는 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뻐기고 으스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나는 학생이었고 교수님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심지가 곧지도 않았죠. 정처 없이 흔들리며, 나는 글 써도 되는 사람일까...? 를 몇 시간 동안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만
나는 이야기에게 사랑을 받은 적도,
재주가 있지도,
내 작품이 좋았던 적도
없어요.
나의 불행은 뛰어나지 않아서
그나마 관심 있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순위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얕지는 않아서 공감하거나 동조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에요.
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요.
그래서 살아오면서 더더욱 양가적 감정을 자주 느낀 것 같아요.
어디에 속하지도 않는 너무나 그저 그런 평범한 불행을 갖고 있음에 다행이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따금씩은 그런 평범함을 원망했어요.
너무 평범한 불행은 "작가표현론적 관점"처럼 작가의 히스토리를 살펴보고 작품에 적용할만한 특수성이 없거든요. 누구와도 다른 그 특수성은 시대와 개인의 의식이 만들어 가는데 그 역시 누군가에게 특별하다고 선택받아야만 쓰일 수 있어요. 그래, 결국 어디나 사관은 존재하는 거죠. 내 마음에 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