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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K Sep 05. 2021

꿈과현실 사이

말하는 대로 이루었는데, 왜 공허할까?

꿈을 위해 이직을 하다 / 이직을 하면 꿈이 이뤄지기는 할까?

1년 3개월 전 이직을 했다. 업계 1위 대기업에서 15년을 근무하다가 신사업을 하겠다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주변에서 만류도 많았고, 나도 깊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자리를 누군가가 평생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동안 많은 선배들이 준비 없이 퇴사해서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봐 왔던 터라 용기를 냈다. 

말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정말 나 하나 뽑아놓았던 상태. 그런데 1년 후에 "브랜드"를 론칭하란다. 그것도 굉장히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나는 마케터인데, 조직 구성/제품 개발/물류/ERP 기타 등등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경영에서 말하는 소위 밸류체인인 기획-마케팅-생산-물류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던 것.

목표가 정해지면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성향 덕에 정말 거의 매일 공황장애 비슷한 불안증세에 시달리며 어찌어찌 정해진 일정에 론칭을 했다. 동료 모두가 막판 3개월은 매일같이 날밤을 샜고, 론칭 일자를 앞에 두고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언성이 오가기도 했다. 

너무도 다행이게 멤버들, 멤버 주변 분 누구도 코로나 확진자 없이 내 달려온 지난 시간들.

아직도 정리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론칭을 했고, 고객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 한숨을 돌리고 있는 지금이다. 

여전히 주말에도 전화벨은 울리고, 불평은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를 하나 통으로 만든 것인데, 프로세를 정착시킬 틈이 있었을까? 거의 매일 음기 응변으로 넘기다 보니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터.


산을 넘었더니 또 산이다 / 이젠 더 가파른 산이다

동료들을 다독일 겨를도 없이 경영진은 신제품 계획을 내놓으라고 성화다. 그렇게 뚝딱 신제품 맵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면 머리를 쥐어뜯는 그 긴 시간을 지나올 필요가 없었겠지...

처음 세팅은 도화지에 그리면 됐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들을 다듬고 쏟아 넣으면 됐었다. 

그런데 지금은 제약조건들이 더 많아졌다. 기존의 제품과의 관계도 보아야 하고, 고객의 반응도 살펴야 하고, 시장의 트렌드도 파악해야 한다. 

쏟아부어주었더니 이젠 더 내놓으라고 한다. 갈아 넣었더니 이젠 더 갈아 넣으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남아 있는 힘이 없다. 머리를 써야 하는데,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쉬고 싶지만 작년에도 못 다녀온 여름휴가는 올해도 기약할 수 없다. 마케터에게, 총책임자에게, 그것도 신사업의 총책임자에게 주 52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거의 24시간 뇌가 돌아가야 하고, 끊임없이 문제 해결/새로운 비전을 고민해야 한다.

서러움이 폭발적으로 몰려온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 이렇게 언제까지 갈아 넣어야 하는지, 온몸이 몸부림치며 저항한다. 

40대 중간관리자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데, 낀 세대의 서러움과 지침이 소파에 들러붙은 나를 보며 또 다른 자괴감에 빠진다. 

분명히 하고 싶던 일이었다. 그래서 갈아 넣었고,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도 재택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달려왔다. 고맙게도 동료들도 이해하고 목표를 위해 함께 달렸다. 그래서 목표점에 이르렀고, 결과도 예상보다 좋다. 다 좋다. 

그런데, 그다음을 생각하고 있지 못했다. 다음 코스를 뛴 체력을 남겨두었어야 했나 보다. 그래도 내가 숨 쉬고 살 공간은 남겨두었었야 했나 보다. 기계가 된 기분,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내 속도는 내가 조절해 보자고 마음먹어본다 / 마음먹은 대로 될까? 이미 마음은 공허한데?

이젠 NO를 좀 대답해 보려고 한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될 일을 더 잘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듯하다. 다른 이들이 정해준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속도에 그들이 맞추도록 내가 더 화살받이가 되어야 할 듯하다. 

속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지난 1년여의 시간에 이젠 방향을 넣어 할 수 있는 선에서,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남겨둔 선에서 일을 하자고 다짐한다. 더 이상 불규칙한 호흡으로 살기 위해 새벽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유지하고 싶지 않다. 그 무더운 여름이 순삭 되고 돌아온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빳빳해진 뒷목 좀 주무르며 일하자고 다짐한다. 그래야 다음도 있겠지? 다른 이들의 성화에 나를 맡기지 말자고 다짐한다. 속도는 내가 조절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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