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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May 23. 2021

질문을 하기 위한 듣기

듣기를 위한 능동적 활동


듣기는 능동적인 활동이다

상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들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추임새를 넣고 장단을 맞추는 모습 같다. 이런 모습을 보고 상사는 자기 이야기를 잘 듣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을 보면 잘 들었는지 듣는 척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들은 이야기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전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해시키는 사람이 있다. 전자처럼 자기 의지 없이 듣고 전달한 사람은 수동적 듣기를 했고, 이해시키는 사람은 능동적 듣기를 한 것이다. 수동적 듣기를 한 사람은 전달하고 나면 금방 잊어버린다. 자기 의지가 개입되지 않고 상대방의 대답에 응답하기 위해 듣기 때문이다. 반면에 능동적 듣기를 한 사람은 오래 기억한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상황을 이해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잠시 듣기의 단계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수동과 능동의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정보는 청각기관에 들어와 반향기억장치에 남는다. 여기서 이해하고 인식하는 지각과정을 거쳐 단기기억장치로 들어가고 다시 필요와 불필요의 선택과정을 거쳐 장기기억장치에 저장된다. 말하자면 기억하지 못하는 수동적 듣기는 소리가 되어 흘려보내는 것이고 능동적 듣기는 인지와 이해를 거쳐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능동적 듣기는 상대방이 전달하는 언어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표정, 몸짓, 말투며 속도까지 들으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능동적 듣기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있다. 그러므로 수동적 듣기가 귀로 듣는 것이라면 능동적 듣기는 온몸으로 듣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관해 잘 알려주는 멋진 사람이 있다. 에벌린 글레니라는 여성 타악기 연주자다. 2016년에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으며 세 번의 그래미상과 2015년 폴라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무대에서 각종 타악기를 연주할 때 맨발로 연주하기 때문에 맨발의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그녀가 맨발로 연주하는 것은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12세에 청각을 완전히 잃은 뒤 피부에 전달되는 악기의 진동과 파장으로 소리를 느낀다. 귀 대신에 온몸으로 소리의 진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다양한 방식으로 악기를 실험했다. 툭툭 처 보기도 하고, 꽉 쥐어보기도 하고, 박박 긁어보기도 하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면서 소리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녀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냈고 소리를 대하는 마음가짐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그리고 더욱 주의를 기울이면 귀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소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손이나 팔로 울림을 느끼면서 몸 전체의 촉각을 이용해 소리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켰고 자신의 몸을 거대한 귀라고 생각하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녀는 듣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듣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 중요한 근간이 됩니다. 우리가 직장이나 가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더 좋은 청취 능력과 함께 극복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듣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감성적인 면이 더욱 발달했다고 봅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몸을 거대한 귀로서 연결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들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대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이 순간만큼은 오로지 당신만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라는 태도로 모든 주의를 집중시키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시계 따위에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는 것이 진짜 잘 듣는 거라고 강조한다. 과연 나는 어떤지 돌아볼 일이다.     

능동적 듣기는 온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듣는다는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내 삶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또한 이야기를 잘 들어줌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의 변화도 일어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마음이 풀리고 속이 시원함을 느낀 적이 있다. 이것은 이야기만 해도 마음에 긍정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다. 

그러나 괜히 말했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을 때도 있다.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고,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자기 생각을 말하며 기다려 주지 않을 때다.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는 말을 끊지 않고, 시선을 돌리지 않고, 충고하려고 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들어줄 때 가능하다.     

오래 전에 읽고, 얼마 전에 또 읽은 <모모>라는 소설이 있다. 독일의 아동문학가 미하엘 엔데가 1973년에 발표한 소설로 우리에게 온 마음으로 듣는 것이 무엇인지 잘 전해주고 있다. 주인공 모모는 소나무 숲에 있는 무너진 작은 원형극장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된다. 고아인 모모는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커다랗고 까만 눈을 가졌다. 마을 사람들이 집을 구해 주고, 누군가의 집에 같이 살기를 권했지만 모모는 혼자 원형극장에 살기를 원한다. 그런 모모에게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모모의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앉아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모가 필요하지만 직접 찾아올 수 없는 사람은 모모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아직 모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이 말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으레 하는 일상어가 되어 버렸다.(중략) 도대체 왜 그랬을까? 모모가 누구에게나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을 만큼 똑똑하기 때문에?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꼭 맞는 말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현명하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모모는 이 세상 모든 아이가 그렇듯이 그런 일을 잘 하지 못했다.(중략) 하지만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주람.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모모(미하엘 엔데/한미희/ 비룡소) 중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답을 들으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말하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기만을 바란다. 그러니 조언을 하고 충고를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모모가 그랬듯이 온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그렇게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사람들은 문득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못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는다. 그리고 스스로 우주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란 걸 알게 된다. 답을 찾아주려고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면 가장 소중한 질문을 찾을 수 있고, 그때 상대방이 공감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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