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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Jun 11. 2021

질문을 위한 느낌, 몸의 솔직함

몸은 마음보다 솔직하다.

산을 좋아하는 나는 매주 산에 오른다. 산을 좋아하게 된 동기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산에 갔다 오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 좋다. 그러나 사정이 생겨 산에 가지 못한 주가 발생하면 그 다음 주도 산에 가기가 싫어진다. 그리고 그 다음도 핑계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렇게 몇 주를 산에 오르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진다. 그런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다시 배낭을 찾는 나를 발견한다. 무의식적인 몸의 반응이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왜 무심결에 다시 배낭을 찾게 되었을까? 마음의 요사에 현혹되어 소파의 편안함을 벗어나지 못하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몸의 솔직함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몇주를 걸러 산에 오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다. 숨은 차오르고 발걸음은 무겁다. 마음은 금방 오를 것 같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내가 몇주를 걸렀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를 알 것 같다. 

우리는 건강히 지내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본다. 최근에 항상 건강하고 어떤 일이든 주도적으로 하던 친구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했다. 친구는 건강검진을 하다 심장에 이상이 있어 간단한 시술을 했다. 그는 건강검진할 때 발견하지 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아마 분명히 몸에서 이상을 알리는 신호가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별 것 아닐 거야.’, ‘이 정도는 버텨야지’, ‘바쁘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이 몸의 신호를 왜곡하거나 차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큰일을 겪은 친구는 몸의 반응에 민감해졌다. 우리가 몸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하는 이유다.    

느낌은 이런 몸의 반응이다. 그러니까 느낌도 매일 산에 오르는 것 같은 노력이 있어야 하고 이상을 감지하는 민감함도 유지해야 한다. 다시 산행 이야기로 돌아가면, 산행에 몸이 익숙해지면 몸의 감각기관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산행의 횟수가 많아지면서 처음 산행에서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고 크고 작은 나무와 식물들이 보인다. 바람 소리가 들리고 이름 모를 새소리에 심취되기도 한다. 작은 옹달샘의 물을 마시고, 나무마다 다른 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매번 갈 때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느낌은 먼저 익숙해진 느낌에 질문해야 가능하다. 내가 있는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해, 내 안의 고정된 사고에 대해, 그리고 앎과 당연함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느낌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거나 대상과 관계가 바뀌면 느낌도 전과 다르다. 그런데 매일 같은 것만 보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생각을 하면 느낌도 매일 같은 느낌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사물을 다른 식으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느낀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고, 아는 것과는 무관하게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느낀다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고 또 틀릴 수도 있음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아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보고, 듣고, 만지면 같은 것도 전혀 다르게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속에 정해 놓고 대상을 대하면 좋고 나쁨을 선택하지만 몸으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새로움을 더해 다른 가치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더 잘 느끼기 위해선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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