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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an 16. 2024

엄마 우리 집은 부자야?

"엄마 우리 집은 부자야?"

아이가 난데없이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 저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뼈 때리는 질문을 던지나. 나름 임기응변에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한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가 알고 있는 답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게 우리 집은 왜 부자가 아니지. 남편도 나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왜 우리 집 한 채가 없을까. 왜 번듯한 아이 방 하나가 없을까. 별생각 없이 던진 아이의 질문이 갑자기 끝없는 자기 한탄으로 이어졌다.


"엄마?"


아 나 아직 대답을 안 했구나,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땐 일단 되물어보는 게 최고지.


"글쎄, 보통은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을 부자라고 말하더라. 근데 얼마쯤 있어야 많은 건지 모르겠네. 연호 생각은 어때?"


러게 내가 물었지만 나도 그게 궁금하네.


"오천 백 원!!!!"


오천 백 원만 있어도 부자였으면 좋겠네.

난 그럼 엄청 부잔데.


어쩌면 아이는 어쩌면 자기가 아는 가장 큰 수를 말한 건지도 모르겠다.


"왜 오천 백 원이야?"


"그냥 좋아!"


맞네,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은 다르구나.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수만큼 돈이 있으면 부자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1년에 한 번씩 여행 갈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정말 모든 일을 때려치우고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 있어야 충분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부자라는 단어 앞에서는 대부분 작아진다. 혹시 나만 그런건가. 분명히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절대적인 소유금액이 많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니 "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돈이 없냐"라는 부정적 결말로 연결된다. 행복의 절대조건이 돈이 많은 부자는 아닌데, 어느 순간 나는 그 둘을 절대적인 연결고리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 드디어 답이 생각났다.

"엄마 생각엔 자기가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부자 같아."


"연호 장난감을 예로 들어볼까? 연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연호 장난감 보고 우와 진짜 많다 장난감 부자다" 했었잖아."


아들이 으쓱하며 "그렇지?" 한다. 짜슥.


"엄마나 연호 친구가 볼 때 연호는 장난감이 진짜 많은 장난감 부자야. 그런데 매일 장난감 별로 없다고 더 사달라고 하잖아."


"음 그렇긴 하지?"

두서없는 내 이야기를 아이도 꽤나 진지하게 들어준다.


"그럼 우리 연호는 장난감 부자야 아니야?"


대답이 없다.

역시 6살에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나. 


"음 나는 부자하고 싶어. 많아!"


오, 부자가 되고 싶어서 많다고 인정한거야?


"사실 엄마도 잘은 모르지만, 돈도 장난감도 다른 사람이 볼 때 아무리 많아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스스로 부자라고 못 느끼는 것 같아"


그런데 막상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다시 생각해도 우리는 부자가 아니다. 집도 없고, 빚도 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돈은 없다.


그렇지만 내 인생에 행복은 존재한다. 우리 부부는 열심히 즐기면서 살고 있다. 나는 불안정한 프리랜서이긴 하지만, 나름 업계에서 인정 받고 있다. 육아와 일 모두 놓지 않고 선방할 수 있는 조건이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이 세 줄 쓰는데 왜 이리 머쓱할까. 이 짧은 문장들에 나름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들어간 걸 보면 무의식 중에 방어기제가 발동했나 보다.


행복해지려면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행복해지려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했을 땐, 나는 아직 온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의 행복한 요소들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 인생에는 행복도 많다. 내가 먼저 만족하고 인정해야 하는구나. 그래야 설사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활기차게 보완할 수 있겠구나.  


아이가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부자는 자기가 부자라고 느끼는 사람!"


생각을 바꿨다.

'행복해지려면 부자가 되어야 된다'에서

'행복하다. 세상에 지금도 행복한데 부자가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로.


하하하하하. 이 정도 바뀐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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